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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쏘의 쏩쏩

규밥
2020-10-05 13:54:03 137 1 0

해를 피해 도망가는 새벽이 아직 유세를 떨 무렵 만물엔 잿빛이 물들어 있었다. 다시 밝아 올 날을 준비하는 소리가 고요했던 거리를 깨우고 꽃들도 내리쬘 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리를 쓰는 새벽 공기는 아직 자신의 영역임을 나타내듯 한껏 날카로워진 바람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아, 오늘도 춥다.”



동틀 녘 하늘빛을 담은 듯한 수단을 입은 사내가 거리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사내는 불어오는 추위에 굼뜬 다리를 재촉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로 포장된 도로는 우천 시 배수를 생각해 고안된 설계였지만 굽이 있는 구두를 신거나 마차, 수레를 끌 땐 걸리적거렸다. 오늘도 사내는 홈에 굽이 껴 두어 번 넘어질 뻔 하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투박한 필체로 ‘오리하르콘’이라 적혀있는 간판을 확인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새벽부터 요란했다. 턱수염을 땋아 하나로 정리한 드워프, 어깨부터 시작된 문신이 몸을 덮고 있는 풍채 좋은 무투가, 기다란 귀에 처마 밑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귀걸이를 하고 있는 요정과 싸구려 가죽 갑옷을 입은 신입까지 밖의 공기는 삽시간에 덥힐 만한 열기가 건물 안 로비에는 들끓고 있었다. 사내는 저마다의 열기를 뱉는 인파를 가로질러 안내창구로 향했다. 안내창구에는 분홍색 코르사주를 한 검정 미노타우르스가 앉아있었다. 검정 황소 머리와 목 밑으로 자라난 조각상 같은 몸은 몇 번이나 봤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 김트수 님! 오늘은 어떤 의뢰를 찾으세요?”



목소리도 완벽한데…….


천사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여신상의 외곽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몸은 아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내와 여인들의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머리만 빼고.


이곳에서 김트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내는 신관으로서 토벌 파티에 치유사와 마을의 의사로 하루살이를 했다. 수가 적은 신관이지만 직급과 사용할 수 있는 신력이 적었기에 그에 상응하는 쥐똥만 한 의뢰 금을 받았다. 그마저도 팀원들과 나눠야 했기에 그의 몫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길드로 출근해 의뢰 금이 높은 의뢰를 물색하는 것이 그의 하루 최대 일과가 되었다.



“쌍두 멘드레이크는 고생만 하니까 제외. 방울 목도리 도마뱀 50마리 포획? 이것도 신관인 나 혼자선 무리. 던전 속 원두 코볼트 소탕? 절대 무리지.”



김트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신관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의뢰는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낮은 의뢰비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한참을 의뢰를 고르는 중 쾅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김트수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길드 입구 쪽을 바라봤다. 크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는 신비한 마도구는 서쪽에서 최근 발명된 신식 마도구 ‘체인쏘’였다. 이 도시에서 저런 고가의 마도구를 쓰는 사람은 단 한사람 ‘체인쏘의 쏩쏩’.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걸을 때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제작된 플렛슈를 신고 길드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굽이 없는 탓일까. 드워프와 비슷한 아니 작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신장이 부각 되었다. 그녀의 갑주는 카본으로 만들어진 원피스의 형태였는데 넓은 암홀과 소매가 가오리라는 바다생물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숨을 죽이고 그녀의 얼굴를 바라봤다. 봄이 찾아와 꽃이 만개한 듯한 분홍 머리는 겨울을 앞둔 지금과 어울리지 않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취 같은 초록 눈과 밤새 의뢰를 하다 왔는지 눈그늘이 져 있었다.



“쏩쏩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내 뒤에 있던 안내원 미노타우르스가 격하게 그녀를 반겼다. 그녀는 피곤한지 인상을 구기고 미노타우르스를 노려봤다.



“자, 붉은 근육 곰의 척주랑 연골.”



접수대가 꺼지지 않을까 싶은 둔탁한 소리에 놀라 흠칫한 김트수는 쏩쏩이 가져온 소재를 봤다.


