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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및art 재작년에 썼던 것.

Broadcaster 골숭이
2021-01-15 02:41:16 126 0 1

Sagittarius


별바라기.


매우 희귀한 역귀의 종류로 주로 별맞이꽃에서 태어난다. 

별맞이꽃은 20~50년 사이에 한번 꽃을 피우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주변에 생물들을 현혹하며, 

현혹된 생물이 꽃에 다가가게 되면 꽃에서 나온 별바라기가 생물의 눈에 기생하게 된다. 


별바라기가 기생할 경우 상대의 미래를 볼 수 있거나, 

매우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거나, 


자신이 본 것들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등. 


'신(神)'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여는 소리 -





.....  







'눈이 안 보이는 느낌은 어떠한가?'라.



바보같은 질문이로구나.'



눈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눈을 감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낡은 옛날 방식의 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자신은 노인과 함께 여관에 묵기로 한 것이 기억났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



음,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흐음... 그래, 어울려 주도록 하마.



으음..?



그건 그렇지, 눈이 안 보이는 것을 알고자 굳이 눈을 후벼파지는 않아도 된단다.





그렇구나.


사실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우선 눈이 안 보인다면 일단 촉감과 청각, 


그리고 냄새로 모든 것을 구별해야하지.




청각에 집중해보거라,


지금 무슨 소리가 나느냐?



눈 앞의 노인의 말대로 청각에 집중해 보았다.


귀를 기울이면 온갖 잡음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탁상에 손을 얹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세상은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게 아니란다.


사람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 



어쨌든 아무리 조용한 방 안이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소리라도 존재한단다.



그리고 손을 살며시 허공을 휘저어 보아라.




노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노인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런.. 귀찮아 하면 못 쓰니라.



알고자 하던 것은 다름아닌 네가 알고자 했던 것이 아니더냐,



내가 하란대로 해보거라.




음, 그래 촉감이 어떻더냐.



잘 모르겠다고?



조금만 더 '촉감'에 집중해서 휘저어 보거라.




그래, 무언가에 닿은 느낌이 있더냐?



그렇지. 


아무리 空(비어있음)이라 하더라도 너는 항상 무언가 '닿아' 살고 있다.




그것을 空氣(공기)라고 하지.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굳이 어렵지는 않단다.




그리고 이제 후각이 남았다만....


사실, 훈련을 해야하지만 이번엔 빠르게 배워보도록 해보자꾸나.



후각에 집중하고 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이 중요할테지만,


우선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단다.



너는 눈이 보이니 일단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인지 한 다음.


눈을 감고 후각에 집중하는 것도 좋겠구나.....



자, 그렇게... '보고난 다음, 눈을 감고 느껴보는 것'이다.


소리와, 향, 그리고 느낌을...



그래, 어떻더냐? 



본디 향이라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기에 냄새로 맡을 수 있는 것.


모든 것은 존재하기에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없으면 느낄 수 있지 아니하니..




네 앞에 글도 마찬가지란다.


읽고나서 그 감각을 상상해보거라..



왠지 잡을 수는 없지만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지 않느냐?


글이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고, 


들을 수 있을 것만 같고, 또한 상상할 수 있겠지.



이제 궁금한 것은 풀렸더냐?


그럼 이제 잠에 들자꾸나.


밤이 너무 늦었느니라.











남자는 그렇게 내게 말하며,


탁상 위에 있던 책을 덮었다.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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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향과 맛.


그 특유의 느낌은 쉬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 여름, 논밭에서 곡식이 익는 한 가운데에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은 녹지와 밭투성이의 농촌이라 딱 알맞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으리라,



간간히 밭을 메는, 이마에 땀이 흐르는 농부도 보이는 이 곳은.


누가봐도 시골느낌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렇게 밭을 메는 곳을 꽤나 지나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풀내음이 양껏 나는 길을 따라가다가,


사람소리가 좀 나는 집집들이 기다란 흙벽으로 된 담장이 안내하는 곳에 이르렀다.



언제나처럼 시골이 으레 그렇듯이 장이 펼쳐지는 곳만은 시끌벅적하기 마련.


누군가는 호객질을 하고 값을 부르는 장사치도, 그리고 실랑이하는 손들이 보인다.



그야말로 장은 이래저래 활기가 넘친다.



즉, 사람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터에서도 구석배기에서만은 인적이 드물다,


장터입구는 저-쪽에 보이는, 거리가 앵간히 먼 반대쪽이기도 하고


원체 이쪽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괴물발생지(던전)가 생겨난 뒤로는 아무래도 


이런 시골로 오는 지원도 없을 뿐더러 찾아드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큰 강이 있어 괴물들이 장터까지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자리를 잡고 판매를 할 수 있다.


애초에 이렇게 낙후 된 곳이라면야 


괴물발생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오는 것이 드물었다.





사내가 '오늘도 날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 쯤이었다.



저 멀리서 사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푸줏간 주인 장씨는 괴물(몬스터)인가 하고 숨겨두었던 칼을 찾았다.



