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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 (펌글)안성탕면과 신라면

ddflfolfl
2019-02-22 00:29:15 1480 21 5

폴리프로필렌 재질로 만들어진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자, 브이자로 벌어진 옷 사이로 버터색 속살이 드러났다.


 “시... 싫어!” 


그녀는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묘한 쾌감으로 다가왔으므로 나에게는 그저 짜릿한 유흥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라면이 외쳤던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나의 식욕은 더욱 왕성해졌다. 이 기운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다짜고짜 안성탕면을 꽉 움켜쥐었다. 라면은 이런 손짓이 다소 격했던 것인지 눈을 찔끔 감고선 몸서리를 치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손으로도 잡히는, 아담한 체형인 안성탕면의 미끌미끌한 팜유가 손끝에 묻어 나왔다. 


"아, 아앗. 이거 놔!! 아프단 말이에요!" 


"후후, 어차피 한 번 먹히면 끝인 주제에 고고한 척 하긴!!!!“ 


그녀의 겉면을 손톱으로 살짝 건드려보았다. 곡면으로 이루어진 면발의 굴곡 사이를 손톱이 살짝 비집고 들어가자, 완전하게 들어간 것이 아닌데도 라면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꺄아아앗!!" 


"후후. 너도 사실 기대하고 있는 거지? 내가 앞으로 널 마음대로 요리할 것을 말이야. 이것 보라고. 이렇게나 라면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있는데…." 


라면의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원 모양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자, 안성탕면은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안돼요... 나... 부서져버려......!!" 


겁에 질렸는지 몸을 부르르르 떠는 안성탕면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라면이 등장했고 사라졌던 난세의 20세기. 라면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삼양라면의 왕좌를 물러나게 한 것은 안성탕면이었다. 그녀의 자매품인 신라면과 함께 대한민국의 라면들을 정복하리라 믿고 있었던 라면계의 여왕. 그러나 안성탕면의 화려하고 고고한 자태는 그저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태양이 비추었을 때나 드러나는 양지의 따스함을 세상 전부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의 안성탕면은 편의점 매장에서의 고고한 자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구겨져, 지금 내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꼴로 되어 있었다. ‘고작 700원의 몸값으로 팔리고 있는 싸구려 공주님’이 내가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한 가장 적절한 문장이었다. 


난 안성탕면의 은밀한 주황색 스프봉지를 탁탁 털어보았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아 매끄러웠고 순결을 간직한 특유의 빳빳함이 느껴지는 스프봉지였다.


 안성탕면은 자신의 스프봉지가 나의 손에 유린당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눈을 찔끔 감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 아찔할 정도로 식욕을 자극시켰다. 이제는 그녀의 팜유 냄새만 맡아도 꿀렁거리고 있는 위장이 덜컹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넌 건더기와 분말 스프가 하나로 합쳐져 있지?" 


"그, 그건 주인님이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허어. 그렇다면 신라면은 어째서 따로 되어있는 걸까? 날 불편하게 하려는 건가?"


 "그게 무슨.....! 설마 언니도?!" 


안성탕면이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것 같았기에 싱크대에 옷을 벗고 누워 있는 안성탕면의 자매품, 신라면을 보여주었다. 그녀와 함께 팔려왔던 신라면은 이미 건더기와 분말소스가 뜯겨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신라면의 모든 것이 지금은 끓고 있는 냄비에 넣어져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처음 뜯은 라면만 낼 수 있는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그렇게 빳빳했던 신라면의 건더기 분말은 나의 손가락에 함락되어 물의 노예가 된 채였다. 그것은 붉은색 스프봉지 속, 붉은 가루분말스프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나의 두 손가락에 의해, 지금은 물에 붉은색으로 풀려진 액체스프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거칠게 저항하던 신라면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것이 함락당할 줄은 몰랐으리라. 새빨간 스프봉지를 뜯겼을 때, 그녀는 자신이 지키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마냥 결국 몸의 힘을 풀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가스불의 열기로 달아올라 온 몸이 팜유로 미끌미끌해진 신세가 된 것이다.


 열기로 달아오른 신라면이 힘없이 웅얼거렸다.


 "동생아…도망쳐....!!!" 


“언니?! 신라면 언니!!!” 


