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XX19년,
과학 기술은 무한한 발전을 이룩하여 전 세계, 아니 전 우주가 인간의 1일 생활권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람은 언젠간 자신의 짝을 만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아 평생을 함께 한다.
남들에겐 당연한 그것이 나에겐 3049716일이라는 한번에 읽기도 어려운 날을 보내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다행히 의학 기술의 발전이 저 시간을 정말로 기다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 5백년은 그냥저냥 보낼 만 했다.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진 기분이어서 기쁘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또 천년, 타임 머신은 학계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받으며 나는 오롯이 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건 미친 짓이다. 혼자라면 더더욱.
그래서 천 오백년간 참다 못한 나는 냉동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런 모습을 기대하며 냉동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했지만
실상은 이러했다.
뭐 어쨌든 상관 없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X천년 후, 그 날 하루 전, 나는 깨어났다.
깊은 잠에 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천장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믿기지가 않는다.
남은 하루를 기다리며 그 날의 기억을 되새겨보기로 했다.
+
2019년 6월 13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끝내고 집에 와 트위치를 켜고 묘누나 방송을 보고 있었다
방송의 막바지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묘누나가 선택한 것은 심리테스트.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다 보게 된 남은 솔로 기간 알아보기가 재미있어보여 서로의 닉네임으로 돌려보기로 했다.
19시간, 3개월, 80년 등 재미있고 그나마 현실성 있는 결과가 나왔고,
그 다음 내 닉네임에 대한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3049716
?
처음엔 오류 코드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일'을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보던 유희왕 주제가처럼 수천 년이 지나야 마침내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게 내 얘기였구나.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맞아. 그랬었지.. 그게 벌써 그렇게 오래 된 일이구나.
지금 나는 평생을 바쳐 기다리던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사람일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람이 내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하다. 너무 긴장했나?
그렇게 기다렸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마치 처음부터 다시 기다려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
응? 무슨 일이지?
머리가 아프다.
분명 엄청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아 맞다! 나 방송후기 쓰고 있었구나
오늘 남은 솔로 기간 테스트에서 3049716일 떠서 엄청 웃었지 ㅋㅋ
저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 다 재미로 웃자고 하는 건데
저렇게 기다릴 바엔 다다음 생 정도 노리는 게 맞지~
어쨌든 외롭네 ㅠ
내일도 묘뱅송 보면서 힐링해야겠다
'오늘 방송도 재미있었어요
내일보자 묘빠트빠!'
방송후기 작성을 마친 나는 노트북 화면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천년의 기다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