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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있었던 기차 썰

커러군
2019-08-09 15:15:21 420 0 1

한 5년 전쯤 직접 겪었던 일을 한 번 올려봐요.


대학생 시절 학비도 내고 용돈도 좀 벌어볼 요량으로 이것 저것 일을 구했던 적이 있어요.

사람 대하는걸 정말 귀찮아 하던 저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알바같은건 엄두도 못 내고,

거리는 멀지만 지방 분교의 조교 자리를 구하게 되었죠. 그나마 학생들은 좀 만만했거든요.


분교는 무궁화호를 타고 영등포에서 한시간쯤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었어요.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밖을 보니 어느 지하철 역을 지나고 있었죠.

어느 역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평택이었는지, 안양역이었는지.


그런데 그 순간, 기차가 무언가를 밟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단단한 무언가를 기차가 밟고 지나가는 느낌?

처음에는 조약돌 같은걸 밟았겠거니, 아니면 누가 철로에 쓰레기를 버렸나 했죠.

까마귀들이 돌을 철로에 올려놓는 경우가 있어서 사고가 자주 난다고 하잖아요.


그 날은 무언가 좀 이상했어요.

조약돌을 기차가 밟을 때 이렇게 우드득 하는 느낌이 오래 가던가?

작은 돌이면 튕겨나갈텐데.


마치 기차의 모든 바퀴들이 조약돌 하나를 계속 으깨려는듯

5초 정도. 계속해서 우득 우드드득 하는 느낌이 좌석을 통해 전해졌죠.

그리곤 기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드는걸 붉어져 가는 하늘을 보고 알았어요.


안내 방송은 단순했어요.

"역 통과 도중 선로 사고로 인해 잠시 정차합니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급행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잠시 정차합니다"

따위를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의아해 했지만, 역시나 다들 소리를 듣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지라

무언가 철로에 있던 것을 기차가 밟고 지나갔겠거니 생각했나봐요.


하지만 정차한 시간이 10분, 20분이 지나며 웅성거림은 조금씩 커졌고, 어느새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알게 된 사실이 생겼어요.


이 기차가 밟고, 으깨고 지나간 것은 사람이다.


저는 기차에 사람이 치이면 교통사고처럼 사람이 날아가거나, 튕겨져 나간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면

그 무거운 기차는

마치 조약돌처럼

사람의 뼈를

으깨고 부수고

지나가요.


기차가 정차되어 있는 동안, 저는 차내 방송보다는 인터넷 기사로

일을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어요. 어느 아주머니가 철로로 뛰어들어 자살.


수습을 위해서였는지 기차는 40분이 지나서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는 조교 수업에 늦겠다고 교수님께 연락하고, 학생들에게도

오늘 수업은 휴강이라고 공지를 올렸죠.


어느새 해는 완전히 건물들 사이로 넘어가 캄캄한 어둠이 내렸어요.

역을 약간 지나쳤기 때문인지, 제가 앉은 곳의 창밖은 꽤나 어두웠죠.


손전등을 든 사람들이 밖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제가 앉은 좌석 아래쪽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외치더라구요.


"찾았다!" 라고.


그리곤 곧 기차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는 방송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이 찾아낸, 제 좌석 아래에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에도,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지만 그렇게 무섭진 않네요.

그저, 어떤 힘든 일이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삶에서 밀어냈을까 하는 안쓰러움과,

조약돌 같은 것을 밟고 지나가는 기차의 느낌만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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