뭐, 사실 정말 괴물이라면 칼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 하거니와,


그들의 손톱과 이빨에 어렵지않게 난도질 당할 운명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것 보다야 낫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는 괴물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느릿-느릿하였고,



무어라할까? 특유의 위압감같은 것이 없었다.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자 그것이 그저 커다란 짐을 든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제사 장씨는 긴장했던 몸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칼을 다시 구석에 넣고선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원체 짐이 큰 탓인지 혹은 걸음이 느려서인지.



덕분에 그는 다가오는 인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풍체는 작았으나 그 신체에 비해서 지나치게 짐이 컸으므로 힘은 장사일 것 같았고,




같은 간격으로 들리는 걸음소리가


신체의 균형 또한 잘 잡혀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씨는 속으로 힘 좀 꽤나 쓰는 노인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제사 보이는 머리칼은 백발.



또한 이번엔 얼굴을 자세히 살피자 깊게 파인 주름이 그의 세월을 짐작케 했다.




눈을 감고 매끄러운 흑단 지팡이로 열심히 땅을 짚으며 오는 것을 보아할 때, 


장씨는 그 노인이 안보이는 장님임을 알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검지만 여기저기 해진 옷, 

 


그것에 반해 메어진 짐은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이 들어있는지 썩 고급스러운 나무로 된 궤짝이었다.


 


그것을 본 장씨는


'늙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떠돌아 다니며 장사를 하시는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노인이 거의 다 왔을때 쯤, 


장씨는 생각을 마치고 언제나처럼 미소를 가득 채우고 호객질을 해대었다.




"어르신 여기, 좋은 고기랑 찬거리 있습니다-"






노인은 장씨의 호객질에 발걸음을 멈추고 검은색 지팡이를 턱하고 짚고 섰다.


그리고 슬쩍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가왔다.



노인은 숨도 크게 내쉬지 않고 가게 앞에서 멈추어서 짐도 내리지 않고 물었다.


"뭘 파시오?"



장씨는 오늘은 물건을 팔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물건을 소개했다.


"이건 소고기고 이쪽은 돼지고기입니다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돼지고기로 주시오"라며 물건을 주문했다.


장씨는 흥이 난 목소리로 "예-, 손님"하고 대답했다.



장씨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잠깐..."


손님이 장씨를 멈추었다.


노인의 얼굴은 진중하면서도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네?"


장씨는 얼떨결에 대답하면서도 무언가 사단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손님은 손가락을 펴보이며 말했다.


"세 근으로 주시오"




괜시리 긴장한 장씨는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님에게 물었다.




"예, 손님. 


 그럼 고기는 손질을 해드릴깝쇼?"


장씨의 물음에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예이, 조금만 기다리십쇼."라고 대답한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소리를 집중하기라도 하는 듯, 


남들이 보면 조금 기이하다라고 보일 수 있는 각도로, 


귀가 치켜세워지도록 고개를 꺽었다.



아마 노인의 귀는 장씨가 고기를 거칠게 절단하는 소리며, 


얇고 날카로운 칼로 거추장스러운 뼈를 제거하는 소리,



비계를 제거하는 소리, 칼이 도마에 맞부딫치며 내는 소리 등을 듣고 있으리라.




이내 장씨는 고기 손질을 끝내고 정성스레 종이에 고기를 싸서 새끼줄로 들기 좋게 묶었다.



"자, 손님, 고기 나왔습니다."


"음..."


손님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만족했다는 느낌으로 소리를 흘렸다.



"얼마요?"



"은냥으로 6냥되시겠습니다. 손님."



순간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에 따라 장씨의 가슴도 덜컥였다.


그야 다른 지역에 비하면야 비싼 건 사실이지만,


괴물들이 통 난리라 이것도 손님 처치(장님인 것을)를 생각해서 남기는 것을 좀 줄여 제시한 것이다.




"흐음..."


"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을 처지가 처지인지라.."



미안함과 민망함이 묻어나온 목소리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한참을 품속을 뒤적거리다 엽전을 꺼내어 자신의 손에 펼쳐 내밀었다.



"여기있소."



"아유, 감사합...."


장씨는 노인의 손을 향해 손을 내밀며 삯을 받으려다 말을 잇는데 실패했다.




노인이 당당하게 내민 손바닥 안에는 은냥 일곱과 금냥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장씨는 조심스레, 한냥 한냥 줏어 딱 은전 6전만 받아 노인의 거친 손을 도로 움켜드렸다.



"어휴, 어르신 시험하시면 제가 간이 떨립니다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씨익 웃으며,



"그래도 손이 나쁜 치는 아니군."



역시나 장씨를 시험해 본 것이리라.



노인은 다시 손을 품속에 집어넣어 돈을 갈무리 했다.




"여기 고기 받으시지요."


고기를 받은 노인은 이내 장씨를 향해 "많이 파시게"라고 인사를 하며 발길을 돌렸다.


장씨는 보이지도 않건만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또 오십셔 어르신!"라고 외치며 인사로 마중했다.




