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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너의 그 미소

Broadcaster 하늘_나루폴라_리스
2023-02-05 02:15:28 31 0 0

뚝뚝-


꽉 쥐어진 주먹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천천히 물들여간다.


"허억… 허억…."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 지쳐버린 입에서는 물기 하나 없는 거친 숨이 흘러 나온다. 그 숨결조차도 너무나 지쳐 있어, 차디찬 허공에서 아침의 햇살을 만난 안개처럼 사라진다.


그럼에도 너는 변함없이 미소를 짓는다. 마치 화창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모든 것이 색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곳에서, 오직 너만이 이 곳에서 태양을 닮은 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너를 향해, 색을 잃은 이곳과 닮은 말이 차가운 공기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다.


"대체 왜 그렇게 웃는 거야? 그렇게 계속 웃으면, 내가 용서 할 것 같아?"


화내고, 절규하고, 절망했다.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너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만 웃으라고, 사라지라고,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런데도, 넌 여전히 내 앞에 있다.


"싫어, 다 싫다고. 병원에서 나는 약 냄새도, 내 몸에 꽂힌 바늘도, 애물단지 마냥 날 보는 간호사들도, 나만 보면 슬픈 미소를 짓는 부모님도 너무 싫어. 무엇보다…… 그게 전부 나 때문이라는 게, 아직도 이 세상에 내가 남아있다는 게 제일 싫다고."


그렇기 때문에, 밝은 미소를 짓는 네가 좋았었다. 나를 신경쓰지 않으면서, 나를 위해 지어주는 그 미소가 좋았었다. 항상 죽음의 옆에서 살고 있던 내게, 삶이란 이런 거라고, 나도 언젠간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던 네가 좋았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네가 아무리 웃고 있어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네가 짓는 그 미소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내가 이 비루한 목숨을 부여잡고 삶을 향한 희망을 가지게 했던 미소는, 내게 남아 있던 삶의 희망을 산산히 부숴버리곤 나에 대한 끊임없는 혐오를 안겨주었다.


"이럴 바에 그냥…… 우리, 같이 죽을까? 나같은 게 살아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나와,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살고 있는 너. 그렇기에 언제나 바라고 바래왔었다.


"죽는다면, 너랑 함께 죽고 싶었어. 언젠가 너의 손을 잡고 이 병원을 나가서, 너와 함께 많은 것을 하고, 길고 긴 시간을 함께하다 너랑 손잡은 채 잠들고 싶었어. 그리고…… 아주아주 오래, 어쩌면 영원히 네 미소를 보며 죽어가고 싶었어. "


어쩌면 지금 내 앞의 네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네가 남긴 것일 지도 모른다. 끝까지 나를 위하던 너의 마음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게 하는 건 너무하잖아."


허리를 숙여 바닥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에 잡히는 유리조각은 차가울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차갑지 않다. 손을 새빨갛게 물들인 피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죽을 것을 알아차린 몸이 미리 감각부터 죽인 걸까.


날카롭게 부숴진 유리조각 너머로 너의 미소가 보인다. 그 유리조각의 끝이 너의 목에 겨누어진다.


"다들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너만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 그렇지?"


유리조각이 너의 목에 닿는다. 새하얀 너의 목에서 붉은 색의 실선이 천천히 아래로 그어진다.


"……미안해. 이런 나를 용서해줘."


고마워. 이런 모자란 나와 함께 죽어줘서…….


쾅-!


그 순간, 안쪽에서 잠궈두었던 문이 큰 소리와 함께 부숴지듯이 열린다.


"여기에요!"


"빨리 붙잡아!"


"손에 피가 난다! 우선 지혈부터 해!"


너덜거리는 문 뒤에서 새하얀 감옥의 간수들이 들이닥친다. 나를 향해 뻗어진 간수들의 손은 내 팔과 다리, 몸을 단단히 구속한다.


나는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친다. 손에 들린 유리조각을 그들을 향해 휘두르려고 한다. 하지만,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일하게 구속되지 않은 것으로 내 감정을 토해내는 것 뿐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환자 분, 진정하세요! 수술 끝난지 얼마 안 되서 이렇게 날뛰시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구요!"


간수들이 뭐라고 하건, 나는 아직도 미소를 짓고 있는 너를 향해 소리친다.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내가, 내가,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나 때문에 죽었는데!"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텐데. 나를 보러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걸, 겨우 목숨만 간신히 붙어 병원에 도착했었다는 걸, 상처가 너무 심해 그 어떤 방도도 통하지 않았다는 걸,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그냥 죽지 그랬어! 왜 끝까지 나를 생각한 거냐고!! 왜 아직도 날 떠나지 않는 거냐고!!"


그냥 네가 나에게 실망해서 떠나갔다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절망 속에 가라앉았어야 했다. 장례식장에 갔다 온 뒤 너의 집에 들러 너와의 추억을 되새기지 말았어야 했다. 너의 부모님이 숨겨놓지 못한 장기 기증 서류를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다. 유일하게 멀쩡했던 너의 심장이, 네가 죽게 되면 나에게 오기로 되었다는 것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네가 날 보러 오지 않았다면, 네가 날 만나지 않았다면, 네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혐오스럽고 밉고, 죽어버렸으면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텐데….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너의 미소가 눈가에 맺힌 눈물에 흐릿해져간다. 너와 나의 거리가 간수들에 의해 점점 멀어져만 간다. 너의 모습이 내 눈 속에서 사라진다.






"큰일날 뻔 했네요.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소년의 주치의는 소년이 간호사들과 함께 돌아가는 것을 보며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릴 적부터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였다. 어린 시절 진료실 의자에 앉아 천진난만하게 퇴원하게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하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밝게 웃어야 하는 얼굴에 새까만 그늘이 드리우는 것도, 한 소녀를 만나 그 그늘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도 옆에서 전부 보아왔었다.


그렇기에 지금 소년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버렸던 희망을 다시 찾게 해주었던 이가 자신 때문에 죽게 되었다면, 죽어가면서도 자신만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 거울의 자신의 모습이 그 소녀의 웃는 모습으로 보이게 되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아려오는 가슴에 소년의 주치의는 씁쓸한 표정으로 소년이 남기고 간 것들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산산히 조각나 떨어진 유리조각과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한 바닥. 한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아 서늘함이 배어있는 화장실에 펼쳐진 풍경은 어쩌면 지금의 소년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주치의는 소년의 상태를 보러가기 위해 화장실을 나서며 남아있던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다들 환자분 찾느라 고생했습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고, 조간호사님은 거울 조각 좀 치워주세요."


화장실에서 등을 돌린 채 복도를 걸으며 주치의는 생각했다. 지금은 차갑고 산산히 부숴져 있는 저 화장실도 언젠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처럼.


소년의 마음 또한 언젠가 모습으로 고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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