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쌍 0

일기를 쓸 때에는 소소한 일도, 거창한 일도 어떻게든 자세를 고쳐앉고 쓰게 됩니다. 이게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인가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기는 오늘의 날씨부터 참 재미있었다-를 생각하게 하는, 아련함과 귀찮음이 동시에 떠오르는 장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앞 미용실에서 투블럭을 다듬어요. 옆머리뒷머리는 6미리로, 윗머리 기장은 전에 조금 짧게 잘라주셨으니 이번엔 안다듬어주셔도 괜찮습니다. 숱만 조금 쳐내주세요.

라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아조시는 전날 하루 밤을 샜다는 이유로 퍼질러 잤습니다. 이제 누가 더벅머리지? 어휴...

하루의 시작이라고 하긴 뭐한게, 최근 잠에 드는 시간이 오전 일곱시여덟시쯤 되다 보니 이게 시작인지 끝인지 좀 그래요. 어제 이시간즈음이죠? 무무님의 뱅종을 시작으로 아침 준비를 했었지요. 간단하게 반찬 하나만 보태뒀습니다. 감자볶음 했어요.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점순아, 봄 감자는 맛있구나. 뭉턱뭉턱 채를 썰어 물에 담가 전분기를 살짝 빼고 털어낸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두꼬집 정도 뿌려 살살 볶아줍니다. 반찬그릇에 담고 깨 뿌려두고 냉장고에 넣어둘 즈음 어머니도 일어나셔서 저게 부지런한건지 글러먹은건지 모르겠다는 응원을 해주십니다 엄마...미안해...감자는 맛나게 볶아뒀어...

그렇게 아침에 기절하고 오후에 잠깐 깼어요. 눈을 떴을 때 출근 시간이 두세시간 더 남아있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는 다 알 거에요. 마치 알람없이 일어났는데 학생일때는 다섯시반, 직장인일때는 여섯시사십분, 백수라구요? 야 부럽다 킹갓백수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젠 슬슬 조짐의 조짐이 보이기 삼 보 직전에 일어나서 혹시 큰일은 없는지 밀린 연락을 슥 보고 샤워를 하고 눈을 비벼요. 세상, 오늘은 무무님이 오후방송도 켰어요! 10분15분쯤 잠깐 트수였다가 다시 출근준비를 합니다. 돈벌어야 도네한다...돈이 최고야...

솔직히 일터는 할 말이 많지 않아요. 힘든 말은 쉽고 원망스러운 일은 언제든 있는데 부정적인 말을 토해내다 문득 이런 곳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 에너지가 아까워서. 이 힘이면 오늘도 두 명은 도닥여줄 수 있는데, 내가 왜 그런데에 감정을 소모하겠어요? 그래도 너무정말 힘들면 징징거릴테니까 그때 고생하셨다고 한마디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노예야 밑밥깔기 좋았어. 나쁘지않았어.

무난한 듯 힘든 듯 마감을 하고 열심히 방송하고 계신 무무님께 인사를 드리지요. 오늘도 밝게 웃으시면서 얻어맞기도 하고 얻어맞기도 하지만 가끔 얻어맞기도 하는 아니 야 트수들 트수리머들 믄데 적당히 두드려라ㅠㅠ슨새임...무리하지마새오...그래도 방송해줘서 고맙구 그래ㅠㅠ

아직 방송에 함께한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일수이지만 어느덧 저의 하루 일과에 자리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트수이지마는 앞으로도 같이 잘 지내요- 아조시는 또 아침거리를 하나쯤 생각하러 갈께요. 냉장고에 손질된 아귀가 있던거같은데, 어머니...아들을 언럭키 백종원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