아직 살아있는 듯 뜨거운 피를 토해내는 머리와 깔끔하게 손질된 백색 척추, 보석 같은 연골이 반짝였다. 김트수는 소재가 주는 께름칙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쏩쏩이 저를 훑었다.



“야, 너 신관이냐?”



갑작스레 저에게 말을 건 그녀 때문에 김트수는 순간 벙쪄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심기가 불편한 듯 구기고 있던 미간을 한 층 더 구겼다.



“야, 귀먹었어? 사람이 묻잖아. 너도 저 소재 꼴 나고 싶니?”



그녀의 표정과 토해내는 욕설에 정신줄을 잡은 김트수는 손을 앞으로 저으며 다급하게 답했다.



“네…… 네? 아뇨, 아뇨! 하급 사제인 김트수라고 합니다.”



그녀는 저의 대답을 듣고 ‘흠.’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의 고민, 계산에 답이 나온 듯 정수리에 존재감을 뿜는 머리칼이 힘껏 솟구쳤다. 그리곤 저를 향해 한 번 더 말을 뱉었다.



“야, 오늘 정오에…… ‘죠잘-죠잘-조오잘’ 알지? 거기로 와.”


“예? 갑자기 왜…….”


“오라면 오는 거지 왜 이리 말이 많아?”



되물은 자신을 보며 들고 있던 체인쏘를 바닥에 찍는 모습에 옅은 살의를 느꼈다. 김트수는 침을 한 움큼 삼키며 대답했다.



“네! 네! 갈게요! 가겠습니다!”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짓고 길드를 떠나는 모습에 김트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다잡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김트수는 오늘 길드로 출근한 것을 저주함과 동시에 아직 살아 있음에 안도를 느꼈다.




———



쏩쏩이 만나자고 한 약속장소는 도시에서 제일 큰 펍이었다. 통칭 ‘죠죠잘’로 불리는 이 펍은 길드의 의뢰를 받고 소재를 파는 수집가들이 쉴 수 있도록 호텔이 있었다. 아마 쏩쏩은 그곳에 투숙 중인 것 같다. 김트수는 침을 삼켜 타는 목을 달랬다. 펍의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리석으로 된 내관이 보였다. 비싸 보이는 샹들리에는 겨울 밤하늘 속 별을 훔쳐 온 것처럼 반짝였고, 좌우로 줄 서 있는 기둥 사이 대리석으로 된 조각상들은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우아했다. 자신을 압도하는 분위기에 기가 죽은 김트수는 점점 어깨를 안으로 말아 넣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을 때 저 멀리 튀는 분홍 머리가 보였다. 그녀를 발견하고 총총걸음으로 그녀가 머무는 구역으로 다가갔다. 그녀를 부르려고 하던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저를 막아섰다. 구릿빛 피부와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안경이 이질적이었지만 그와는 잘 어울렸다.



“여긴 호텔 투숙객과 VIC(Very Important Collector) 분들을 위한 구역입니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목소리에 형태가 있었다면 그의 목소리는 분명 땅을 기며 바닥을 울렸을 것이다. 동굴 속 알 수 없는 메아리 같은 목소리가 저를 향해 경고하자 김트수는 한 춤 더 웅크렸다. 검은 사내에게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르던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어오고 뭐 해?”



날이 서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상냥하게 들렸다. 김트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녀를 따라 창가 쪽에 자리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소파에 앉자마자 음료가 작은 탁자 위에 제공되었다. 음료를 한 모금 마셔 바싹 마른 입안을 적셨다.



“저……. 왜 저를 부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트수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던전을 토벌할 거야.”



그녀의 대답을 들은 김트수는 마시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



“던전? 혼자서?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차 싶었던 김트수는 제 손으로 입을 막아 봤지만 이미 저의 생각은 입안을 떠나가고 없었다.



“왜, 못 할 것 같아?”



제 말이 같잖다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려 비웃는 그녀의 모습이 악동 같기도 미친 과학자 같기도 했다.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가슴이 일렁였다.



———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숨이 턱 끝에 겨우 매달렸다.


아니, 저 사람은 사람이 맞아? 어떻게 숨도 안 고르고 가지?


