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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공무원 학원에서 연애질 하지 마라.

이신우
2018-04-11 20:31:25 857 7 0

보통 공무원 학원에 처음 가게 되면 전 과목을 들으라고 종합반을 추천하는데, 노량진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전 등에 있는 대부분 공무원 학원에서는 종합반을 2개월 단위로 끊고는 한다. 그러니까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학, 사회을 2개월만에 진도를 나간다는 것이다. 원래 머리가 좋았거나 좋은 대학교를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면 종합반 2개월만에 이해를 하는 것은 불가능이니, 들으면서 왜 나는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하거나 자책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행정학과 사회는 선택 과목이고, 보통 행정법이나 일부 특수한 경우에 수학, 과학을 고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본인이 어떤 직렬을 택하든지 통용할 수 있는 행정학과 사회를 고른다. 이때 사회는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 3과목을 모두 합친 상태라서, 결국 5과목이 아니라 7과목이다.

나도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머리가 더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서 듣고 필기하는 수준에 그치곤 한다. 친누나와 같이 사는 자취집으로 돌아간 후에 독서실에 갔을 때도 국어 기초 문법이나 영어 기초 문법 인강을 찾아서 다시 복습하지, 공무원 학원에서 수업한 내용을 복습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에 종합반 수업을 앞자리에 들으면서(최소 강사를 기준으로 5줄 안에는 앉는다.) 내 앞자리에 앉으시는 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냥 까놓고 말해서 되게 예쁘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첫눈에 반했다.' 느낌은 절대 아니지만, 뭔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냥 내 앞자리라서 그런 건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바나나우유를 줄까 하고 생각해서 아침에 지하철 타기 전에 바나나우유를 샀는데, 저번에 그 사람이 초콜릿을 먹는 것이 생각나서 초콜릿을 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이마트 24에 들러서 이마트 초콜릿을 샀다. 내 한 끼 식사도 3000원이 안 넘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한 끼 식사의 절반 값을 썼다는 것이 내심 놀라웠다.

그 다음 오후 수업이 있기 전에 초콜릿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무언가 메세지를 주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꾸준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만큼의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꼭 합격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썼다가, 연애 편지라는 것을 태어나서 써본 적이 없는 내가 봐도 너무나도 작위적이라서 곧바로 뜯어서 버렸다.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포스트잇에 쓴 메세지는 결국 "예뻐요."가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내 전화번호를 쓸 만큼 깡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뻐요."도 좀 많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그 분의 의자에 몰래 내려놓고 모른 척 행정학 수업을 들었다. 그때 그 분의 표정을 흘깃 봤는데, 내가 놓친 것인지 몰라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정말 선녀처럼 미친 듯이 예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이런 선물을 많이 받아봤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추론이었다. 나는 그 분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분이 초콜릿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가방과 함께 초콜릿을 챙겨갔다. 어차피 그 분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또 내 외적인 조건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알고 있어서 그 분께 내 마음을 전달할 자신도 없었다. 다만 그 분께 힘이 되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었으니, 그 분이 초콜릿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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