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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원망하는 습관.

익명1233015b
2018-04-29 00:21:37 721 2 0

안녕하세요. 사연 처음 써보는 익명입니다 :)

저에게는 정말 고질적인 습관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제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9살 전후로 나뉩니다. 

9살 전에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로 좋은 주택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친구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집 창문으로 엄마가 부르면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고, 식탁에서 방귀뀌는 아빠한테 짜증도 부리고요. 또 그걸 따라하려고 했다가 더럽다고 잔소리도 듣고, 반찬투정도 부렸습니다.


9살 이후로 부모님은 급격하게 사이가 안좋아지셨습니다.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해주지 않거든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집에 있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저희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잘 되지 않았죠.

매일 매일 부모님은 싸우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울면서 말리다가 몇 달이 지나자 어느샌가 그저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좋은옷이나 신발을 신은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사달라고 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3살 차이나는 언니가 먼저 대학을 가면서 집에는 저 혼자 남게 되었죠. 가끔은 처음보는 사람이 집문을 두드리며 부모님을 찾으면 부모님이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고 말해야했습니다. 언니는 제가 걱정되는지 자주 연락을 하고 선물을 사다주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고3이 되면서부터 집 상황이 나아지면서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부모님이 싸우시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좋은 학원도 과외도 다닐 수 있게 되었고요. 부모님은 여전히 돈과 일때문에 힘들어하셨지만 예전처럼 집 분위기가 우울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해 교양으로 심리학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조성해주는 가정환경과 양육방식이 성인으로 자라나면서 갖게 되는 지능과 가치관, 성격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많은 원리와 이론을 통해 설명해주셨죠.

비록 좋은 가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저는 제 부모님께 큰 원망감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못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그 강의가 저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 그 이후로 저는 제 모난 성격의 많은 부분의 원인을 부모님에게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사교성이 없는 걸까. 왜 똑부러지게 말하지 못하지? 인간관계에 있어서 왜 항상 불편하다고 느낄까. 왜 나는 친구가 쓴 돈과 내가 쓴 돈의 금액을 항상 비교하고 있지? 왜 타인을 의심부터 하고 비꼬면서 생각하는걸까.

저는 심리학 강의에서 배웠던 이론에 제 부모님이 저에게 했던 반복적인 행동들을 항상 대입해보며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대입한 결과로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 이런식으로 형성된것이 아닐까 하고요.


요즘은 상황이 좋아져서 가족 외식을 자주합니다. 하지만 9살때의 그 식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죠.

이제 주말에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아빠한테 다정하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아빠는 일 얘기,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얘기, 그리고 의대 남자 만나서 결혼하라는 얘기를 자주 하십니다. 

가끔은 제가 먼저 말문을 틉니다. 나를 이렇게 키운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빠의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나는 예전에 니엄마랑 많이 싸우긴 했지만 그 외에는 너를 부족하게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아빠가 저를 부족하지 않게 키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감정들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많이 원망감을 느끼곤 합니다. 상황이 좋아진 지금까지도.


그 심리학 강의를 끝내면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죠. 

'분명 지금의 여러분을 만든 원인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부모탓을 하며 살아갈 거예요? 애도 아니고 성인인데, 이제는 혼자 노력하고 해결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저는 혼자 제 일부를 바꾸어보려고 노력해봤습니다. 앞으로 제가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 분명 제 성격에 대해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고치지 않으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노력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그 부분조차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책임을 전가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과거의 기억속에 얽매여 삽니다. 

비오는 날 불꺼진 집에 들어가면 예전에 비가 오던 날 119 들것에 실려 가던 엄마가 떠오르고요. 

아수라장이 된 거실에서 담배를 피는 아빠. 밤새 흐느껴 울던 목소리도.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공부하던 저도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아픈데 이제는 '내게 왜 그랬냐'며 투정부리고 울어버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애가 아니라 성인인데 아직도 혼자 노력하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밤에 쓰다보니 감성에 젖어서 먹먹하게 쓰게 되었는데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얻고싶어서 쓴 글은 아니고요,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적어보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우울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사회에 나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스스로 달라질 날이 올거라고 조금은 믿고 있습니다.! 괜히 분위기를 너무 우울하게 만드는건 아닐지 걱정되네요 ㅠㅠㅠ따흑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청곡은 Avicii & Conrad Sewell - Taste the Feeling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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