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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제자의 장례식

난님__
2022-10-10 01:11:11 224 1 6

제자 둘에게 도장은 잠시 휴관이라 말하였다.

제자들은 영문을 모르는지 이상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내 심기가 불편함을 알고는 그냥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품 안에서 이미 열댓번은 읽은 편지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낸다.

편지 말고는 소리를 내는 것이 없어, 그 편지 소리가 더욱 거슬려 신경질 적으로 다시 편지를 꺼내들었다.


[부고. 10월 4일 오후 6시 경, 뚜비님이 별세했음을 알립니다.]


배운걸 시험하겠노라 떠난 제자에게서 온 이 짧은 문장을 믿을 수 없어 읽은 것이 열댓번.

혹여 아직도 철부지인 제자의 질 낮은 장난일까 여러번 확인했었으나 오늘 낮에 제자의 시신이 담긴 관이 그녀의 고향인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서야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받아들여야만 했다.


"...썩을 후레제자 같으니... 뭐 좋은 곳이라고 그리 바삐 가느냐. 좋은 곳이면 응당 스승인 내가 먼저 가야 하지 않느냐. 예의라곤 밥말아먹은 천둥벌거숭이 같으니..."

신경질적으로 구긴 편지를 꼴도 보기 싫어 던져버릴까 했으나, 혹여 치우는 걸 잊어 다른 제자가 볼까 다시 품 안에 넣는다.

잔뜩 구겨진 편지가 마치 동그란 공과 같아 품 안에 넣으니 거슬리기 그지 없었다.

제자의 죽음은 그것과 같은 거슬림이 있었다.

빈 도장의 문을 열고 나오니 하늘이 궂다.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하며 밖에 미리 꺼내놓은 삽자루를 집는다.

제자의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 될 테니 도장으로 오진 않을 것이다.

장례식장도 가기야 하겠으나, 정 주며 가르친 제자다.

도장 뒷 편의 연무장 구석으로 삽날을 끌며 처벅처벅 걷는다.

제법 굵은 비에 꼬라지가 엉망이지만 그거면 되었다.

묵묵히 땅을 판다.

사람을 진짜 뉘이는건 아니지만 제법 묻을게 많다.

부고를 알린 편지,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교재와 모형, 출석부, 제자가 쓰던 도복 등을 관에 넣는다.

회초리로 쓴 적이 더 많았던 교편에 이르자 관에 물건들을 집어넣던걸 잠시 멈춘다.

시선이 잠시 교편에 멈춘다.

눈을 질끈 감고, 내던지듯 관 안에 교편을 넣고 관을 봉한다.

파내었던 흙을 다시 관 위에 덮자 어느덧 제법 그럴싸한 봉분 하나가 완성되었다.


 "쯧. 생각해보니 네녀석 술도 못하는구나. 하여튼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니까. 후레제자 같으니. 됐다. 술은 나 혼자 마시면 되니."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술병을 꺼내 내용물을 입에 털어넣는다.

술을 마시고 있는건지, 빗물을 마시고 있는건지 구분이 안된다.

작은 봉분 앞에 비석 하나 없어 뭔가 허전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까먹고 관에 넣지 않은 물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 잘 해낼 때 마다 찍어주던 칭찬 도장.

막상 수업중엔 찍어줄 일이 잘 없었는데 마지막에 남은게 결국 이거라니 웃음을 참을 수 가 없다.

허탈하게 헛웃음을 몇 번 하다가, 비맞으며 헛웃음 치는 스스로가 미쳐버린거 같아 종내엔 한참을 웃어젖혔다.


 "이런 사부의 제자였어서. 고마웠다."


무덤 앞에 도장 찍듯 그것을 내려놓았다.

떠난 제자에게 하는 장례식은 장대비 덕분에 코 끝만이 벌게지고 마쳤다.

다행이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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