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을 말하며...
때는 아마 학교 운동장에 개나리가 활짝 웃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반겨주던 봄날이었을 겁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저를 굉장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저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을 초대하여
조촐하게 공부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선생님의 서재 한 쪽 술장에서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평소 준법의식을 지니며 폴리스를 수호하는
헙법가치를 준수하는 시민이었지만
섹시하고 빠진 병의 라인...
퇴폐적인 파란색 라벨...
마치 어서 코르크를 따 먹어 달라는 듯 보였습니다
저의 에고와 이드... 그리고 초자아와 페르소나 모두가
그것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약 3온스 정도를 마시고
제임슨 포켓 병에 담아둔 보드카로 몰래 채웠습니다
꼴꼴 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드카를 채우던 중
방문이 열리더니 저보다 한 살 많던 선생님의 딸이
저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보드카를 조금 흘려버렸습니다
누나도 말을 잇지 못하며 동공을 떨었습니다
저는 침착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누나에게 말했습니다...
누나... 방금 거 못본 걸로 해주면 안 될까?
그러니 누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그거 아빠가 아끼는 거야...
저는 그 순간 더 큰 죄악을 저지릅니다..ㅡ
평소 그 누나가 저를 내심 사모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던 저는... 입막음을 애원하는 뜻으로
누나의 이마에 살포시 키스를 하였습니다
저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누나가 함고할 듯 했고
당시 저는 다른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을 뿐
누나가 마음에 아주 안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뭐 결국 한 사람에 감정을 이용하고
저를 믿고 아껴주는 선생님이 아끼던 술을 훔쳐 먹은 저는
한 편의 참회록으로 이 죄와 부끄러움을 모두 사할 수는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