던전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집시가 관리하는 평원과 해골 병사 5,000마리가 득실거리는 협곡,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 김트수는 가슴이 터질 듯 빠르게 뛰는 심장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앞장 서가는 그녀는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는지 속도를 점점 높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그녀와 김트수의 거리는 골리앗의 한 걸음 정도 차이 났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중이었다.



“이래서 신관 녀석들은 안 돼. 그런 체력으로 성지순례는 어떻게 다녔느냐?”



저만치 떨어진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경마장에 울리는 총소리처럼 그 소리를 기점으로 김트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서 춤을 추는 체인쏘가 바닥을 한둘 내리칠 때마다 수명이 20년씩 깎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 도착하자 그녀가 나에게 수통 하나를 건넸다.



“마셔.”



수통 안에는 진흙처럼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질감의 물체가 있었다.



“이게 뭔데요?”


“근육에 에너지를 채워주는 포션. 내가 만든 거야.”



저의 질문을 따라 잇달아 들리는 답이 두 눈을 의심케 했다.


이게 누가 봐서 포션이란 말인가. 사금을 뱉는 습지대 괴물과 비슷한 모양인데.


앞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시선이 너무 고압적이라 두 눈을 꼭 감고 포션이라고 자칭하는 걸 들이켰다. 싸구려 초콜릿과 술을 섞은 맛이 난 포션은 나름 먹어 줄 만했다. 포션을 먹고 생각 외의 반응이 나오자 그녀의 어깨가 구름 위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던 욕망을 김트수는 아직 몰랐다.




———



던전 소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1층은 고블린과 코볼트 같은 아인들이었다. 쏩쏩은 그녀의 체인쏘로 그들을 한둘 도륙해 나갔다. 그녀는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던전을 돌파해 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붉게 물들었고 산기슭 석산이 만개한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했다. 신관이고 회복을 위주로 연마한 탓에 던전을 토벌하는 데 김트수의 도움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1층을 격파했을 무렵.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옷에선 아인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피곤한지 눈그늘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녀의 다리가 무너졌다. 털썩하고 주저앉은 그녀는 자신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김트수를 자극했다.



“야, 뭐해. 빨리 치료 안 하고?”



그녀의 작은 신장 때문에 평소에도 자신이 내려다봤지만 뭔가 상황이 달랐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강한 오리하르콘 길드 3번대 대장이라 할지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왜요?”



아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욕망을 끝내 못 참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나와 한숨도 못 자고 가슴을 졸인 탓일까 던전까지 오는 일이 너무 고되었나. 김트수의 눈은 피로가 광기를 만나 붉게 물들어 반짝였다.



“지금의 당신은 다리 하나 움직이는 것도 못 하고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무리일 것 같은데?”



김트수의 콧대가 하늘을 뚫을 것 같았다. 오만해진 그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흐음~. 제게 애교를 들려주시면 치료를 고려해 보죠.”


“미친놈.”




쏩쏩의 문자 그대로 그는 미쳤다. 지금이라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평소 말려있던 어깨를 펴니 생각보다 커다란 몸이 드러났다. 공작이 꽁지깃을 펼치듯 불어난 몸짓이 상황을 더욱 압박해 갔다. 쏩쏩은 등 뒤로 손을 꾸물거렸지만 거만해져 시야가 좁아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자, ‘이잉~. 오빠, 쏩쏩이 여기 다쳤는데 치료해 주시면 안 돼용? 여기여기 호~ 해 주세요.’라고 해 보세요.”



그의 요구를 들은 그녀의 표정이 한겨울 동짓날 달빛에 그려진 겨우살이의 그림자처럼 섬뜩함을 자아냈다. 그녀가 꿈틀거리던 손을 앞으로 돌렸을 땐 손엔 이상한 물질이 들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향은 좋지만 왜인지 꺼림칙한 물질이었다. 



“꺼져, 그냥.”



쏩쏩의 비장의 무기인 화학무기 KYU-D0N이었다. 쏩쏩의 기습을 김트수는 피해 보는 시도도 못 한 채 KYU-D0N을 맞고 액체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공짜 약통이 생겨서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으려 했건만.”



쏩쏩은 아까 김트수가 먹은 것과 같은 포션을 들이키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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