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에 들렀다 문득 구석 한켠에 뉘어진 가스난로가 보였다.
켜켜이 쌓인 먼지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본연의 위치에서 그렇게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난로는 나에게는 좀 더 특별한 존재였다.
20대 초반 멋모르고 입사했던 회사는 호기로운 나의 사기를 꺾어놓을정도로 무한대의 야근과 특근을 선사했고
공장 한켠에서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럴때마다 내 몸을 녹여줄 수단은 오로지 등유로 떼는 난로 하나뿐이었고, 난로는 나의 동료이자 안식처였다.
보통 잠에서 잘 깨지않는 나는 새벽의 몹쓸추위에 눈을 뜨게되었고, 등유가 떨어진 난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소리없이 죽어있었다.
열심히 스위치를 눌러도 티딕소리만 들릴뿐 응답이 없었다.
처량함이란게 문득 이럴때 사무쳐온다.
무언가의 허무함. 무엇을 위한 삶. 어떠한 이유.
이것이 어느정도 깨우쳐질때쯤 머릿속에선 방향전환을 외치고 있었고, 그 방향이 어디쯤인지 쳐다볼때쯤엔 난 결혼을 하고 그러한 삶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돌려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이 방향인가. 저 방향인가 열심히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성공한자와 그저그런자들 사이에서 눈길만 보내고있다.
만약.
그때 난로가 죽어있지않았다면,
그 추운 공장 한켠에서 서글픔을 대신 태워가며 밤을 지샌 그 날이 없었더라면, 혹은.. 기름이 남아 열정을 태우고 있었다면.
나는 어느 곳 난로와 같은 취급을 받고 살았을것이다.
문득 거래처에서 본 난로는. 발전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투영하기 좋은 물건이자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