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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바벨의 도서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동그란_댕
2021-06-12 18:52:56 239 0 0

바벨의 도서관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스물세 글자의 변형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ㅡ 『멜랑콜리의 해부』 2부 2편 4항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진열실 중심에는 낮은 난간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통풍구가 있다. 그 어떤 육각형 진열실에서도 위에 있는 층들과 위에 있는 층들이 무한해 보인다. 진열실들은 모두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각 진열실에는 스무 세 개의 책장이 있다. 두 면을 제외한 각 면마다 다섯 개씩 책장들이 늘어서서 네 개의 면을 덮고 있다. 책장의 높이는 바닥에서 천장 높이와 같고, 보통 키의 사서보다 조금 큰 정도이다. 책장이 놓여 있지 않은 두 면들 중의 하나는 일종의 좁은 복도와 연결된다. 그 복도는 모두가 똑같은 형태와 크기를 가진 다른 진열실과 이어져 있다. 복도 좌우로 아주 작은 문간방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선 채로 자는 방이고, 다른 하나는 생리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방이다. 이 공간으로 나선 계단이 지나가며, 이 계단은 아득히 먼 곳으로 내려가거나 올라간다. 좁은 복도에는 거울 하나가 있는데, 그 거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복제한다. 사람들은 이 거울을 보고 '도서관'은 무한하지 않다고 추단하곤 한다 (만일 실제로 무한하다면 무엇 때문에 복제라는 눈속임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그 반짝거리는 거울 표면이 무한함의 형태이며 약속이라고 꿈꾸고 싶다....... 빛은 '등'이라는 이름을 가진 몇 개의 둥근 열매들에서 나온다. 육각형 진열실마다 걸려있는 두 개의 등은 횡단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등에서 나오는 불빛은 충분하지 않지만 끊기는 법은 없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마도 편람 중의 편람일 책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제 내 눈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고, 나는 내가 태어난 육각형의 방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죽으면, 자비로운 사람들이 나를 난간 위로 던져 버릴 것이다. 내 무덤은 깊이를 헤이릴 수 없는 허공이 될 것이고, 내 육체는 끝없이 떨어질 것이고, 썩을 것이며, 내가 아마도 무한하게 떨어지면서 만들어낼 바람 속에서 분해될 것이다. 나는 도서관이 끝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관념론자들은 육각형의 방들이 절대적인 공간, 혹은 적어도 공간의 지각작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형태라고 말한다. 그들은 삼각형이나 오각형 같은 방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신비주의자들은 환희의 상태에 있게 되면, 크고 둘그런 책이 벽 주변을 완전히 빙빙 도는 원형의 방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증언은 의심스럽고, 그들의 말들은 모호하다. 그 원형의 책은 '유일신'이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도서관은 하나의 구체이며, 그 구체의 정 한가운데는 어떤 종류의 육각형이건 육각형이고, 그것의 원주로는 접근할 수 없다"라는 고전적인 격언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각 육각형 진열실의 벽에는 책장이 다섯 개씩 비치되어 있다. 각 책장에는 똑같은 크기로 된 서른 두 권의 책이 꽂혀 있으며 각 책은 410페이지다. 각 페이지는 마흔 행으로 되어 있고, 각 줄은 팔십여 개의 검은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책의 책등에도 글자가 있다. 이 글자들은 책의 내용을 지시하거나 예시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불일치가 한때 이상하게 보였다는 사실을 안다. 그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전하기 전에 (결과는 비극적이지만, 그 발견이야말로 아마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나는 몇 가지 원리들을 떠올리고자 한다.