장씨는 저렇게 간떨리는 손님은 처음이라고 느끼면서도 또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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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그 투박한 손으로 고기를 짐 안에 잘 갈무리하고선 다시 짊어 맸다.



눈은 보이지 않아도 발의 감각과 뛰어난 후각이 길이 계속 됨을 알고 있다.



노인의 코는 바닥이 흙인지, 아니면 풀인지.


그것에 따라 이 앞이 길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고.



앞서 있는게 개울인지 강인지 정도는 귀가 알아듣고 코가 알아먹는다.



제법 다부진 육체는 얼핏 봐도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지고 가기에는 무리일 것 같은,


그런 무거운 짐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짊어매고 걸을 수 있었다.



오늘도 몇 시간을 걸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노인은 지침을 모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터벅터벅 걷는 자신의 걸음소리, 자신의 발에 밟히는 흙모래소리,


바람소리, 바람이 스치며 내는 풀소리,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


작은 풀벌레의 소리.



마치 음악소리만 같다.


자신의 걸음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 내는 소리와


자연이 주는 소리의 합주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다.




강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흙길이 끝났다.



이 앞으로는 이제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다.



"이보게, 괴물발생지는 이 앞에 있나?"



노인은 다리 앞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유심히 노인을 지켜보던 보초는 갑자기 나온 질문에 깜짝 놀랐다.


단순히 장님이라고만 생각했더니 감이 좋은가 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마을과 가까이 괴물발생지가 있는지라,


아무리 강이 넓다고 한들 이곳으로 건너올 여지가 있다.



괴물도 아주 바보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차하면 교량을 끊어낼 요량으로 이렇게 보초가 있는 것이다.




보초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서 노인에게 대답을 하였다.


"예, 어르신. 앞으로 똑바로 2리(里)정도 가시면 나옵니다요."




"2리... 2리라..."



갔다오면 두시진(時辰)정도 걸릴 터이니...


그 뒤에 끼니를 때우면 될테지..



그렇게 생각을 마친 노인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고맙네, 수고하시게"


노인이 손을 들어 인사하자,


"예이, 살펴가십쇼."


보초도 꾸벅하며 인사했다.


다시 노인은 발을 옮겼다.



으레 다 그렇듯 발소리만을 남기고서 말이다.


보초도 노인의 등뒤를 바라보다가 노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의 일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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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어느샌가 싱그러운 대나무의 냄새가 가득해졌고 숲짐승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나는 듯했다.


아마 '자연의 품이라고 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노인에게 물은 적있었다.


'눈이 안 보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그야 노인도 처음부터 맹인인건 아니었다.


젊었을적 눈을 잃었고 그때에 비하면 불편하기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체의 이야기이고 오히려 앞을 볼 수 있었을 때에 비하면야 


얻은게 많다고 해야겠다.




그러면 무엇을 얻었는가? 라고 반문한다면...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되었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수풀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발을 옮기는 소리들,


또 이를테면 나무 위에서 기다리며 숨을 잦게 가다듬는 소리.


나무 뒤에 숨어 때를 기다리는, 그런 그림자들의 소리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말일세..


 자네들은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텐가?"



그렇게 언급을 하고 나서야 노인을 에워싸던 무리들이 흠칫 하며 놀랐다.


심지어 노인은 정확히 자신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리들은 어디서부터 들킨건지 골똘히 생각해보았으나


다리를 건넌 후 부터라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어차피 인적이 드물게 길에서부터 거리가 있는,


그리고 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이 없는 대나무숲 속이라며 안도했다.




물론 그것이 노인이 의도한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로 말이다.



"그래서 자네들은 무슨 용무인가?"



그림자에서 나온자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노인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는 '역시, 그렇게 나오는가....'라며 말을 속으로 삭혔다.



그저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 자세를 취했다.



일동은 대치중인 인물이 뿜어내는 기운에 잠시 멈칫 했으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무기도 들지 않은 노인이 무얼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이윽고 각자 무기를 꼬나 쥐고 도약했다.



잠시 노인은 자신에게 말하듯 생각했다.




'이 몸은 외날이요, 흐르는 물과 같으니'



그 것으로 의식은 포말과도 같이 무의식의 영역으로 녹아내린다.



마치 마술사가 자기 자신에게 고양시켜 효과를 더욱 강화하듯이.




단지 속으로 뇌까리는 것만으로 노인의 의식은 반전한다.




그리고 노인의 신체는 사라졌다.









'一閃(일섬)' 



말 그대로 '한 순간의 번쩍임'. 


선두에서 달리던 괴뢰가 하나 무너진다.




무리들의 머리에 의문의 들기도 전이었다.





二閃 두번째 섬광이 내달렸다.



또 하나의 복면이. 


마치 허공에서 뒹굴 듯 휘날렸다.



그들은 아직 채 의문조차 들지 못 했다.


하지만 노인은 멈추지 않았다.




參閃 세개의 섬광이 빛났다.



그것은 물흐르듯이 혹은 相入(상입)된 존재처럼,


깨달았을 때엔 이미 3명의 목숨을 거둬간 뒤였다.






적지 않은 수가, 



찰나에 수급으로 변했다.


