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돌이오락실님 안녕하세요.
꿈돌이오락실입니다.
그간 너무 바쁜 일이 있었습니다.
7월 24일.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이장님 : 우리 마을에서 무슨 대회를 나가는 데 연극을 좀 하고 싶어.
- 꿈돌이 : 네? 연극이요?
- 이장님 : 그래. 연극.
- 꿈돌이 : 누가 출연하나요?
- 이장님 : 주민들이지 누구야.
- 꿈돌이 : 아...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
- 이장님 : 도와줘.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연극 도전.
공연날은 언제냐 물었더니
원래는 8월 27일인데 코로나 때문에 촬영으로 대체가 되었다며
촬영은 8월 13일이라고 하셨습니다.
7월 24일... 8월 13일... 한 달도 안남은 기간 동안
경험도 없고 관심도 없고 심지어 공연을 본 적도 없으신 분들이 태반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공연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평균 연령은 70세 언저리였고
4개의 대본과 8번의 수정을 거치며 완성된 대본으로
8월 4일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첫 마디는
- 꿈돌이 : 여러분. 9일 남았습니다. 9일 뒤 우린 공연을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난생 처음 대본을 잡아보게 되었고
어렵다고 못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이장님께서 억지로 부여잡아 앉혀놓고는 대본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깔깔 대며 대본을 읽어 내려갔고 첫 연습이 마무리가 될 무렵,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리가 이걸 어떻게 하냐며
10일도 안 남았는데 대본도 못 외우겠고 뭘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연습 3일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본을 다 외워오셨습니다. 어?
연습이 진행되는 9일간.
마을회관은 매일 밤 12시 1시까지 소품과 세트를 제작하는 공장이 되었고
시간이 남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은 회관을 매일 같이 들락 날락 거리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훈수를 두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내 못 미더우신지 당신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촬영하는 날인 오늘. 8월 13일이 되었습니다.
관객을 모을 순 없으니 우리끼리 하는 잔치였는데
도청과 군청 등 많은 관계자분들이 모이셨습니다.
대회용 영상이기에 풀샷으로 무편집본 제공이기에
스트레이트로 쭉 진행되는 구조였습니다.
촬영감독의 액션 사인과 함께 촬영이 들어갈 것이라고 전해드리러
무대 뒤 대기 중인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을 찾아 뵈었더니
표정이 너무 굳어버려서 저도 걱정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극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관객은 없었지만 찾아와주신 분들께서 많이 놀라고 가셨고
촬영팀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번 대회 영상을 찍고 있는데
이렇게 진짜 공연을 하는 팀은 처음이라며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어깨는 하늘로 솟아오르고
엄청 뿌듯해하시며 단체사진을 촬영하는데 모두 깔깔 대며 밝은 모습으로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이 모든 난리를 치고 집에 와보니
11시가 넘었네요.
오늘은 많은 생각이 듭니다.
대사가 많아 부담과 책임에 늘 미안해 하던 이장님
망했어 라는 대사가 그런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안 좋은 대사라며 바꿔 달라던 할머니
죽어도 못하겠다며 집에 가겠다는 할머니
이 나이에 손자 역할이라며 투덜 대놓고 겨울왕국 의상을 챙겨오신 할머니
머슴역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어디서 지게 까지 가져오신 할아버지
마을회관에서 세트 만드는 데 찾아와 하루에도 3~4번씩 한다. 못하겠다 를 반복하시던 할아버지
늦게까지 이어지는 세트작업 중에도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만들지 라고 하시던 아주머니
꽃밭을 만드는 데 꽃 만들 시간이 없으니까 집 앞 꽃을 다 꺾어 와 생화를 꽂아버린 할머니
13일이 촬영인데 11일에 갑자기 병원에 가시곤 출연을 못하게 된 할아버지
(주민분들 이야기로는 잘하고 싶고 폐끼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실수해서 부담감 때문에 가신거라 더군요.)
연습기간 내내 비가 오고 습해서 기분이 쳐질때 마다 화이팅을 외쳐주시던 부녀회장님
이런 공연을 한다고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발성 때문에 소리가 나겠냐며
걱정이 되서 어제 저녁에 "내일 갈게"라는 말을 하시더니
진짜로 오늘 와서 음향 세팅을 다 잡아주신 우리 음향감독님
정말 많은 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이래저래 힘들었고
그래도 열심히 살자 라며 살아왔지만
이 분들의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오늘 공연까지 마치고 나니
열정이란 무엇이고 열심히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9일만에 만들어낸 평균연령 70세 언저리의
공연도 본 적 없는 외딴 시골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공연은
그렇게 끝났지만 긴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오늘은 더 늦게 잠들려고 합니다.
오늘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거든요.
오늘의 기억을 잊고 싶진 않은데
SNS 도 잘 하지 않아 어디에 적어두지 생각하다
문득 생각나서 이 곳에 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