   첫 번째 원리는 '도서관'이 '태곳적'부터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의 미래 역시 영원하리라는 것을 곧바로 추리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그것을 의심할 수 없다.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우연이나 개구쟁이 조물주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책장들과 불가해한 책들, 방문자를 위한 그칠 줄 모르는 층계들, 그리고 앉아 있는 사서들을 위한 화장실처럼 우아한 설비를 갖추고 있는 우주는 오직 하나의 신이 제작한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서툰 나의 손이 어느 책 표지에 아무렇게나 갈겨 쓴 알아볼 수 없이 비뚤비뚤한 글자들과 책 본문의 체계적인 글자들, 즉 정연하고 진한 검은 색이며,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균형 잡힌 글자들을 비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두 번째 원리는 '철자 기호의 수는 스물다섯 개다'라는 것이다. 삼백 년 전에 이 원리를 발견한 이래 '도서관'에 대한 총체적 이론을 세울 수 있었으며, 그 어떤 추측으로도 설명하지 못했던 문제, 바로 거의 모든 책이 일정한 모양을 취하고 있지 않으며 어지러운 속성을 갖고 있다는 문제가 충분할 정도로 해결되었다. 내 아버지가 15-94구역의 어느 육각형 진열실에서 보았던 책은 알파벳 M, C, V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책에서는 첫줄부터 마지막줄까지 오직 그 글자만 되풀이되었다. 또 다른 책 )이 구역의 책들 중에서는 특히 열람 횟수가 많은)은 순전히 글자들의 미로지만, 끝에서 두 번째 페이지에 "아, 시간, 그대의 피라미드들"이라고 적혀 있다. 사리에 맞는 한 줄, 혹은 한 마디의 솔직한 진술을 위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슬리는 음조나 허튼 소리, 그리고 두서 없는 말들이 하염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곳의 사서들은 책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허황되고 미신적인 습관을 거부하고, 그런 행위를 꿈이나 한 사람의 손바닥의 뒤엉킨 손금들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행위와 동일시한다...... 그들은 글쓰기를 발명한 사람들이 스물다섯 가지 자연의 상징을 모방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채택이 우연에 불과하며, 책들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곧바로 살펴 보겠지만, 이런 견해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런 책들에 우리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들이 고대나 머나먼 시절의 언어로 적혀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태고의 사람들, 그러니까 최초의 사서들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와는 아주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사실 오른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우리의 언어는 방언이 되고, 구십 층 쯤 위에서 우리의 언어는 이해 불가능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M, C, V로만 이루어진 410 페이지는 방언이건 아니면 원시 언어이건 간에 그 어떤 언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혹자는 각 글자가 다음에 나오는 글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71 페이지 세 번째 줄에 있는 M, C, V의 가치가 다른 페이지의 다른 지점에 있는 동일한 일련의 글자가 지닌 가치와 다르다는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런 모호한 논지는 별로 수용되지 못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암호 체계로 생각했다. 비록 그것의 창안자들이 만든 의미와는 달랐지만, 그런 추측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백 년 전, 높은 곳에 위치한 육각형들의 책임자 한 사람이 다른 책들처럼 혼란스러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책은 거의 두 페이지에 걸쳐 동일한 행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어느 떠돌이 암호 해독가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 암호 해독가는 그에게 그 행들이 포르투갈어로 적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이 이디시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러가기 전에 전문가들은 그것이 어떤 언어인지 밝혀냈다. 그것은 고대 아랍어의 어형 번화를 가진 과라니어의 사모예드 리투아니아식 방언이었다. 또한 그 내용도 해독되었다. 그것은 조합 분석의 기초로, 무한하게 반복되는 변수들을 예로 설명되어 있었다. 이런 예들 덕분에, 어느 천재적인 사서는 '도서관'의 기본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철학자는 모든 책이 서로 다를지라도 동일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즉, 띄어쓰기 공간과 마침표, 쉼표, 그리고 스물 두 개의 철자 기호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모든 여행자들이 확인했던 "도서관은 거대하지만 동일한 책이 두 권 존재하지는 않는다"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그런 부정할 수 없는 전제들로부터 그 사서는 '도서관'은 완전하고 완벽하며, 그곳의 책장들은 이십여 개의 철자 기호들로 이루어진 가능한 모든 조합(그 숫자는 방대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바로 모든 언어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 냈다. 여기서 모든 것은 미래의 상세한 역사, 대천사들의 자서전, '도서관'의 정확한 색인 목록, 셀 수 없이 많은 거짓 목록, 그런 목록들의 오류에 대한 증거, 바실레데스의 그노시스교 복음서, 그 복음서에 대한 주석, 그 복음서에 대한 주석의 주석, 당신의 죽음에 관한 정확한 이야기, 각각의 책에 대한 모든 언어들의 번역본, 각각의 책을 모든 책에 삽입하는 것, 베다가 색슨족의 신화에 대해 쓸 수 있었으면서도 쓰지 않았던 논문, 타키투스의 소실된 책들이다.


