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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

ㅁㅁca884
2023-05-10 09:33:52 128 3 0

뜬금없는 글 죄송합니다

이글루스가 섭종한다기에 아주 과거글인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공유 및 보관겸 여기에 올립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억에 남고 와닿았던 글인지라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공유드립니다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 by fourms

나는 잘 하는 선수가 좋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잘 하는 선수의 실력을 좋아한다. 특출나게 좋아하는 선수는 없다. 좋아한다면 그 선수의 경기를 좋아하는 것이지. 따라서 특출나게 좋아하는 팀도 없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마재윤의 대테란전을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마재윤이 아니라 마봉춘이라도 그런 식으로 경기를 하면 좋아할 것이다. 요컨대 이름을 별로 안 본다. 마재윤이 언젠가 내가 기대하는 경기력 이하를 보여준다면 나는 그의 경기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음...이건 못 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응원하지 않겠어~ 와는 좀 다르다. 왜냐면 나는 지금도 딱히 마재윤을 응원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지금 마재윤의 경기를 보며 다만 감탄할 뿐이다. 언젠가 그가 감탄할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건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저 아쉬운 일이지 슬퍼할 일까지는 아니다.(굉장히 아쉬울 것 같기는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대로 잘 못하는 선수는 싫다.(물론 프로게이머 기준에서의 이야기이다. 절대적으로 게임을 못하는 프로게이머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잘 못하는 선수 중에서도 과거의 화려한 경력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지지를 받는 몇몇 선수들은 조금 더 싫다. 며칠 전 올라온 신예 선수의 선전을 이야기한 게시물에 달린 전혀 무관한 선수에 대한 많은 리플들은 일종의 '실례'다. 그 선수들이 그 실례를 유발한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곳에서 여러 번 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그건 하나의 나쁜 인상으로 남게 된다. 물론 조금 더 싫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조금 더 싫어한다는 것 뿐, 비슷하게 싫어한다. 경력이고 뭐고 지금의 모습 때문에 싫어하는 거니까.

이제 말할 선수는 원래의 내 기준에 따르면 조금 더 싫어해야 할 선수다.

예전에 잘 했고.
지금은 못 하며.
향수에 젖은 팬이 많은 선수.

이런 선수 몇몇 있다. 거의 다 싫어하는 편이다. 근데 이 선수는 조금 다르다. 이 선수는...전성기가 지난 다음에도 뇌리에 남는 경기를 몇 차례 보여준 적이 있는 선수다. 이 선수에 대한 인상이 조금 다르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경기들, 그리고 그런 경기들이 나오게 된 그 배경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선수는 가끔. 특정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끔. 정말로 기묘한 오오라를 풍긴다. 그 오오라는 결코 극단적인 강인함이나 완벽함, 탁월함이 아니다. 이 선수가 그런 오오라를 풍기는 경기에서조차 이 선수의 경기력에 놀란 적은 없으니까. 그 오오라는 살려고 하는 의지? 죽음을 앞둔 환자가 뿜는 마지막 생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며 이어가는 생명력? 그런 류의 모든 것들...마치 모든 유닛들이 그런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우와~ 하고 감탄하는 류의 경기가 절대로 아니다. 숨을 죽이고. 침을 삼키게 만든다. 이 선수는 그런 경기들을 보여줬다.

물론 아주 가끔.

지난 월/화요일에 있었던 오프라인 예선에서 이 선수가 남긴 성적을 본 후 이 게시를 남기게 되었다. 어쩌면 다시는 이 선수가 그런 오오라를 뿜는 것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졌다. 위기에 몰린 김정민이 뿜어냈던 그 기묘한 빛깔의 오오라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짚고 넘어갈만 하다.

* 약한 테란, 김정민

김정민의 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별명임과 동시에 어쩌면 김정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은 바로 약한 테란이 아닐까 싶다.(놀랍게도 거의 김정민 본인이 만든 별명이다.) 약한 테란. 약테. Gillette배 조지명식에서 스스로 언급했으며 훗날 신한은행배에서 박지호가 한동욱을 겨냥해 툭 던진 도발성 멘트에 엉뚱한 변형태가 발끈하는 시트콤스러운 상황을 만든 그 단어, 약테. 테란이라면 누구나 발끈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 단어, 약테. 김정민의 묘한 오오라가 나올 수 있는 촉매를 상징하는 단어, 약테.

김정민의 약테 이미지는 참 다양히도 널리도 퍼져있다. Gillette배에서 박용욱, 서지훈, 변은종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한 사건, 다시 돌이켜보면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CEN Game배에서 승자 결승, 패자 결승을 거치며 머씨 형제들에게 1:5로 패배한 사건, 팀리그에서 마재윤에게 두 번 연속 단 한 글자의 변명의 여지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의 수준 차이로 패한 사건, 모 대학 축제에 가서 로템에서 아마추어 프로토스에게 우주여행을 당한 사건, 최근에는 이윤열의 배틀 1부대를 잡아내고도 진 사건, 1.12 버전 이후 전적이 14승 24패 승률 36%를 찍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더하면 군 시절 옆 지역대 아저씨에게 배넷에서 완패한 사건까지 정말 다채롭고 다양하다.(김정민을 배넷, 혹은 작은 규모 대회에서 이겼다는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많다.)

여튼, 김정민 하면 약테고, 약테 하면 김정민일 정도로 김정민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팬들조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버린 듯 하다. 세월도 참 무상하다.

