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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더에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올리는 작은 단편소설

엘단이
2019-08-19 12:58:05 104 0 0

Prologue.

죽음과 빵과 담배 


어기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우주선의 복도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이었지만, 살점이 많이 썩어 떨어져 나가 발을 디딜 때마다 둔탁하게 뼈 부딛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발에 비해 제법 인간일 때의 준수한 외모를 잘 보존한 얼굴이 철문 사이로 나타났다. 뒤이어 앙상한 몸에 버거워 보이는 무거운 판금형 나노갑옷을 느슨하게 걸친 몸뚱아리가 들어왔다.


"시간 맞춰 딱 잘오셨군. 맨발로 다니느라 불편하진 않으셨수?"

고철로 엉성하게 끼워 맞춘 작업대에서 남루한 로브를 걸친 시체 남자가 구부정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갓 수선한 나노 장화가 들려 있었다.


"전혀요. 사실 장화를 안신어도 불편한건 없지만 싸우다가 가끔 발을 헛딛거나 어디 세게 부딛치면 발목뼈가 부서지더군요. 허허허. 왜 매번 바꿔낀 발목뼈는 이리 약한지..."


빅토코 슈메이커는 장화를 건내주며 낄낄 웃었다.


"잘 신고 나가게, 젊은 레옹."

"항상 감사합니다, 아저씨."


레옹은 장화를 신어보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손짓으로 가상 화폐를 꺼내 수선장이에게 준 그는 옆에 있는 빅토코의 로봇조수, 다글롭을 쓰다듬고는 전보다는 안정적인 발걸음으로 천막을 빠져나갔다.


빅토코는 멍청하게 고철 상자 더미 위에 앉아있는 다글롭을 쿡 찔렀다.

"이봐, 깡통 선생. 가서 곰팡이 빵 하나 사오지 않겠나? 저놈의 판금형 장화는 무거워서 고치고 나면 항상 배가 고파서 말이야."

빅토코는 레옹이 건내준 금화를 다글롭에게 주었다. 다글롭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천막 밖으로 돌돌거리며 사라졌다.


빅토코는 작업대 위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정리하고는 방을 가로질러가 흔들의자에 앉았다. 죽어서 감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흔들의자에 몸을 파묻었을 때의 안락한 느낌은 변함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빅토코는 그의 작업장을 훑어보았다. 살아있을 때도 꼼꼼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던 그여서, 작업장은 죽은 자가 생활하는 공간답지 않게 깔끔했다.


그의 흔들의자 옆에는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책장이 두개 있었다. 생전에도 책과 친했던 그였기에, 소설들과 교양 서적들 등 다양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가 죽어서도 애독가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빅토코는 책장 제일 아래에서 낡은 책을 꺼냈다. 사진첩이었다. 살아있을 당시에 한 고객이 선물로 주고 갔던 사진기 덕에 그는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잘 보존해 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


빅토코는 사진첩을 한장 한장 넘기며 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죽은 뒤로, 살아있을 때보다 머릿속이 탁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사진을 많이 찍었다.


눈이 총명하게 빛나는 젊은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에서 그의 눈길이 멈추었다. 1세대 우주 정거장 '트라크 알파' 에서 함께 정착했던 타네사였다. 잠시 그 순간을 되돌아 보는데, 다글롭이 돌돌거리며 곰팡이빵을 들고 왔다.


"주인! 잔돈 남았어! 이거 가져도돼?" 다글롭이 곰팡이빵을 이리 저리 던지고 받으며 물었다.

"그러시오, 깡통 양반." 빅토코는 장난스레 다글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늙은 수선장이는 빵 바구니를 들고 와서 다시 흔들의자에 앉았다. 호기심 많은 눈길로 다글롭이 테드의 어깨 위로 붕 떠올라 앉았다.


"이 잘생긴 친구 보이지? 이 친구는 최전방 결계 방호군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야망 큰 청년이였네. 함께 재미난 모험들을 많이 했지.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아마... '크이케 즈치' 에 들어가기 전인것 같군."


다글롭이 빅토코의 모히칸 머리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크이케 즈치는 주인이 죽었다는 곳 아니였어?"


빅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곰팡이 빵을 우물거리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은하단의 발견, 최초의 다차원 게이트를 이용한 촉망받는 전초기지, 크이케 즈치. 위스키. 구수한 담배 냄새... 비샤.


빅토코는 몸을 일으켜 선반을 열고 떨리는 앙상한 손으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 위에는 금빛 글씨로 `라프트 비샤의 최고급 담배` 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가 몽글거리며 작은 방 안에 가득찼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붉어진 빅토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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