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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남산에서

케이파인
2020-07-07 00:50:16 81 1 0

"이 나이쯤 되면 청첩장 받는거에 익숙해야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실소가 터졌다.


청첩장을 받는게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닌걸 알면서도 그렇게 의미를 새기려한 내가 웃겨서기도 했고, 청첩장 속 너의 표정이 예전을 떠올리게 해서였다.


'넌 행복해 보이는구나 나도 그래야할텐데'


네가 결혼하는 예식장은 친척의 결혼식덕에 가봤던 곳이기도 했다.


종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회사원들의 숨결이, 젊은이들의 열정이, 광화문역 주위의 수많은 회사들을 타고 한옥마을과 광장시장을 지나가는 그런곳.


일찍 출발해야했다. 속에 묻혀있던 너를 보내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네가 결혼하는게 이상하지 않았다. 넌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니. 혼자 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였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인 나를, 너는 궁금해 했다.


차창으로 건물들이 보였다. 왼쪽엔 현대적인 건물들이, 오른쪽엔 옛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있는 창경궁이. 너와 나를 보는듯 했다. 


예식장에 들어서자 잊고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이다! 얼마만이야?"


오랜만에 들음에도 익숙한 하이톤의 목소리 그래 그동안 먹고산다는 핑계로 연락도 못했던,  현주, 너구나.


"야 넌 좀 살아있는지 얘기좀 해줘라 어떻게 애가 SNS 하나를 안하냐?"


우리중에 가장 먼저 결혼해서 애도 안고있는 한성이. 아이는 낯을 가리는지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내분은 어디가셨어?"


나는 오랜만에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복을 입으신 네 부모님께 차마 인사는 드리지 못했다. 그러기엔 이 자리에 너와 나의 과거가 너무 민망했다.


현주에게 부탁하니 식권 받아올테니 도망이나 가지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도망가지 말아야지. 받아들여야지. 이젠 그래야 할때니까.




웨딩홀 안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 걸어오는 너, 그리고 들려오는 친구들의 환호성. 자연스레 나도 소리질렀다. 멋있어 너.


그리고 환하게 웃는 너, 그 입꼬리 하나때문에 내가 너에게 빠졌던 걸 넌 알까?. 이젠 그저 하나의 입꼬리일 뿐이었다.


뒤이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신부, 머메이드 드레스는 피아노의 선율에 맞춰 반짝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했다.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야, 나와는 정반대로. 그러니까 정말 행복하게 살아.




예식이 끝난후 뷔페에서 식사를 하며 친구들과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한성이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후 걱정을 하며 산다고 했고, 현주는 울상인 표정으로 사내연애의 힘듬을 토로했다.


"너는?"


이윽고 들려오는 어색한 목소리, 너.


어느새 신부와 같이 와서 말을 거는 너는 하얀 화장을 했음에도 자그마한 붉기를 알수있을정도로 이 상황을 어색해 하는듯 했다.


"난 그냥 사는거지 뭐, 항상 그랬듯이"


손을 턱에 대고 너스레를 떨면서 얘기하니 주위 애들이 야유를 보내며 아우성쳤다.  


"아 왜, 사람이 일찍 변하면 죽는다고 하잖아"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신부에게 축하한다고 신랑에겐 빨리 가보라고 재촉할뿐이었다.




차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차안에서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나는 여기를 왜, 무슨 이유로 왔을까?


남산, 그렇게도 다르던 우리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데이트 장소. 이유가 달랐음에도 결과적으론 장소가 같으니 자주 찾아오곤 했었다.


걸어야 했다. 고민은 발로 뱉어내야하는 것이니.


묵묵히 걸어올라간 남산타워 앞엔 커플들이 즐비했다.


벚꽃지는 3월, 주말이라는것이 이렇게 컸던가 싶은 순간 보이는 풍경.


그래 이 풍경에 숨이 멎었었고 눈물이 흘렀다.


너는 운동한것 같다고 좋아했고. 바람이 시원하다 좋아했던 이곳.


네가 슬며시 잡아온 손이, 네가 학생시절 미쳐살았던 복싱덕에 거친손이 그렇게 따뜻하단걸 알려준 이곳.


아무것도 모르는 척 풍경을 바라보는 네 눈에서 빛들이 살아 숨쉬었던. 그 순간이 기억이 나서였구나.


그때 학생시절 서로의 이니셜을 적어 하트 표시해둔 자물쇠가 보였다.


"아니야. 이젠 진짜 끝이야 친구야"


품속의 볼펜을 꺼내 그 하트에 X표시를 한뒤 다시 풍경을 바라봤다.


한없이 뜨거웠고 한없이 열정적이었던 불같은 너.


이제 잘가. 나는 내 삶을 살아갈게.




ps.X자 표시한 자물쇠는 사실 주인공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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