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로 0

아버지 야전삽은 임피드 궁수한테 죽을 둥 살 둥 쫓기다

저그 젤리 먹으면서 간신히 연명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거지 마을에 도착해 정착했으며

그 와중에 어머니 여전삽은 우연히 수송 포드를 타고 떨어졌는데 운동마비 상태라 버려질 뻔했으니

이 때 야전삽이 이 마을에 없었으면 모종삽이는 애초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운명이었음

부부는 하루 단위로 두 명씩 미쳐서 뭔가를 정기적으로 부숴대는, 돌덩어리랑 오물이랑 약쟁이랑 탈옥수들 굴러다니는 폐급 마을에서 어떻게든 사랑을 가꾸며

그렇게 어떻게 약혼을 하고 매일 밤 꽃을 피워내다 이윽고 임신을 하게 되는데

임신 중기에 그만 아버지 야전삽은 메카노이드 전초기지 포탑에 블래스터 맞고 심장 관통당해 일격사를 당하고

어머니 여전삽은 약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식도 아직 못한 채로 그대로 과부가 돼버리고 말았음

여전삽은 그래도 그래도 어떻게든 남편이 남겨두고 간 애를 잘 키워볼 생각으로

한파도 버텨내고, 재차 탈옥한 탈옥수들로부터 공격도 간신히 피하는 등 강인하게 시간을 버텼는데

하필 만삭 중의 만삭, 그야말로 출산 직전인 상황에 신이 마을을 버린 건지 운명의 장난인지 양빵으로 습격을 당하게 되고

걷기도 힘든 만삭 임산부인데 징집을 당해 싸우다 멧돼지한테 신체 군데군데 십수 회를 물리고 찢겨서 피를 철철 흘리는,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 되어버림

게다가 여전삽 혼자만 만신창이가 된 게 아니라

마을에 살던 인원 전원이 절반은 기절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붕대랑 부목대고 그나마 뛰어다니는데

와중에 마을 안에선 흑사병이 돌고 있어서 누군가가 썩어들어가기까지 하고

가장 잘난 의사는 오른쪽 팔뼈가 으깨져서 의료 행위는 인턴 단 두 명만이 전 인원을 돌보아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 감염까지 퍼지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거기에 더해 약재랑 감자 재배하던 집 서쪽은 수십 평방미터를 불길이 휘감고

그러는 와중에 정확히, 출산이 임박함

다들 기절해있거나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서 출산을 지켜봐주는 사람은 의료 인턴 단 한 명 뿐

한 생명이 태어나는 도중에 다른 한 생명은 같은 지붕 아래서 피부근육이 검게 물들어 죽어가며

하늘에선 무엇이 타고 있을지 모르는 고대 함선 잔해가 떨어지는 그런 날 그런 시

그렇게 기구한 운명 속에서 태어난 모종삽이는

환경 덕분에도 그렇고 어머니 건강 및 정신상태 덕분에도 그렇고 무척 병약한 상태여서 곧 죽을 위기에 처해

어른들도 쉽게 못 쓰는, 엘릭서에 준하는 최고급 약품을 모두의 사랑과 응원 아래 혼자 독점하는 상황이 돼버림

여기까지가 진행상황임;;

모종삽이 이놈은 이미 싹수부터 벌써 영웅이나 진 주인공급 서사를 타고 났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