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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TIP] 헝가리에 0-9로 패배했어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익명팟수
2017-03-28 22:50:29 1078 0 0

1954년 우리나라가 헝가리에 0-9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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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전 협정된지 1년도채 안되어 출전한 대회

대한민국의 6.25 전쟁은 3년간의 길고 긴 전쟁 끝에 1953년 7월 휴전하게 된다.

그리고 1954년 대한민국의 첫경기 헝가리전은 6월 17일이였다.

1954년 선수단은 단 휴전된지 1년도채 안되어 월드컵에 출전했다.

 

 

2. 국가대표에 대한 지원

1953년 7월 휴전이 된 후 1년도채 안되어 출전하게 된 월드컵.

그러나 대한민국은 휴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포츠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쉽게 말하면 스포츠'에'가 아닌 스포츠'따위'가 되는 것.

그래서 1954년 월드컵 대표팀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못했다.

 

3. 이동 문제

지금이야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좋은 상황이 아니였다.

당연히 유럽으로의 직항 비행기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었고, 월드컵이 열리는 스위스로의 직항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이동하기 위한 비행기? 전쟁이 끝난지 1년도채 안된 나라에 스포츠를 하기 위한 비행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에 직접 부탁해 미 군용기를 빌려 탄 후 유럽으로 가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유럽으로 거쳐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함)

그러나 이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해외여행 같은 것에 경험조차 없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동네 마을버스'타듯 유럽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을 해야만 했고, 비행기를 예약하지 못한 대표팀은다음 행선지인 방콕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항공사측에서 6월 11일에 비행기 좌석이 8개가 빠졌고,

6월 12일에는 12개의 좌석이 비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이후 김윤기 단장을 포함해 중요인물 8명이 6월 11일 비행기에 먼저 탑승하게 되었고,

6월 12일에는 감독인 김용식과 더불어 11명이 후속으로 떠나게 된다.

 

유럽을 가기 위해 일본에서 방콕으로 간 대표팀에게 또 다시 문제가 생긴다.

방콕에서 인도행 비행기를 타려 했으나 2자리가 없어 2명을 놓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옆에 있던 영국인 부부가

"월드컵에 참가해야 하는데 비행기 표가 없는게 말이 되냐?"라며

2자리를 양보했고,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은 이탈없이 인도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후 대표팀은 인도 캘커타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로 이동했고, 월드컵이 열리는 스위스 취리히에 입성하게 된다.

 

이동 경로 -> 대한민국 -> 일본 -> 방콕 -> 인도 캘커타 -> 이탈리아 로마 -> 스위스 취리히

 

4. 비행기의 문제

인도 캘커타를 지나던 도중 대한민국 선수단이 탄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고장나는 사고가 생긴다.

결국 대한민국 선수단은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 쌀국수를 해먹으며 비행기가 정상 작동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5. 언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하자 세계의 언론은 휴전된지 1년도채 안된 나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공항에 내리자 수 많은 언론의 기자들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앞길을 막고 질문하고 귀찮게 했다고 한다.

 

6. 지쳐버린 선수단

대한민국 대표팀은 기차, 배, 비행기, 버스를 갈아타며 출발한지 1주일만에 스위스에 겨우 도착했다.

당시 대표팀은 무려 50시간 이상을 기차, 배, 비행기, 버스에 있었다.

 

7. 도착 시간

대한민국 선수단이 스위스에 도착한 시간은 6월 16일 밤이였다. 그리고 헝가리와의 첫경기는 6월 17일 오후 6시였다.

 

8. 몸상태

50시간 이상을 이동수단 안에서 있었고, 휴전된지 1년도채 안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좋은 몸상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교체제도 마저 없었고, 부상당해도 심각한 부상이 아니면 그냥 뛰었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90분 내내 7명이 근육 경련으로 쓰러지고, 일어나서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9. 매직 마자르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경기 상대는 매직 마자르 군단이였다.

이 매직 마자르로 말할 것 같으면 월드컵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월드컵 우승팀들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팀이다.

심지어 1970년 브라질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쉽게 말해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페렌츠 푸스카스, 난도르 히데그구티, 귤라 그로시츠, 산드로 콕시스 같이 역대급 레전드들이 존재했다.

이 매직 마자르 군단은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7-1로 박살냈고,

월드컵 당시에는 우승팀 서독을 조별예선에서 만나 8-3으로 박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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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앞줄 맨 앞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1명인 페렌츠 푸스카스)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별예선이 모두 끝난 후 다른 경기들을 보고싶어 했다.

(대표팀은 2경기를 치루고 탈락했는데, 당시에는 먼저 탈락한 팀들은 남은 경기를 치루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대표팀에게 남은 돈은 없었고, 대표팀은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스위스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경기 배당금 8,400달러를 받아가라고 통보했으나, 대표팀은 이미 스위스를 떠난 후였다.

결국 FIFA는 한국은행으로 직접 8,400달러를 송금했으나 대표팀 선수단은 그 돈을 만져보지도, 볼수도 없었다.

이유인 즉, 대한민국 정부에서 선수단의 빚 청산으로 8,400달러를 모두 썼기 때문이다.

 

골키퍼 홍덕영

당시 알려진 바로는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인 홍덕영이 헝가리의 유효슈팅을 약 50여개나 선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골키퍼 홍덕영은 고작 9골만 실점했고, 경기 후 퇴장하는 홍덕영에게 당시 모인 관중들은 박수를 쳐주었다고 한다.

또한 홍덕영이 경기장을 나서자 당시 경기장 앞에 모인 관중들이 홍덕영의 사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구스타보 세베슈 헝가리 감독

헝가리가 대한민국을 9-0으로 잡아낸 뒤 당시 헝가리의 감독 구스타보 세베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자처럼 용감했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나 뛰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dotax/Elgq/1663685

 

퍼온 내용 중 추가

※ 당시 경기를 본 관중들은 뭐 이런 팀이 월드컵에 나왔냐며 야유했지만 내막을 알게 된 이후에는 대표팀 숙소에 와서시계,청바지,현금,통조림등 선물을 쌓아놓고 돌아갔다는 하는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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