   '도서관'이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처음으로 나타난 반응은 무한한 행복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완전하고 비밀스러운 보물의 주인이라고 느꼈다.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적 문제나 세상의 문제는 없었다. 그것들은 어느 육각형의 방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주는 정당화되었고, 순식간에 인류의 무궁무진한 희망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변론서들'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것들은 우주에 살고 있는 각 인간의 행위를 항상 정당하다고 입증해 주고, 각자의 미래에 대한 놀라운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찬미서와 예언서였다. 탐욕에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정든 육각형 진열실을 버리고서, 자신의 '변론서'를 발견하려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혀 아래층 위층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그 순례자들은 비좁은 복도에서 서로 말다툼을 벌였고, 이해하기 어려운 욕들을 내빝었으며, 신성한 층게에서 서로 목 졸라 죽였고, 믿지 못할 책들을 통풍구로 내던졌으며, 머나 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내던져졌다. 어떤 사람들은 미쳐 버리기도 했다....... '변론서들'은 존재하지만 (나는 미래의 사람들, 아마도 상상의 존재가 아닌 실제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변론서'를 찾던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의 변론서를 찾거나, 아니면 그 변론서의 엉터리 판본을 찾을 확률이 '영'에 가깝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인류에 관한 기본적인 수수께끼들, 즉 '도서관'과 시간의 기원이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 중대하나 수수께끼들이 언어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인다. 만일 철학자들의 언어로 불충분하다면 여러 모양의 '도서관'은 그런 설명에 필요한 전대미문의 언어와 그 언어의 어휘와 문법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미 사 세기 동안 사람들은 육각형 진열실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검찰관'이라ㅣ는 공식적인 수색자들도 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항상 지쳐버린 채 육각형 진열실에 돌아온다. 그들은 계단이 없는 층계에서 자칫 죽을 뻔 했다고 말한다. 또한 진열실들과 층계들에 대해 도서관 사서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떨 때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 훑어 보면서, 추잡한 단어들을 찾는다. 분명한 것은 아무도 그들이 뭐라도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런 억제할 수 없는 희망 후에는 엄청난 절망이 뒤따랐다. 어떤 육각형 진열실의 어떤 책장에는 틀림없이 귀중한 책들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그덧들에 접근할 수 없다는 확신감은 거의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자 어느 불경스러운 종파가 모든 탐색을 중단하고, 모든 사람들이 글자들과 기호들을 뒤섞은 다음, 우연이라는 불확실한 솜씨를 통해 그런 정전들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했다. 당국은 엄격한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종파는 종적을 감추었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금속 원반들을 넣은 금지된 주사위 컵을 들고 오랫동안 변소 안에 숨어서 무기력하게 하느님의 무질서를 흉내내던 노인들을 본 적이 있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불필요한 책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육각형 진열실에 마구 쳐들어가서 항상 가까인 것만은 아닌 신분증을 내밀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책 한 권을 뒤적거리다가 책으로 가득한 모든 책장들을 쓸모 없다고 판정하곤 했다. 수백만 권의 책들이 유실되는 것은 모두 그들의 결벽하고 금욕적인 분노에 기인한다. 오늘날 그들의 이름은 통렬하게 비난받지만, 그들의 광기가 파괴해 버린 '보물들'을 애석해하는 사람들은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는 '도서관'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인간의 손이 사라지게 만든 모든 책은 극소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각각의 책은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대체가 불가능하지만 ('도서관'은 완전하고 완벽하기 때문에), 항상 그것에 대한 수십만 권의 불완전한 복사본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단지 글자 하나, 혹은 쉼표 하나가 원본과 다를 뿐이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나는 감히 '정화자들'이 저지른 약탈 행위의 결과는 바로 그 광신자들이 야기한 공포 때문에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심홍색 융각형 진열실'에 소장된 책들을 정복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열정에 이끌렸다. 그 책들은 보통 책들보다 크기가 작고 전지전능하며 삽화가 들어 있고, 마술적인 책들이었다.