이미 노인은 자세를 되잡은 뒤였으며,


무리들이 그제서야 의문을 들었음과 동시에 경악했다.



어떻게 동료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게 됐는지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노인은 그렇게나 무거워 보이는 짐을 바닥에 내려놓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지면에 발을 딛고 굳건히 서있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듯이.




그는 지팡이를 몸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안 올텐가?"




분명 허공을 보고 있음에도 귀에 박히는 듯하여 


무리는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럼.... 이쪽에서 가지."





그 말을 끝으로 지면을 노인의 발이 박찼다.



마침 바람소리가 들린 듯했다,




미세하게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그런 소리 말이다.





그들은 혼란 속에서도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대응하려 애썼다.



하지만 노인의 걸음은 신묘하게도 10걸음 이상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혀내 보였다.




사내는 눈앞에 나타난 인영을 보고 "앗"하는 소리를 흘렸다.



그것이 사내가 본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누군가가 "쳐라!!"라고 소리쳤다.



거기에서 그들은 각오를 다졌다.




열 하고도 넷



남은 무리들은 이를 악물고 무기를 힘주어 잡았다.




허나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지경이었다.




지팡이 하나만을 붙들고서 벚꽃의 꽃잎을 흩뿌리 듯이 


선혈의 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무리 중, 하나가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노인의 표정이 변화하였다.




달려든 자는 "각오!"라고 외치며 도신을 치켜들고 내려치려 하였다.



그는 노인이 맹인인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마치 '나 여기있소.'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노인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몸을 낮게 깔고 순식간에 그의 허리를 섬광과 함께 후려팼다.




아니, 베어 넘겼다.




길게 쭉 펴낸 팔의 끝에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도(刀)가 들려있었다.




도신의 끝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노인은 검을 절도있게 털어내었다.




그제서야 무리들은 노인이 지팡이가 아니라 실은 검,


거합술을 쓴 것을 알아차렸다.




무리들은 그제서야 무언가 일이 틀어져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인은 검을 다시 지팡이, 아니 검집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 


 본디 여행객이나 어정쩡한 모험가들이 괴물발생지에 오는 것이나 노렸을테니."



마치 장님에게 생각을 그대로 꿰뚫린 것같은 느낌,


아니 제대로 맞춘 것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모험가 조합(길드)에서 의뢰하더군.


 옛 이시국(國)에서 모험가를 죽이는 무리가 있으니 생사불문하고 처리하라.. 라고"



복면의 무리들은 그것을 듣는 순간 아연질색해졌다.



즉, 조합에서 계속해서 모험가들이 행방불명 된 것을 알아차리고서


실력있는, 여기 눈 앞에 있는 맹인을 보낸 것이라고.




그제서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실력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디 나라를 잃고 난 뒤 서양으로 가, 어느정도 모험가로서 실력을 쌓았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강도짓으로 벌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산적질을 하고 만 것이다.



한 두번이야 그냥 돈만 빼앗고 말았지만 언젠가 살인을 하고 말았다.


그것에 피의 맛을 알게 되고 그것이 그렇게 반복된 것이다.


결국 그것이 조합에서도 문제로 여겼고 결과적으로 현재 상황이 되었다.



거기까지 깨닳은 무리의 대장은 등에 땀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일이 이지경이 되었지?'라고 되뇌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일 방편이 생각났다.



대장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다들 마단(魔團)을 섭취해라!!"



무리들은 갑자기 대장이 소리치자 알아먹지 못하고 눈만 끔뻑끔뻑거리다가,


뒤듯게 내용을 이해하고는 갑자기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노인도 잠시 '저들이 발악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다가.


'마단'이라는 단어를 알아듣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잊고 눈을 크게 홉떴다.



정말로 최악의 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놈들!!!" 노인이 고함을 쳤다.




어디서 강도나부랭이들이! 마음이 다급해졌다.



노인은 크게 도약하여 무리의 한 가운데로 뛰쳐들어갔다.



노인은 크게 돌며 거합술을 펼쳐보였다.



"갈(喝)!!"


노인이 노호하자 그것에 한순간 움찔한 무리들은 그것으로 머리가 달아났다.



순식간에 3명의 머리가 굴렀다.


하지만 사정거리 안에 없던 이들이 더 많았다.


노인은 이를 악물며 크게 발을 굴렀다.



지진이 이는 듯, 



그리고 노인은 기합을 내질렀고 발은 대지를 차며 총탄과 같이 내질러졌다.




"크어..!!?"


노인과 눈이 마주쳐졌던 복면의 사내는 외마디소리도 제대로 못 냈다.


그리고 바로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등에 촉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별안간 힘이 빠지는 느낌에 겨우 뒤를 돌아봤을때는 자신의 동료가 있었다.



단 한번, 노인이 내지른 것에 두 명이 꼬챙이가 되어 힘없이 쓰러졌다.





노인은 지체하지도 않고 바로 칼을 빼내었다.


그리고 옆에서 무방비하게 멍하니 있던 적을 잔선하나 남기지 않고 


세로로 갈랐다.



