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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공포벌레

윾기
2020-06-29 16:46:51 99 2 3

어두컴컴한 공간, 그리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같으면서도 어딘가 웅웅 거리는 날개짓 소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꾸준히 들려왔다.

이때 즈음, 나는 깨닫는다.

아, 또 이 개같은 꿈을 꾸는 구나.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이 망할 꿈 때문에 시간 개념이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고, 이 기분 나쁜 꿈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으니 말이다.

파라라라락!!!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나는 어둠 속에서 꿈쩍도 안 하던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도 질러대서 목이 쉬어버린 비명소리는, 덤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아, 또 기분 나쁜 꿈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꿈에 나오는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식은 땀이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와서 턱에 방울 지듯이 맺혔지만 그걸 닦을 시간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마라톤을 마친 마라토너처럼 거친 숨을 헉, 헉 거리며 입에서 내뱉은 내 망막에 비친 것은 벽을 타고 돌아다니던 갈색의 생명체였다.

난 저 개자식의 이름을 알고 있다.

바퀴벌레, 저 빌어먹을 해충!

그래, 이제 생각났다. 내가 이 악몽을 꾸기 시작한 날.

그 날도 나는 겁대가리 없이 인간의 영역에 발을 들인 바퀴벌레 몇 마리에게 천벌을 내려줬었다.

변기의 물에 흘려보내면 너무 친절하니까 알조차 까지 못하게 F킬라와 라이터로 놈들을 지져 죽였었다.

그리고 그 날 밤부터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 나쁜 악몽을 꾸기 시작했고 말이다.

"개 같은 바퀴벌레 새끼들! 아니, 개에게 너무 미안 할 정도지. 너넨 오늘 다 뒤졌다. 진짜로!"

악에 받힌 내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녀석은 뽈뽈 거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농락하듯이 벽에 구멍난 틈새로 들어가버렸다.

이불을 걷어찬 내가 탁자 위에 있던 F킬라와 라이터를 들고 그 구멍으로 향하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바스락? 낙엽도 없고 선풍기도 안 틀어놓은 방에서 무슨 바스락 소리가 들리지?

내가 과자 봉지를 바닥에 놔뒀던가? 아니, 바닥에서 들렸다기에는 너무 생생하게 들렸는데?

천천히 몸을 움직여서 거울을 바라보자 내 어깨에 바퀴벌레가 찰싹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씨, 씨발! 씨발, 뭐야 이게! 꺼져, 꺼지라고오오!!"

마치 구애하는 닭마냥 몸을 거칠게 흔들며 라이터를 들고 있던 손으로 거칠게 어깨를 쓸어내렸지만 녀석은 유유히 날개를 펼쳐서 날아올랐다.

파르르르륵!!

그리고 녀석은 내 콧잔등 위로 걸터앉았고, 나는 비명과 함께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으아아악!! 아악, 아아아악! 꺼져어어!"

퍽!

"으, 어? 피..."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뜨뜻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손으로 닦아보자 빨강 피가 묻어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 모서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신이 너무 없어서 발작하다가 머리를 박은 모양이었다.

하, 쪽팔리게 무슨 바퀴벌레에 쫄아서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냐...

갑작스레 몰려오는 졸음에 깜빡거리던 눈이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은 것은 유유히 내 앞에 착륙하는 바퀴벌레였다.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몸은 왜 이렇게 무거워?

눈을 깜빡이며 팔다리를 움직여보려 했으나 몸이 너무 무거웠다.

아, 맞아. 바퀴벌레.

바퀴벌레에 놀라서 난리치다가 침대 모서리에 머리 박았었지.

친구 놈들이 들었으면 배꼽이 빠지도록 날 비웃을 일이었다.

그런데 몸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마치 몸에 납덩이가 달린 거 같았다.

등도 엄청 간지러운 게 머리에서 흐른 피가 등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 방이 이렇게 크게 느껴졌던가?

그리고....내 눈에 내가 보였다.

이상한 건 알지만 현실이었다. 어째선지 내 눈에 내가 보이고 있었다.

왜 내가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거야? 심지어 크기도 무슨 거인 처럼 느껴졌다.

내 시야에 비친 나는 피범벅이 되어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게 그 유체이탈인가 뭔가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찰나,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파라라라락!!

익숙하면서도 짜증나는 날개짓 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얘는 또 왜 이렇게 커?

이제서야 나는 깨닫게 됐다.

내 방과 내 몸, 그리고 옆의 바퀴벌레가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작아졌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파라라라라락!!

내 귀에는 여전히 바퀴벌레의 날개짓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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