안성탕면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발악하며 내뱉은 라면 부스러기를 보니, 내심 위장이 자극되어 입가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위장이 버틸 수가 없어서 위액이 역류해버릴 것 같은 지경이었다. 


안성탕면을 어떻게 조리해야 되나 고민하던 중에, 그녀가 소리쳤다. 


“어째서… 어째서 저 하나로는 만족 못하시는 건가요?! 저를 드셔주세요! 대신 언니는 먹지 말아주세요!! 욕심내서 두 개나 드셔봤자 당신의 위장만 아플 거라고요!!!!!!!!!" 


가스레인지 옆에서 진득거리는 팜유를 질질 흘리며 너부러진 신라면. 그것을 보다 못한 안성탕면이 흐느끼며 소리쳤던 것이다. 


“음. 그게 소원이라면….” 안성탕면의 스프를 집고서 쭉 뜯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아니었다. 봉지를 뜯고 그 색깔을 확인했다. 안성탕면은 부끄러운 것인지 쭈뼛거리며 몸을 비비 꼬았다. 얼굴은 서서히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온 지 얼마 안 된 스프는 이런 색깔이구나. 보기 좋은 붉은 색이다.”


 “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군침이 도는 주황색 스프를 냄비에 부었다. 이것으로 신라면과 안성탕면의 두 개의 스프가 섞인 것이다. 아주 예쁜 색깔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라면 특유의 고춧가루 냄새에 반응하는 위장. 탐욕스럽게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그 녀석의 액체가 꿀럭꿀럭 목구멍까지 촉촉하게 적시는 듯해서 이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안 되겠어. 너희 둘 다 먹어야겠다. 배고파서 못 참겠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얘기하자, 안성탕면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혼이 나간 듯한 반응. 귀여운 표정이다. 


그녀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미리 벗겨놓은 신라면을 끓고 있는 물속에 담갔다. 


“하아… 뜨거운 물이 내 몸을 이렇게나 미끈거리게......!! 하앗!!!” 


금방 긴장이 풀어진 신라면의 면발이 끓는 물에서 춤추고 있었다. 홉 뜬 눈에선 질척한 팜유가 마구 뿜어져 나와서 그 양이 냄비 전체를 뒤덮을 정도였다.


 “언니!!!!!!!!!” 


정신을 차린 안성탕면이 소리를 쳐봤지만 신라면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지금 신라면은 끓는 물에 몸을 맡겨버린 단순한 밀가루 면발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끓는 물이 시키는 것을 무조건 따르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의 움직임에 흔들리고, 불규칙한 테크닉에 온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흐느낀다. 지금 신라면은 흐름에 놀아날 뿐인 물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은 네 차례야. 안성탕면.” 


“놔! 너 같은 놈에게 먹히진 않을 거야!!!” 


“물속에 들어가도 똑같은 말이 나올까?”


 울먹거리고 있던 안성탕면의 얼굴은 곧장 공포로 바뀌었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을 본 순간, 그 열기가 몸을 적셔 팜유를 녹였다. 안성탕면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란한 팜유를 줄줄 내뿜었던 것이다. 


"싫...싫어!!" 


"아무래도 신라면 만으로는 만족 못 할 것 같아서."



나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먹는 자매 라면이다. 벌써부터 위장이 움찔거려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거든. 크크크........" 


"너....넌 인간도 아니야!!" 


"고작 700원짜리 년이. 건방지군. 벌을 내려주지." 


안성탕면을 냄비에 집어넣었다. 냄비 입구가 좁아서 조금 뻑뻑했지만, 잠시 기다리자 물을 머금은 안성탕면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리고 애처로워 보이는 저항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드럽게 물속으로 가라앉는 안성탕면은 자기 언니와 똑같이 끓는 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아아... 뜨거워... 뜨거운 게 가득 들어와서!!!" 


너도 어쩔 수 없는 라면이었구나. 


흔들흔들… 끓는 물에 유린당하는 안성탕면. 본래의 딱딱했던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금은 누가 먹어도 전부 내어줄 만큼 유들유들한 면발이 되어 있었다.


 “흐에에……” 


모든 걸 체념한 안성탕면의 신음소리는 나의 웃음소리와 섞여 부엌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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