그것을 보고 마단을 먹기를 포기한 한 사내가 노인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침 노인은 베기 동작을 끝낸 뒤였고 이제 사내는 내려치기만 하면 되었다.




"어딜!"


그러나 노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도를 바로 역수로 바꿔잡아 


사내의 배를 찔렀다.



그걸 본 주변의 동료들이 다시 노인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배에 칼이 박힌 사내는 칼을 부여잡고 꼬꾸라졌으나 노인은 힘도 안 든다는 듯, 


칼을 다시 빼내며 외쳤다.


"나와라!"




그들은 노인이 뭘 말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주변에 동료의 시체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럴거라 생각했다.




노인이 등에 지고 내려놓지 않았던 커다란 짐.


정확히는 거대한 나무궤짝.



거기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하고 이음새가 거칠게 나가 떨어지며 



막고있던 입구가 달려들려던 한놈의 안면에 정확히 박혔다.



그는 당연히 얼굴을 부여잡고 쓰려졌으며,



다시끔 어안이 벙벙해진 그들의 눈에 비친건


이제 갓 어린이 티를 벗은 듯한 소녀였다.




놀랍게도 팔과 다리 한쪽이 없었고 없는 쪽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지만


노인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옷감을 겨우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궤짝안에 있는 손잡이를 한손으로 겨우 잡고 거의 눕듯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소녀의 존재에 행동을 멈추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격하려했다.



그러나 이미 소녀는 한발로 활을 잡고 입으로 시위를 당겨놓고 있었다.



"쏴라."



노인이 명령하자 소녀는 망설임도 없이 시위를 놓았다.



그것도 두개의 화살이 걸린 채로.




흔들림과 불편한 신체. 그것에도 불구하고 화살 두개는 정확히 두 사내의 목에 박혔다.



당연히 꼬꾸라진 두 사내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린것은 당연하다.




"달리겠다."



노인이 신호를 주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활을 쥔 발로 궤짝 천장을 차서


위쪽 공간도 열었다.


노인은 다시 땅을 박차고 적에게 달렸다.




소녀는 팔에 힘을 주어 손잡이를 잡고 신체를 들어올린 후.


어느샌가 발가락으로 화살을 3개를 잡은채로 기이한 자세, 


허벅지로 활을 잡고 다시 입으로 화살을 1개 받아 시위를 당겼다. 


 

누가 보더라도 소녀의 유연함이 신기에 이르른듯 했다.



쏜 화살은 아까 궤짝 입구를 맞고 꼬꾸라진 사내의 등에 날라가 박혔다.



그 와중, 노인은 마단을 입에 넣으려던 적의 손목을 그어잘랐고,




다시 다른 적에게 달려들었다.


손목이 잘린 적은 소녀가 쏘아낸 화살에 의해 심장이 관통되어 사망했다.




그러한 난전 가운데, 


노인은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몇이나 남았지?



마침 마단을 입에 털어넣던 놈의 턱 위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반대쪽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 그 옆에 있던 자.



소녀가 쏜 화살이 그 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노인은 대장까지는 멀다 판단하고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생각이 다 끝내기도 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노인의 손은 마단을 꿀-꺽하고 삼키려던 자의 목을 꿰뚫었다.



거칠게 도를 한바퀴 돌려 거둔 도에 마단이 도 위에 얹어져있었다.




노인은 그제서야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결국 대장놈이 저 멀리서 섭취를 끝낸 것을 확인하였다.


그래, 그는 살아 남았던 것이다.



섭취한 결과로서 변화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



갑자기 피부가 거무죽죽해지더니 근육이 크게 부풀어 신체가 커졌다.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듯해지고 코와 입, 눈따위에서 죽은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노인은 탄식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따지듯이 노려보았다.



마단이라는 것은 사실 이런 동쪽 끝, 변방까지 흘러들어 올 물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존재자체도 극 소수이거니와 발생의 원인을 아는 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노인도 대륙을 돌아다니며 어쩌다가 연이 생겨 


어떤 고수에게 이에 대해 설명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일개 산적단에게 들어갈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과


취급을 잘 못하면 큰 사단, 아니 역사에 남을 만한 재앙이 될 물건이라는 것만은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장본인은 대답하지 못 하였다.


이미 이지를 잃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우두머리의 머릿 속은 흐릿해져 가는 와중에서도, 


동료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집념과 


자신을 방해했다는 분노만은 남아 노인을 향해서 맹렬히 살기를 내뿜어대었다.



그리고 마치 괴물이 분노하는 듯.


"---------!!!!!!!"


지축을 울리며 포효했다.



"....이런."



노인은 무리를 만나고서 처음으로 바짝 긴장했다.



본디 이시국 사람들은 


대륙에서 중요시 하는 내공이라던가 기라던가는 익히지 않는다. 



사실 '익히는 법을 모른다'라고 해야 정확하다 하겠다.



대신 대륙에서 표현하는 외공. 


즉, 체술이나 검술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고수가 되면 기를 느낄 수 있다.


설령 고수가 아니라도 느낄 수 있는 이 저릿저릿함.


