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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후기] 내일은 어버이날이네요.

익명의시청자e224f
2017-05-07 11:16:10 808 4 0

내일은 어버이날이네요.

며칠 전에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검사받으러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날라왔어요.

다행히 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는 걸로 나왔지만 그 소식을 듣고는 복잡한 감정에 며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을 보냈네요.

단순한 걱정은 아니고 좀 더 복잡 미묘한 감정...

날도 날이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글을 적어 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우울한 글일 수 있으니 그런 거 싫어하시는 분은 그냥 읽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전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죠.

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시골 특유의 옛날 분? 옛날 아버지 상? 그런 거 있잖아요?

고집 세고 무뚝뚝하면서, 남들에게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가족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제 아버지가 그랬죠.


제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이 어머니와의 불화였어요.

경제적인 문제, 고부갈등, 기타 등등의 이유로 항상 두 분에게는 다툼이 있었죠.


가뜩이나 생활력 없는 분이었는데 그나마 있던 낡은 집 한 채도 보증 실수로 다 날리고 친척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형제자매 많은 집의 장남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살림에 직장 일에 죽어라 고생해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항상 서운한 감정 속에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속에 품고 살아왔고,

이런저런 것들이 맞물려 사소한 일이라도 도화선이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안에 큰소리가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죠.

그럴 때면 어린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먹이곤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


언젠가는 다툼 끝에 아버지가 제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고 쥐약을 마셔 병원에 가신 적도 있었고,

언젠가는 다투는 과정에 칼을 들고 어머니를 위협하던 날도 있었고,

언젠가는 어머니가 저를 문구점에 데려가 이런저런 학용품을 잔뜩 사주며 잘 지내야 한다고 계속 되뇌던 날도 있었고...


왠지 되게 무섭고 슬프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꼭 그렇지마는 않아요.

사실 죽을 용기도, 누굴 다치게 할 용기도 없는 분이란 걸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죠.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그냥 본인의 감정,

그것이 화라고 하면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는 것뿐이란 걸...


사실 꼭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주 어렸을 적 아들을 위해 장난감을 사 들고 오신 적도 있었던 것 같고,

제가 방황하던 시절 찾아와 말없이 용돈을 쥐여주고 가시기도 하고,

만취해 제 앞에서 울면서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시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어쩌다 집에 들르면 항상 치킨을 시켜 먹고 가라고 하시기도 하고... ^^


뭐 어쨌든 이런저런 일들로 아버지에 대한 제 감정은 미움, 분노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은 연민으로 바뀌어가더군요.


한평생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 보며 살아온 삶과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 하나 없이 가족을 위해 밤낮을 바꿔가며 돈을 벌어야 하는 삶 속에

그렇게 본인 감정을 표현하는 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나마 있는 자식놈은 남들처럼 번듯한 생활 하나 하지 못하고 당장 낼 끼니는 아니더라도 다음 달 월세 걱정하며 이러고 있고... ^^


아버지와 저는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어떤 이야기가 도화선이 되어 서로 감정 상하게 하는 말들이 오고 갈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화를 피하는 편이죠.

그렇지만 알고는 있어요.

누구보다도 가족을 걱정하고 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분이 아버지란 걸...

단지 본인이 살아온 삶의 기준에서, 본인의 삶 속에 다져진 가치관을 저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런 저를 아버지 또한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죠.


저는 참 불효자에요.

다른 자식들이 부모님께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 자식으로부터 소소하게나마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무엇 하나 드린 것이 없는 것 같네요. ^^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의 가치관,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건

그나마 하루하루 저 나름대로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아버지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냥 인정하는 것처럼

아버지 역시 보잘것없더라도 저 나름대로의 삶을 그냥 인정해 주었으면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런 아버지와의 거리는 평행선을 이뤄 죽을 때까지 합쳐지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해요.

그렇다고 그게 아쉽거나 죄송하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결국은 제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아버지 역시 본인의 선택에 의해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요.


어릴 때는 항상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아야지란 생각을 하곤 했는데

흡연 습관과 다른 건 몰라도 제 인생에 있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똥고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물려받았나 보네요.

정작 아버지는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으셨지만...;


그런데 진짜 이상한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잦은 불화 속에서도 아직까지도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함께 지내신다는 거랍니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요즘도 가끔 저의 근황이 원인이 돼서 투닥투닥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삶이란...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참 받아들이기는 어렵네요. ^^


내일이 어버이날이니 집에는 한번 갔다 와야 할 것 같네요.

얼굴만 비치고 바로 올 것 같지만...



그다지 즐겁고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며칠 복잡했던 기분도 정리할 겸 쓰고 싶어 쓰는 글일 따름이에요.

내용은 좀 그렇지만 읽는 분들은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투영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해요.

솔직히 별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

힘든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나름대로 현재의 저를 있게 해준 의미 있는 경험이고,

그냥 다양한 삶의 한 모습일 뿐...

그게 어떤 것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나름의 재미는 있다고 생각해 글을 올리니까요.



사연 게시판에 올리기는 하지만 라디오 사연으로 쓰셔도 좋고 안 쓰셔도 좋고...

내용도 내용이고 길이도 길어서. ^^


사적인 내용이라 익명으로 올림을 양해 바라며

방송에 감사드리는 한 시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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