   또한 우리는 당시의 또 다른 미신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책의 사람'에 관한 믿음이었다. 아느 육각형 진열실의 어느 책장에는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 해독서이면서 완벽한 개론서가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주장했다. 한 사서가 틀림없이 그 책을 살펴보았으며, 그래서 그 사서는 신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이 구역의 언어에는 아직도 아득한 옛날의 그 사서를 숭배하는 종파의 흕거이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순례를 떠났다. 백 년 동안 모든 길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졌으나 허사였다. 어떻게 그를 숨겨 놓은 존경스러운 비밀의 육각형 진열실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소급적 방법을 제시했다. A라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A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 B라는 책을 책을 참조하고, B라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C라는 책을 참조하고, 그렇게 무한하게 되돌아가는....... 이런 모험들을 하면서 나는 내 일생을 허비하고 소비했다. 나는 우주의 어떤 책장에 그런 완전하고 완벽한 책이 있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알려지지 안ㅇㅎ은 신들에게 한 사람 ㅡ 몇 천 년 전일지라도 좋으니 단지 한 사람만이라도! ㅡ 만이라도 그 책을 살펴보고 읽어본 사람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만일 제가 영광과 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 책을 읽어볼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그런 기회릘 허락해주소서. 제가 있을 장소가 지옥이리ㅏ 할지라도 천국이 존재하게 하옵소서. 제가 굴욕에 처하고 죽음을 맞더라도, 당신의 거대한 도서관이 한순간만이라도, 아니면 단 한 사람에게라도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소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는 의미있음이 아닌 터무니없음이 정상이며, 합리성은 (아주 시시하고 그저 앞뒤가 맞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기적에 가까울 만큼 예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열병을 앓는 도서관'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 도서관에서 우연하게 집어 든 책들은 다른 책들로 변형될 위험에 끊임없이 처한다. 그래서 그들은 미쳐서 헛소리를 되뇌는 신성처럼 모든 걸 긍정하고 부정하며, 마침내는 모든 걸 혼동한다.' 무질서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런 예까지도 보여주는 그런 말은 그들은 최악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절망적일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사실 '도서관'은 모든 언어 구조와 스물다섯 개의 철자 기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변형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허튼 소리는 하나도 없다. 내가 관리하고 있는 많은 육각형 진열실 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빗질한 번개』이며, 다른 것은 『석고의 경련』이고, 또 다른 것은 『아사사사스 믈뢰』라는 제목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얼핏 보면 이런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암호 표기법이나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어의 순서나 존재를 합리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언어적인 것이며 가설적으로는 이미 '도서관'의 어느 곳엔가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령 'dhcmrlchtdj'라는 글자의 조합은 불가능하다. 그 단어는 신성한 '도서관'이 예견하지 못했고, 그들의 비밀 언어 중 그 어떤 것에도 무시무시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애정과 공포로 가득하지 않은 음적은 발음할 수 없다. 또한 그 비밀 언어들 가운데 하나에서 강력한 신의 이름이 아닌 것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말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내용도 없고 그저 긴 말을 늘어놓을 뿐인 편지는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육각형 진열실들 중의 하나에 있는 다섯 개의 책장에 꽂혀 있는 서른 권의 책들 중 한 권에 존재한다. 그리기ㅗ 거기에는 역시 그런 편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존재 가능한 언어에서 n이라는 숫자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몇몇 언어에서는 '도서관'이란 상징이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영원하고 도처에 존재하는 체계'라는 정확한 정의를 수용한다. 하지만 '도서관'은 '빵'이나 '피라미드' 혹은 그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서관을 정의내리고 있는 앞의 일곱 단어가 다른 의미를 띠기도 한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


   방법론적 글쓰기는 내게 현재 인류의 상황에서 한눈을 팔게 한다. 모든 것이 이미 쓰여 있다는 확신은 우리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환영적인 존재로 만든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지만, 책 앞에 엎드려 마치 야만인들처럼 책장에 입을 맞추는 지방들을 알고 있다. 전염병, 이단들의 싸움, 그리고 불가피하게 도적 행위로 타락하고 마는 순례 여행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해마다 늘어가는 자살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한 것 같다. 아마도 늙고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내가 속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유일한 종족인 인류가 멸망 직전에 있다 해도 '도서관'은 불을 환히 밝히고 고독하게, 그리고 무한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소중하고 쓸모 없으며 썩지 않고 비밀스러운 책들을 구비하고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방금 '무한히'라는 말을 썼다. 나는 순전히 관용적인 수사 표현으로 이 부사를 포함시킨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세계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엉뚱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를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곳에 있는 복도와 층계와 육각형 진열실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끝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반면에 세상을 한계가 없는 것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은 간으한 책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라는 말로 해결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일 어느 영원한 순례자가 어떤 방향으로건 도서관을 지나갔다면, 수 세기 후에 그는 동일한 책들이 동일한 무질서 (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질서'가.)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나의 고독함은 그런 우아한 희망으로 기뻐한다.





1941년, 마르 텔 플라타에서


출처: https://vanodif.tistory.com/9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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