노인은 피부로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노인의 눈이 보였다면 괴물처럼 변한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아우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공기가 탁해져가는 듯한 기운. 


이른바 마기(魔氣)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머리에 뿔마저 돋아난 그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봐줄 수 없는 외견이었다.



피부가 갑주같이, 


갑각류마냥 솓아났고 무기마저도 마기의 영향인지 위협스럽게 변하였다.




그야말로 악마, 악귀나찰라고 밖에는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기세와 안광도 흉흉해 누군가 봤다면 오줌을 지리고 줄행랑을 쳤으리라.



하지만 노인은 마음을 다시잡았다.


눈이 보이지도 않거니와 이 노구가 하지 않으면 누가하리.




그는 아까 나온 마단은 일단 짐속에 넣고 칼을 재차 털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끔 머리를 냉정히 했다.




'이기고 지는 것도 한때의 운이니'


노인은 속으로 혼자 생각하고서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무의식의 영역까지 의식을 끌어내렸다.




그것으로 노인은 전투태세를 마쳤다.



괴뢰의 우두머리, 아니 마인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노인을 직시했다.



그는 이제는 침마저 질질 흘리며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 처럼 보였다. 


허나 싸우고자하는 의지만큼은 노인도 소녀도 알 수 있었다.



"그럼,"


노인은 듣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선언했다.



"정정당당히 승부를!"



그 선언으로 노인과 마인은 질주했다.




서로는 혜성과도 같이, 혹은 총탄과도 같이 신체를 날려보냈다.




마인과 노인의 검이 격돌한다.



아니 격돌이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못 했다.


누가봐도 노인이 마인의 검에 의해 날려버려질 것은 자명했기에...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질량과 질량이 맞부딪친다면 질량이 적은 쪽이 떨어져 나간다.


그건은 상식이자 절대불변할 진리이다.


관통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속도가 다를 경우,



지금은 누가봐도 비슷한 속도였다.





그러므로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이치에 벗어났다.



격돌하는 순간, 그 엄청난 마인의 파괴력을 도의 옆면을 이용해 비껴흘렸다.


그러면서 찰나에 도를 역수로 쥐어 "흡-!!"하는 기합성과 함께 손목을 잘랐다.




거무죽죽한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잘랐어야 했다.



그러나 동강낼 생각으로 그어올린 도가 무색하게 마인의 손목은 건사했다.


약간 베어낸 정도에 그쳤다.




마인은 이제 둔기처럼 변해버린 무기를 쥐지 않은 손을 쥐어 노인을 향해 내질렀다.



노인은 급히 "화야!"라고 외치면서 제대로 자세를 취하지 못 한채로 역수로 잡은 그대로 주먹을 향해 칼로 틀어막아 보았다.



단지 주먹만인데도 충격이 고스란히 내장에 울려퍼지는 듯 했다.


충격으로 내장이 상했는지 목구멍을 통해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한 순간도 방심하지 못 하겠다는 듯, 객혈을 하지도 못하며 마인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애도(愛刀)는 마인의 주먹에 박힌채로 빠지지 않아 이대로라면 공격을 


허용할 터였다.


마인은 그 광경에 만족했는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듯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뒤 위에서 화살이 마인의 주먹과 손목, 팔, 어깨에 차례로 박혔다.


마인이 놀람과 분노로 위로 쳐다보았다.


노인의 지고 있던 궤짝에서 소녀는 겨우 남아있는 다리 한 짝으로 높게 뛰어올랐던 것이다.


'화'(花)라고 불린 것은 소녀의 이름.



노인의 신호로 소녀는 알고 있었다는 듯 준비하고 비상했다.


양팔이 있어도 힘들, 공중에서 사격. 


소녀는 그 불안정함을 이겨내고 발로 활을 고정한 뒤, 


입으로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아 내었다.


나머지 한팔은 화살통을 대신 화살을 쥐고 있었다.



마인은 거기까지 이성없이도 전투논리로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마인의 동공과 안광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소녀를 집중했다.



연약해 보이며 한짝씩 밖에 없는 팔다리. 


나풀거리는 옷과 목을 두른 천.


새하얀 피부와 뚜렸한 이목구비, 


그리고 흉흉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이었다.




마인은 무언가 거대한 벽이 사방에서 압박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벽이 아니라 무언가 압제, 누군가 자신을 내리누르는 느낌.


마인은 잠깐, 


그야말로 눈깜빡할 새지만 자신이 눈꺼풀하나 깜빡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이성조차 날아갔으나 본능이 쉴새없이 울려대는 경종과 숨쉬는 것 조차 버거움에 두려움마저 느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시선을 돌리는 것 조차 허락치 않기에.

 

눈앞의 소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 압박감은 자신의 권능이라고 말하는 듯이 고고하고도 도도한 눈매로 자신을 내려보는 듯 했다.



"....."


무언으로 소녀는 '그것이 나와 너. 격의 차이이다.'라고 말했다.



"---!!"


마인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분노했다.


감히 제 누가 자신을 제단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자신을 압박하는 이 기운에 저항한다.