*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는 동생과의 대화에서 거의 '앞마당 먹은 이윤열'처럼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곤 한다. 단어의 뜻은 경기들을 이야기하면서 풀어보도록 하자.

내가 처음으로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감상하게 된 건 4U와 KTF간의 LG IBM배 팀리그 결승에서였다. 당시 4U는 사기 카드 최연성을 선봉으로 사용, 바로 3승을 챙기면서 우승 직전에 놓여 있었다. 3패에 몰린 KTF가 내민 마지막 카드는 김정민! 애초부터 팀의 위기 상황에 몰린 김정민은 평소의 김정민이 아니었다. 몇 주 전 최연성과의 CEN Game배 승자 결승에서 그 유명한 레이스 vs 배틀&발키리 장관을 연출한 김정민의 객관적인 실력은 분명 최연성보다 한 수 아래, 그러나 김정민은 믿을 수 없는 집중력을 발휘, 최연성을 제압한다.

이어 펼쳐진 박용욱과의 경기는 그야말로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가 제대로 발동한 경기라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던 김정민의 묘한 오오라가 온 맵을, 온 경기장을 뒤덮은 경기랄까. 나는 이 경기를 보면서 '박용욱이 이겼네'와 '저걸 막다니...'를 몇 차례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기묘한 오오라는 결국 박용욱의 거샌 공격 끝에 살아남았다. 때려도 때려도 쓰러지지 않은 복서의 모습이랄까.

때려도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복서의 이미지라면 최연성 같은 선수가 떠오르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같은 '때려도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복서'라 할지라도 최연성과 김정민이 풍기는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최연성이 강철같은 근육으로 무장한 맷집이 기막히게 좋은 거구의 복서 이미지라면, 김정민은 약한 맷집에 너무 많이 맞아서 다리가 풀리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천천히 전진하는 KO 당하기 직전의 복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누가 더 강한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최연성이다. 그러나 누가 더 기괴한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위기에 몰린 김정민'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후 SPRIS배, 당골왕배를 거치며 김정민의 경기력은 끊임 없이 추락 일로를 걸었다. 그중 가장 처참했던 것은 당골왕배에서 이윤열에게 당한 0:2 완패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앞까지 실력 차이를 보이는 듯 한 경기였다.

그리고 Uzoo배, 하부 리그 추락 직전의 김정민은 서지훈과의 패자 8강 2경기에서 다시 한 번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발동시킨다.

이 경기는 앞선 박용욱과의 경기와 비견할만 한 클래식한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 경기이다. 그 이유는,

1. 이 경기 내내 김정민은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2. 이 경기 내내 김정민은 기묘한 생명력의 오오라를 보여주었다.
3. 이 경기에서 결국 김정민은 이겼다.
4. 다음 경기에서 졌다.

는 점이다. 내일의 조가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우고 산화한 것 처럼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가 발동된 김정민은 결국에 패한다.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더 인상이 깊은지도 모르겠다.

*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 again?

게시 내내 '기본적으로 김정민은 못한다'라는 가정을 깔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김정민의 오래된 팬분들에게는 미안하다. 오프라인에서 김정민 구호를 선창하는 목소리 화통하신 남자분이 보면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정민이 정말로 잘했던 시절은 이 바닥 기준의 시점에서는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다. 환하게 웃는 김정민이 우승 상금이 적힌 대형 카드를 들고 있는 사진 - 김갑용이 같이 나온 사진을 기억하는가? 그 사진의 우승 상금은 요즘 펼쳐지는 대형 이벤트전의 출전료(상금이 아니다.)보다도 작다. 세월은 그만큼이나 흘렀다. 그리고 김정민은 분명 약하다. 약해진 지가 꽤 됐다. 요즘의 경기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다른 게이머였다면, 그리고 나의 기준으로라면 나는 그 선수를 싫어해야 한다.

근데 김정민은. 딱히 싫지는 않다. 확실히 이게 좋은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의 경기력에 기대는 안 한다는 거니까. 기대를 안 하고 보면, 저질스런 경기가 나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마치 예전의 태평양 돌핀스를 응원하는 돌핀스 팬의 마음 같은 거다. 원아웃에 안타? 그럼 더블플레이겠지. 안타가 나오면 좋은 거고, 더블플레이가 나와도 정신적 타격은 없는. 그런 거다.

다시 한 번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김정민이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이면서 가끔 은퇴를 하라는 류의 게시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나는 남에게 은퇴하라 마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김정민의 은퇴라...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다. 나랑은 관계 없겠지.

다만 만약 김정민이 은퇴를 한다면 다시는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의 팬도 아니며, 따라서 그가 은퇴한다고 해도 별 감정은 없겠지만, 마른 침을 수차례나 삼키게 했던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다시 못 보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섭섭할 것 같다. 뭐, 은퇴 안 하면 다시 한 번 '위기에 몰린 김정민 모드'를 보고 싶은 거고, 또 못 보면 할 수 없는 거고. 딱 그 정도?

나중에. 나아아중에 김정민이 은퇴를 한 다음, 언젠가 이 바닥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 김정민에 대해 물으면, 그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보지 못한데다가 그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나는 아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김정민? 그 선수 참 약했지. 뭐랄까...멀티테스킹도 안 되고...경기 보면 답답하고...근데 말이야, 가끔은..."

근데 말이야, 가끔은...그 이후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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