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남 0

빙남은 영웅이었다. 세계를 구원할 사명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누구에게나 따뜻함이나 친절함을 가지고 대했다. 설사 그게 악인일지라도. 그러나 지금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노을져가는 늦은 오후, 집안의 흥건히 젖은 핏물과 그 위에 자신의 선물을 쥐고 있는 딸의 주검. 그 것이 전부였다. 

빙남은 저 혼자의 힘으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성장했으며, 사람들을 돕고 얻는 감사인사와 머물 수 있는 집 한 켠이 빙남에게는 가장 쉽고 편안한 것들이었다. 그의 기술은 빙결 ㅡ 누구보다 차가웠지만 도움받는 사람들에겐 따뜻하기 그지 없었다. 

빙남의 뛰어난 실력을 두려워한 세계의 흑막이라 할 수있는 악당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악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은 빙남에게 자신의 밑에서 일하거나 자신의 손에 죽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종용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빙남은 악인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폐인으로 만들었지만 살려보내는 것으로 응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 빙남은 차츰 많은 악의 무리들을 해치웠고, 세상에는 평화라고 불리울 수 있는 분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빙남은 자신이 구했던 여자와 함께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그 사이에 딸 하나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겨진 악의 무리들의 공격 시도는 한층 더 빈번해졌다. 어느 날 또 한 번의 기습이 있었다. 빙남으로서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악의무리는 빙남을 이기지 못할것이라 여겨 빙남을 흔들기 위해 그를 노린 것이 아니라 빙남의 아내와 딸을 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빙남이 폐인으로 만들어 살려보냈던 수많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빙남에 의해 폐인이 된 후에 자신들의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하였으나, 결국 자신들을 폐인으로 만든 빙남에 대한 원한과 부귀를 누리던 과거를 잊지못한채 큰 보수를 약속 받고 빙남을 습격하려 이런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아내와 딸의 주검을 본 빙남은 폭주하여 암살자들을 찾아가 모조리 죽여버렸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평범한 이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런 빙남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평화가 도래한 세상이 보기에 ㅡ  빙남이 죽인 이들은 그저 자신의 이웃, 불구를 가졌지만 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이 살던 이들 이었고 그런 사람들을 소위 '영웅' 이라 불리던 빙남이 학살한 것이나 다름없는것이었다.

그래서 세계는 ㅡ 얼핏 평화로워진 세계는 '영웅' 빙남을 '학살자' 라 부르며 멸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