당장이라도 핏줄이 터질 듯, 근육이 폭발할 듯 모든 힘을 터트린다.




그러자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이..."



자신의 시야의 밑이었다.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네 놈이 직접 올려다본단 말이냐!"



노인은 꾸짖었다.


 

입에서 피가 튀기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마인의 주먹이 박힌 도가 아닌 검집으로 도를 쳐내 빼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검집의 끝으로 마치 꾸중하 듯, 마인의 목젖을 온 힘을 다해 강타했다.



목이 움푹 들어갈 정도의 강력한 위력의 공격이었지만


마인은 겨우 목을 움켜잡고 켁켁거리는데에 그쳤다.



그래도 그것으로 간신히 노인은 마인의 손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소녀를 고이 양손으로 받아들고 마인에게서 멀찍이 벗어났다.




소녀와 노인은 서로의 안색을 살폈다.


소녀도 노인도 지친기색이 가득했다.



둘의 시선이 교차했지만 한동안 말이 없었다.


"괜찮느냐?"


노인이 걱정어린 목소리에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겠느냐?"


다시 이어진 노인의 물음에 소녀는 물끄러미 웃어보였다.


그제서야 노인도 빙그레 미소지으며,


"네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다."


안심했다.




노인은 소녀를 조심스레 궤짝으로 옮겨주고서 다시끔 마인을 주시했다.



마인은 마침 켁켁대는 것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미 여기저기 입은 상처는 증기와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나 인간에서 벗어난 것만은 확연해 보였다.




노인은 자신과 칼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상을 입었지만 아직 전투를 속행할 수 있었다.


각혈한 것에 비해서 딱히 크게 상한 것같지는 않았다.


대륙에서 배워 온 운기법이 이럴때는 쓸만하다고 느꼈다.


어쨌건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간단한 운기법을 배웠었다.


신체재생력을 올려주는 내공은 대륙의 무인에 비해서야 미약한 수준이지만


하여간 이 정도의 내상은 어렵지 않게 치유 중에 있었다.



게다가 이 정도의 고통이야 전란의 시기에 비하면야 새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칼도 피에 몇번 적셔지기는 했지만 아직 예리함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몇번이라도 더 싸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끔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상대의 육질은 아까 조무래기따위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다.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도를 양손으로 바로 잡았다.



정도(正刀).



노인은 기교나 계략, 변칙등을 머리 속에서 지워나갔다.



단지 검의 궤도 그것만을 생각했다.




눈을 감을 필요는 없었다.


본디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왼발을 살며시 앞으로 두었다.



본디 디뎌야 한다는 듯,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고 왼손의 힘을 빼었다.


왼손은 그저 거들기만 하면 되었다.



마인도 노인이 일격에 승부를 보겠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거대한 둔기를 꼬나쥐었다.



둘 사이에 고요히. 


바람이 불었다.



마인은 무언가 조그마한 이변이라도 일어난다면 들이칠 준비를 하였고


노인은 고요히 가만히 서 있었다.



둘 사이에 죽엽이 팔랑이며 내려앉았다.


'톡'하고.




그리고 이내 마인은 달려들었다.


마치 화난 황소와 같이 그를 가로막는 것은 모두 분쇄시킬 듯 했다.




노인은 조용히 도를 들어 올렸다.



괜시레 등에 지고 있는 궤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이윽고 마인과 노인은 충돌할 터였다.



노인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도를 내리쳤다.



강렬한 충돌음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궤짝에 앉아있던 소녀가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때는 좌우로 갈라진 마인의 신체만을 볼 수 있었다.


일도양단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그제서야 노인은 자세를 추스리고 숨을 몰아 내쉴 수 있었다.



"오늘도 쓸데 없는 것을 베고 말았구나.."


마치 소녀에게 말하는 듯이 노인은 중얼거린 후 도를 납도했다.








"그에에...."


마인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절단된 면에서 부글부글 끓는 기포와 함께 연기가 거칠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절단된 신체를 이어보려 안간힘을 쓰고있었다.



"그어어.... 반드...시... 너..르.ㄹ"



노인은 그 광경, 아니 소리를 듣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 놈이 그리 질긴고..."



마인은 간신히 절단면끼리 갖다붙였다.


붙은 곳끼리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이어지는 듯 했다.


그제사 마인은 씨익 웃어보였다.




"허나 늦었네. 젊은이...."


노인이 잠잠히 일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인의 발 끝부터 우그러 들기 시작했다.



마인은 당황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손을 휘적대었으나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건 이상하다.



"모르고 있었나 보구먼. 


마단의 부작용 말일세."



노인은 옷의 품속에서 담배갑하나를 꺼냈다.



정말 노인과 어울리지도 않는 현대식 궐련이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지 갑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성냥갑을 꺼내 성냥을 사포에 그어 


불을 일으키고는 궐련의 끝에 붙였다.



불씨는 궐련을 태워 들어갔고 그만큼 두목이었던 자의 신체는 오그라들었다.



"마단을 어울리지 않는 자가 섭취하면 오히려 마단에 모든걸 빼앗기지."



