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던 1집의 앨범 소개로 추정되는 문장에는 "목소리가 약하고, 노래를 잘 못 하고, 곡들이 좀 유치하고, 음질이 좀 안 좋지만"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이 '가수'의 음악은 우리가 들어보지 못 한 영역의 것이다.
들어보면 확실히 음질의 상태가 나쁘기 짝이 없다. 음절들은 스스로 부서지며 어떤 단어를 말했는지를 짐작할 수가 없고, 레코딩은 어디서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소리가 붕 뜬다. 하지만 이런 '형편 없는' 수준의 음악은 분명 새로운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음악에 대해 "잘 부르는 것"을 항상 동경했지만, 과연 '원했는가'?
우리는 곡의 분위기를 원했지, 단순히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곡이 전하는 테마는 단순히 잘 부른다고 전해지지 않는다. 못 부르더라도 간절한 노래라면 그 노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곡에서의 분위기는 간절함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와는 또 거리가 멀다.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곡 소개대로 정말로 '목소리가 약하고 노래를 잘 못 하고 음질이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난해한 가사 때문인지 열심히 들어봐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다. 통기타를 쓰고 있는데도 싸이키델릭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게다가 그것들만으로 곡을 설명할 수가 없다. 장르가 정확히 떨어지질 않는다.
예시로 (당시)공중도덕 첫 앨범 <공중도덕>의 스타트를 끊는 곡 '하얀 방'은 분명 도입부에서부터 절망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가져가고 있지만 가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 분위기에서 붕 떠오른다. 곡이 끝날 때즈음이면 도대체 어떤 분위기에서 시작했고 끝났는지조차 기억할 수가 없다. 곡 제목의 하얀방은 결국 곡에서 모티브로 하는 화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낸 것인지 아니면 가사 중 계속해서 언급되는 비행기의 추락 상황을 나타내는 것인지 아니면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가사들을 되돌아볼수록 그 의미는 부서지고 무너진다. 게다가 이런 곡들이 몇 개나 더 있다. 이 불친절한 결합은 2집에서 더 심화된 실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더 유치하고 형편없어졌다(1집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곡 한 곡의 분위기는 그러나 우리들을 그 세계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한다. <쇠사슬>의 가사는 언젠가 '힘든 노동자의 하루'라는 메모집이 있다면 거기서 몇 문장을 빌린 것 같지만 그보다도 더 섬뜩한 분위기이다.
<무너지기>의 곡의 가사들의 분위기를 보면 종교적인 색채를 순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으로만 귀결되지도 않으며 1집에서도 그렇듯 명확히 떨어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곡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함께 무너지기'를 향해 달려간다.
뭔가 종교적 저주를 보는 것 같다. 당장 누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두술처럼. 결국 이 곡이 울려퍼지면 우리는 모두 함께 무너져간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조악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사를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 해 여전히 그런 의미들도 공기 속으로 멀리 퍼져 흩어진다. 그럼에도 우린 분명 무너졌는데, '과연 무엇 때문에' 무너졌는가?
분명 우리가 보았던 많은 '잘 부르는 사람'들에 비해선 특히 녹음 상태가 형편 없어 보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용한다는 반주에 반짝거리는 MR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춤추고 싶어지는 음악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음악이 문을 열어젖히고 우리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는 더더욱 형편 없고 조악한 음악을 우리에게 들고 올 것이다. 조악하고 형편없기 짝이 없는 음악이 그러나 우리를 항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헤아릴 순간조차 없는 채로 작별을 고할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