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99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의 전투 장면을 자세하게 그려 놓은 「부산진성 순절도」에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부산포(釜山浦)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이 있었다. 내성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甑山)을 둘러싼 본성이고, 외성은 현재 자성대라고 부르는 곳이다. 현재 자성대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성터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본래의 성을 허물고, 일본식 축성법에 따라 부산왜성[범천 증산성]의 지성(支城)으로 쌓은 자성대왜성의 흔적이다. 이 성은 오늘날의 증산에 있었던 부산진성의 내성인 본성과 함께 1593년(선조 26) 경상도 군정의 책임자였던 모리 히데모토[毛利輝元] 부자(父子)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왜장(倭將) 아사노 나가요시[淺野長慶]가 정유재란 때인 1598년(선조 31)에 수축 또는 증축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증산에 있었던 본래의 부산진성이 일본군에 의해 허물어져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조선 수군은 1607년(선조 40)부터 부산왜성의 지성인 자성대왜성을 부산진성으로 사용하면서 새롭게 수축하였다. 『충렬사지(忠烈祠志)』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 첨사진으로 사용하던 성 안의 우뚝 솟은 산 정상에 다시 자성을 쌓고 장대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에 부산진성을 수축할 때 부산진성의 장대로 사용하였다고 보인다. 또 본성인 부산왜성[범천 증산왜성]을 모성으로 보면, 지성으로서 모성에 대한 자성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영남진지(嶺南鎭誌)』에는 임인년에 자성 위에 육우정(六友亭)을 세우고, 승가(勝嘉)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자성은 한 진(鎭)의 장대가 되고, 승가정은 자성의 장대가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아무튼 뭐 온김에 일본 성과 한국성이 뒤섞인 그런곳이 특이하기도하고 한번 보시고 가보세요 ㅎㅎ
이건 제가 갔을때찍은 일본 성곽의 흔적이라 해야하나요 ㅎㅎ 보면 잘깎아서 쌓은게 보일겁니다 그시절에도 돈주고 고용된 사람들이 손을 어느정도 대서 만든거라 그런지... 조금 나은거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