노인은 연기를 내뿜고 말했다.



"어째서 자네들 같은 일개 산적들이 소지하고 있었는가는 모르겠네,


그렇지만 자네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야."




이윽고 두목의 신체는 완전히 오그라들어 환(丸)의 형태.


마단이 되었다.


마단의 부작용.


그것은 섭취한 자가 분수에 어울리지 않으면 


마단이 섭취자를 흡수해 버린다는 것이다.





노인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듯, 잠시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짐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


"화야, 뭔가 장갑이나 천이 있으면 다오."


소녀에게 지시하자, 소녀는 몸을 어렵사리 틀어 짐안에서 한참을 뒤적거린 뒤,


장갑을 찾아 노인에게 건냈다.



노인은 장갑을 끼고서 하나하나 회수하였다.



물론 눈이 보이지 않기에 마단에서 새어나오는 마기에 집중하거나 하면서


회수하여야만 했다.


꽤나 오랜 시간 뒤에 노인은 땅을 파내고 그 주변을 정리한 뒤에


구덩이에 마단을 죄다 털어넣었다.



노인은 이마에 흥건한 땀을 소매로 훔쳤다.



그는 '되다'라며 다시 성냥에 불을 붙이고 마단의 위에 던져넣었다.



그러자 마치 석유에 불을 붙인 것마냥 '화르륵'하고 화염이 치솟았다.



불길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느끼고 있자니,


문득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노인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때마침 시장하기도 했다.


날도 어두워지고도 했고,



그렇다면 역시 야영밖에는 답이 없으리라.



------------------------------------------------------------







노인이 야영준비를 마쳤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노인은 어디선가 나무를 잘라와 적당히 손을 보고 소녀를 앉혔다.



누군가 봤다면 영락없이 인형과 같이 생겼다고 했을 것이다.


모닥불마냥 마단 위에 잔가지와 장작들이 불타고 있어,


그 불빛에 비춰져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고


옷감이 좋은 편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 누구는 둘 사이에 대화가 없음을,


정확히는 소녀가 한마디로 하지않는 것에 의아해 했을 것이다.



제대로 대화가 성립하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그저 행동으로 대화하였다.



하여간 지금은 그저 조용히 불의 온기를 느끼면서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노인은 불길의 따스함 느끼며, 


아마 눈이 보인다면 '밝을 것이다'라고 상상했다.




그러면서 잠시 옛일을 회상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불길이 치솟았다.




창과 칼, 화살이 빗발치는 상황이었다.






대국 '롱'의 병사들과 이시국의 병사들이 서로 죽이기 바빴으며,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노인, 아니 그 당시 중년 쯤의 나이었던 그는


혼란과 전화의 불길 가운데서 홀로 병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배신자! 어찌 신국의 명을 어기고 우리와 적대하는가!"



이시국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당시 중년이었던 그리고 이름난 대장군이었던 그는 바로 갈(喝)했다.



"원숭이의 아집으로 무고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국명이더냐!


 천황께서도 그것을 명하신 적이 없는데, 


 어찌 그것을 신국의 명이라 하는 것이냐!"


장군이 호통하자, 그에 반박하는 자가 없었다.




그것을 느낀 장군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외쳤다.




"지금이라도 물러나라! 기어이 피를 봐야하겠는가!


 이것이 정녕 올바르다고 가슴 펴고 말할 수 있는가!


 천황께 진실된 신하라고 자신할 수 있겠느냔 말일세!"



장군의 기세와 호통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자도 있었다.


"닥쳐라! 반역자!


 어디라고 그 혀로 홀리려고 하는가


 우리는 신명을 받고 온 용감무쌍한 신병들이다!"



선두의 지휘관이 그의 말에 맞받아쳤다.


그러자 병사들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창과 칼을 내지를 듯 했다.



그것을 본 장군은 한숨을 내쉬며 경고했다.


"그럼 마지막 경고일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금이라도 도망치시게...."



그는 잠시 뜸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면, 자네들. 


 정말로 나에게 맞서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장군, 정이대장군.


이시국에서 무인으로서 가장 인정받는 직위.



그런 그가 낮게 목소리를 깔며 속삭이듯 말했다.


얼굴에 음영이 지는 듯 했고, 


기묘히 번들거리는 눈에서는 살기마저 풍기는 듯 했다.



선두에서 그것을 본 병사들은 저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시국 내에서는 야차, 아수라라고 까지 불리는 그였다.


진위야 어쨌든 간에 오금이 저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이익!! 전군!! 저자를 살려두지 마라!!"


지휘관이 결국 분을 못 참고 지휘봉을 장군을 향해 쳐들었다.




그에따라 사방에서 수도 셀수 없는 병사들이 칼을 빼드는 소리가 들렸다.



칼을 뽑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뜻.



그것을 본 장군은 눈에 불길이 이는 듯 했다.



이것이 부대의 의지란 말인가!




개탄하였다.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각오!"


그 말을 시작으로 전투, 아니 전쟁은 시작하였다.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인간의 파도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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