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했다. 너 때문에 맘 고생하는게, 부모님 앞에서 네가 너 자신의 상황을 부정해야 했었던게,
그게 다 내 현실 때문이라는게, 그래서 우리는 끝이났고 그런 내 독단적인 선택에 반발하던 너는 한번의 손찌검과 함께 사라졌지만 너는 마치 내 주위에 맴 도는듯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다 보니 평소라면 넘어갔을 일들도 나는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것에 고생하던 것은 내 주위 사람들일 뿐이었다.
더위는 그런 내 속에 장작을 밀어넣듯 더욱 더 뜨겁게 타올랐고 밤이 되어도 그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 더위를 핑계삼아 나왔을 뿐이었다. 그래 그랬었다.
(사진은 그저 참고입니다)
월요일 밤 11시 취준생이 누구를 부르기엔 너무 미안한 요일이었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시간이었다.
집 근처 호프집, 너와 함께 자주 들렀고 2020년을 앞둔 요즘 보기 힘든 7,80년 감성이라며 좋아하던 그곳.
그때는 둘이었고 지금은 홀로지만.
네가 좋아하던 옛날 통닭, 나는 네가 치킨 다리를 먹기전에 다리 끝을 먼저 먹던, 손이 더러워지지 않고 잡을수있다는 이유에서나온 그 버릇이 좋았다.
웃을때 왼쪽 볼에만 생기던 보조개도
맛있는걸 먹을때 자연스레 잡히던 미간의 주름도
데이트할때 내 손을 잡으면 놓지 않겠다는 듯 꼬옥 힘을 주었던 것도
항상 자신의 다한증 때문에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우울해질 무렵이었다.
띠링! 핸드폰이 울려왔다.
자주 보던 스트리머의 방송이었다. 책을 읽어주는 날이었고 오늘은 내가 신청한 책이었다.
'동백꽃'
나는 천천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부족한 데이터를 모아 라디오로 듣기 시작했다.
중저음의 편안한 목소리가 귓속을 맴돌았고 그제서야 나는 내 머릿속에서의 너를 조금씩 밀어낼수있었다.
중간 중간 어색한 연기와 점순이의 행동, 고추장 물 고문에서 웃음이 터지며 정말 오랜만에 웃어본다고 생각했다.
점순이와 내가 노란 동백꽃 밭으로 파 묻히는 그 순간, 그 알싸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한 순간, 너의 체취가 떠올랐다.
너의 모든것을 하나하나 되새기는 것이 고통이 될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던 행복한 순간이었어.
고마웠어 사랑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