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계절이라 그런가 봄바람 설레는 이야기들이 많이 언급되네요. ^^
저도 거기에 편승해 기억 한구석에 묻혀있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이맘때쯤이겠네요.
아직 모든 것이 어리숙하고 미성숙했던, 처음 접하는 새로운 환경에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대학 신입생 OT 조 모임에서 처음으로 그 아이를 만났죠.
자그마한 체구에 유난히도 밝은 성격을 가진,
어느 지방의 사투리를 쓰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귀여운 아이였어요.
처음 서로 인사하는 자리에서 그 아이를 본 순간부터
가슴 한구석엔 당시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OT 조별 단체 활동에서 처음 잡아본 그 아이의 자그마한 손은 어찌나 따스하던지......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에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돌이켜 보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
그렇게 마음속에 작은 파장만을 남긴 OT가 끝나고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죠.
캠퍼스에서 오다가다 어쩌다 그 아이의 얼굴이라도 보며 인사라도 나누는 날이면 뭐가 그렇게 기뻤는지.
그러면서도 겸연쩍게 "안녕!" 이란 말 밖에 하지 못했던 그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피식~ 실소만 나네요. ^^
유난히도 사이가 좋았던 우리 OT 조는 OT가 끝난 뒤에도 자주 자리를 가지고 어울렸습니다.
다른 학과, 다른 수업을 듣는 그 아이와는 OT 조 모임 때가 아니면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모임이 있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죠.
하지만 정작 모임이 있는 날에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에 묵묵히 술잔만 기울였고, 그렇게 어느샌가 주당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운명의 장난인지 어느 날 누군가의 이야기로 시작한 마니또 게임에서
전 그 아이의 수호천사가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기뻤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애만 타는 나날을 보내던 중
처음으로 사보는 장미 스무 송이를 성년의 날에 건네주었죠.
그러면서도 뭐가 두려웠는지 속에 간직하고 있던 하고 싶었던 말은
정작 한마디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답니다.
참 답답하고 한심했었네요. ^^
그렇게 작은 파장이었던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저를 사로 잡아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커져가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전 알 수 없었고
누구도 해답을 알려주진 않았죠.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차올랐을 때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감정이 사그라지는 때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어찌 되든 그 아이에게 고백을 하느냐.
선택의 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모임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어느 계곡으로 MT를 가기로 했습니다.
계곡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고,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즐거운 시간이었죠.
그리고 그 와중에 혼자 앉아있는 그 아이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조용히 고백을 했죠.
"나, 네가 좋은데......"
그러자 그 아이는 갑자기 울먹이며 대답을 했어요 .
"미안, 나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요새 힘들어......"
전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선배에게 위로받으며 서럽게 우는 그 아이를 뒤로하고 전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무슨 짓을 했던 건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에 그 아이가 깊게 사귀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남자 집안의 반대로 힘들어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 아이와 접점이 별로 없었던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지금와서 보면 난 참 최악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
그 뒤로 어떻게 MT가 끝났고, 어떻게 그 아이와 멀어지게 되었고,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을 접은 채 잊어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냥 대부분의 그것들처럼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씻겨 나갔을 테지요.
각자의 생활 속에 그렇게 언제 인가부터 그 아이를 보게 되는 일이 없어졌고
마지막으로 친구를 통해 들은 소식은 그 아이가 결혼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
대부분의 기억들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도 있어요.
고백했던 그날 밤, 뜬눈으로 지새우며 바라보았던 계곡의 칠흑 같은 밤하늘과
거기를 수놓은 터무니없이 반짝이던 별들.
가끔 그사이로 떨어지던 유성이
내 기분도 모르고 참 잔인하게도 아름다웠다는 것과,
MT 기간 동안 누군가 반복해 틀어 놓아 계속 귓가에 맴돌던 노래 한 곡.
'그녀의 연인에게'
......
별거 아닌 내용인데 적다 보니 길어졌네요.
시시한 저만의 추억이지만 언젠가 라디오 보다가 생각나서 한번 글로 적어보고 싶었어요. ^^
그냥 왠지 세인님 방송 보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가끔 적어보고 싶어지네요.
사적인 내용이라 익명으로 올림을 양해 바라며 라디오 사연으로 읽어 주신다면
'K2-그녀의 연인에게'를 신청곡으로 부탁드립니다.
방송에 감사드리는 한 시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