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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려오는 고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그녀를 위한 편지.

이신우3ca8b
2017-10-09 21:49:16 705 0 0

누나랑 내가 처음 만났던 곳은 채팅 앱이었다. 그래, 그 때는 어디서 사람을 만나던 마음만 맞으면 인연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채팅 앱에서 만난 사람과 난 항상 멀었었다. 여기가 시골인 것도 있고, 아무래도 전체적인 지리로 따져봤을때 '아래쪽'에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지역을 밝혔던 그 때, 누나와는 가까웠다. 고창과 정읍 정도면, 적어도 고창과 부산이나 고창과 서울 정도보다는 훨씬 가까우니까. 대화를 통해 나는 본능적으로 누나와 잘 어울림을 느꼈고, 또 잘 맞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만큼 누나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어느 새 썸을 타는 관계까지 가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 채팅 앱으로 만났냐는 듯 서로에게 야한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마음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늘 본능적 쾌락과 순간적 즐거움을 위해 살던 내가 처음으로 '남을 위해 살고 싶다.' '이 사람을 위해 내 인생도 바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느낌이 들었고,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게 된 계기도 전부 누나 덕분이었다. 아마 누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고, 그저 이전과 같이 음지에서 허망한 삶을 살았던 한 고등학생만 있었겠지.


처음 누나를 직접 만났던 날, 한없이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누나를 직접 대면했던 그 날, 분명 어젯날 마음속으로 세웠던, 완벽하고 세밀했던 모든 계획이 그저 거품처럼 사라졌었다. 영화를 보고 햄버거 집에서 단 둘이 햄버거를 먹을 즈음, 나는 나 스스로를 한없이 저주하고 깍아내렸다. 아마 누나는 몰랐겠지만, 지금도 그 일이 후회스럽다. 더 좋은 곳에서 우아하게, 기품있고 분위기 있는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헤어질 때도 마음속으로는 자꾸만 더 있고 싶었고, 더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시간이 급하지도 않았는데 그리 빨리 떠났던 이유는, 문득 들른 화장실에 있던 유리가 내가 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 쌓여만 가는 걱정속에서 누나는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에 갔다. 나는 누나에게 '잘생긴 남자가 많을 거야.' 라며 어리광같지 않은 어리광을 피웠고, 누나는 누나대로 '너보다 잘생긴 남자가 어디 있어?' 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기우는 현실로 다가와, 역시 잘생긴 사람은 많았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건만 누나는 나를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대학생 형을 좋아했던 것은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픔이다. 나로써는 '어떻게 썸을 여러 명과 동시에 탈 수 있지?' 하는, 그런 애절함과 타들어가는 갈망함은 날 죄스럽게 조여오는 고통이었다. 비단 그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사형 선고와 같았다.


우린 그런 일로 싸웠다. 결국 서로를 더 이해하자, 라며 내가 무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나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것으로 몇 달을 소모했다. 누나와 나는 지쳤고, 누나에게는 이제는 이런 일로 싸우지 않을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적어도 누나는 그랬을 것이다.


누나와 완전히 연락을 끊었던 날, 누나가 나에게 '이젠 더이상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 것 같다.' 라고 했던 그 순간, 나는 솔직히 누나에게 '이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게 아니라, 원래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만약 누나가 정말로 나를 좋아했다면, 아마 내가 가슴 아파하는 짓을 반복하진 않았겠지. 만약 누나가 정말로 나를 좋아했다면, 꼭 누나의 설명이 필요한 때에 함구하지 않았겠지. 누나와 연락이 끊기면 죽을 것만 같아.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인 줄만 알았다. 연락이 끊기기 전까지는 정말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나는 멀쩡히 살아있지만, 여전히 내 메모장에 누나 휴대폰 번호가 남아있다.


나는 지금 또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고, 그 누군가를 위해서 내 마음을 쏟고 있지만, 그럼에도 누나의 휴대폰 번호가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것은, 아주 작은 미련일까.


누나의 휴대폰 번호를 지워야, 누나와 나의 3년간의 추억이 모두 지워지는 걸까.


<신청곡>

정준영 -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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