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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고민/일상 수저의 무게

覆水不返盆3ca8b
2018-01-26 01:04:08 1007 0 0

나는 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진짜 내 이야기를 쓸 때마다 거짓을 담곤 한다. 이를 테면 가난하다던지, 우울한 삶을 산다던지, 미혼이라던지. 어느 정도 나를 가려줄 만한 정도인 거짓말로 포장해서 쓰면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때로는, 혹은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해 거짓말을 고백해야하는 순간도 온다.

나는 굉장히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집에 자식으로는 셋째, 아들로는 둘째로 태어났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 사는 것도 부자였는데, 우리 집은 큰 마당이 있는 2층 저택이었다. 가정부도 2명에서 3명 정도를 거느렸다. 왜 아버지께서 가정부를 2명 아니면 3명을 고집하셨는지 나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가정부 중 한 명은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특히 나를 잘 대해줘서 나는 그 점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나이 탓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다른 또래에 비해 편안한 생활을 보냈다. 특히 어린 나이에 맛본 현금은 그 힘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같은 나이대 또래가 으레 하는 장래 걱정도 그리 실감나게 들지 않았다. 그 때쯤부터 이미 우리 가정이 가진 부는 지나친 사치만 부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 대까진 먹고 놀아도 남을 정도였다.

사실 '불투명한 미래'와 같은 희미한 단어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돈이 있어 즐길 수 있었던 유희는 적어보겠다 다짐하면 전부 적어낼 수 있다만, 워낙 많아서 적기도 힘들 뿐더러 기만으로 보일 수 있으니 줄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갑자기 내가 내 집안을 들먹이는 이유는 요 근래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본 글귀가 가슴에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돈이 많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하지 않다."였다. 어쩌면 철자 몇 자 정도는 틀렸을지도 모른다.

보통 인터넷에서 "명문대학교를 들어간 사람 중에서도 백수가 많다."와 같은 요지를 담은 말이 바로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많다."이다. 요컨데 돈이 많아봐야 본인이 정녕 행복한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놓고 말하자면 행복하지는 않을지언정, 불행하지는 않다.

대한민국은 무한한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를 하고 싶다면 보통 그만큼 생산을 해야한다. 생산 없이 소비하는 것, 일명 '돈 많은 백수'는 성립하기 힘들다. 재화가 많기 위해서는 생산을 해야하는데 생산을 하지 않고서 재화가 많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원래 돈이 많다면, 콕 집어서 나와 같은 금수저는 돈 많은 백수가 대부분 가능하다. 나도 표면상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내가 쓰는 돈은 거진 내가 생산한 재화가 아니다. 대부분은 내 아버지께서 쌓아두신 것이다. 나는 그저 회사 지분 중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산되는 재화를 빨아먹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우울하고 정적인 문체는 꾸미기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속 내 성격은 활발하고 유동적이다. 소설가라는 직업과는 친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내와 자식도 있고, 개인 집도 있다. 해외여행도 굉장히 많이 다녔고 문화생활도 쉴새 없이 즐기기도 했다. 혹여 알아차릴까봐 조심하고 다니지만 만약 동료 소설가들에게 들킨다면 더 이상 이전처럼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이를 미루어 보건데 수저는 좋을수록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같은 금수저끼리라도 누구는 무겁고, 누구는 가벼울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사 경영을 맡게 된 금수저라면 아래 수저보다도 무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은 어떠한가. 그저 매일같이 놀고 먹어도 집안 돈은 마를 기새를 보이지 않고 가정에만 충실해도 삶이 완만하지 않은가. 돈 많은 백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비춰주지 않는가. 그래서 행복하냐고? 나는 행복하다.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수저는 가볍다면 얼마나 가벼운가? 무겁다면 얼마나 무거운가?


신청곡

: 변진섭 - 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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