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겨울답지 않게 햇살도 따스했다. 영 평화로울 것만 같던 날이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다르게 평화로이 널 붙잡고 있었고, 너는 평화로이 날 두고 떠났다. 네가 서있던 자리에 난 엎드렸다. 차가운 벽돌이 널 대변했다. 어지럽게 흐트러진 머리는 안중에도 없이 난 거리를 걸었다. 이상하리만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불연듯 떠오르는 묘사는 다 거짓이었다. 내가 다리 아프게 걸어다니는 동안 머리는 청소한 것처럼 깨끗했다.
텅 빈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적막이 흐르면서 조금씩 내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마취가 풀린 듯 두통이 찾아왔다. 무수히 많은 기억이 내 침대에 흩뿌려졌다. 하나씩 주워담으며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고백했던 순간, 그녀와 처음으로 데이트했던 곳, 처음으로 키스했던 곳. 거의 다 주워서 침대가 가벼워질 즈음, 아름답게 포장된 추억이 날 찔렀다. 칼이 꽂단장을 해봤자 날카로울 뿐이었다. 견디지 못할 정도로 울음을 내뱉었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아파서 우는 것이었다. 황홀하다고 표현했을 그녀와의 추억이 그다지도 아팠다.
머리카락은 다듬어서 무얼 하나, 더 이상 멋있다 칭찬해주는 이 없는데. 운동은 해서 무얼 하나, 더 이상 튼튼하다 어루만져주는 이 없는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나.
신청곡
: 자우림 - 스물다섯, 스물하나 M/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