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자유게시판 저는 말입니다

마조_까치
2023-10-22 04:39:17 1239 34 11

저는 말입니다,

모처럼의 주말인데도 편히 쉬지 못하고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한숨도 푹푹 쉬어대고, 몸도 배배 꼬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여도 보면서

이래저래 뭐라도 소득을 올려보려 애를 써봤지만

밤늦은 이 시간이 되어서야 아, 오늘도 허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릴없이 비참하고 쓸쓸한 심정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또 트게더를 들여다봅니다.

요 며칠 동안 트게더를 들락날락 하는 게 거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혹 무슨 중요한 공지라도 올라오지 않았을까,

혹 놓치면 안 될 소식이라도 들리지 않을까...

트게더에 와보면 뭔가 해결책이라도 있을 것마냥 기웃거렸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콱 막힌듯한 답답함이 해소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오늘 문득, 별 생각 없이 트게더를 들락거리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지?'


저는 말입니다,

방송에서든 트게더에서든 제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은 지양했습니다.

나의 일은 나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다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고,

그들도 관심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딱 방송에 재미를 더할 수 있을 정도라 판단하는 선 하에서만

경험담이나 최근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진솔하게 제 이야기,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꽤나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성향의 사람일 뿐더러,

여지껏 덕질이니 팬심이니 다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티를 내는 친구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자들의 일이고,

그들이 내 현실의 삶에 침투해 들어올 일은 전혀 없으니

스크린 속의 존재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은 완전히 낭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실용성도 생각하지 않고 굿즈를 사서 모으고,

각종 행사에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한심한 눈으로 보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시건방진 생각이었고,

그리고 인생을 다채롭게 즐길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질 정도로

인간관계에서 단절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가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주변에 넉넉히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진짜 제가 가식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코드가 딱 맞는 사람들은 주변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게임, 유머, 인터넷, 스몰 토크...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음 깊은 곳까지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이런 것들은 다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은 끝끝내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오고 가지 못하고

혼자만의 은밀한 취미로 남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2020년의 시간을 정말 끔찍하게 보냈습니다.

연초에 터진 코로나가 갑자기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음은 물론,

저 자신도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었습니다.

많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그동안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걸어왔던 길이 모두 허사로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바닥을 치며 밑도 끝도 없이 몸과 마음 모두 추락하던 와중에

누군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이른바 국민 게임이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인 게임들은

영 실력이 좋지 않아서 취미를 쉽게 붙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집에서 즐겼던 닌텐도 패미컴을 카피한 게임기로,

동네 오락실과 문방구 앞에서 볼 수 있었던 아케이드 게임기로 시작된 게임에 대한 열정만큼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 신분이던 시절에는

유튜브를 통해 게임 전문 방송인들의 플레이 영상을 즐겨 보면서

그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방송인들을 알게 되었고,

어느 해인가 트위치의 존재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트위치에 처음 가입한 계기는 어떤 공포게임 전문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포커스는 아직 사람보단 게임에 맞춰져 있었고,

누군가의 고정 시청자가 될 만큼 열정적으로 방송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꾸밈없이 솔직한 태도로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제 정서와 분위기가 맞는 방송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도 저는 '트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우연히 누군가가 커스터마이징을 기묘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낸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저에게 그 사람의 존재를 알려준 유튜브 채널은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원체 신기한 광경에 저도 속으로 탄식했고,

또 한편으로 '저 사람은 확실히 뚜렷한 미인상이구나' 생각하곤 말았습니다.

그 사람과의 인연은 한번 흘기듯 보곤 그저 그렇게 끝날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당시에 유행하던 게임 어몽어스의 단체 합방이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습니다.

제가 가끔 유튜브로 보던 스트리머들이 거기에 몇몇 껴 있었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곤 생방송을 한번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참가하는 스트리머들을 미리 팔로우해두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팔로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방송은 재밌게 잘 즐겼지만, 그 사람과의 인연은 또 그저 그렇게 끝날 줄로만 알았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바닥을 기던 2020년의 어느 날 우연히 접속한 트위치에서

그 사람의 방송 제목에 언젠가 제가 정말 인상깊게 했었던 게임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곤

재미있겠다 싶어서 생방송을 길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급적 나서는 건 자제하자 다짐은 했지만

그때까진 인터넷 방송 라이브의 분위기에 잘 녹아들진 못했던 터라

지금 본다면 내가 왜 이랬을까 싶었던 행동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 사람은 제 채팅에 거부감 없이 반응해줬고,

생방송 참여의 묘미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은 게임을 침착하면서도 참 재밌게 즐기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모처럼 참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매일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찾아와 무엇을 하나 눈팅 정도는 하기 시작했고,

마음에 드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면 함께 밤을 새가며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 오픈 시간을 기다려가며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고,

그 사람과의 인연도 그 정도에서 머무를 줄로만 알았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딱히 놀러갈 수도 없고, 놀러갈 마음도 없었던 2020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지금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면서 놀고 있을까 궁금해서 트위치에 접속해봤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방송에서는 한창 구슬게임이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어 있었고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닉변 지목의 차례가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날 구슬게임의 전체 맥락은 다 파악하진 못했지만,

직전 판의 모습을 보곤 분위기만 대충 파악했습니다.

어째 이름들에 ㅈ같은 걸 붙이는데, 나도 대충 그거랑 비슷하게 만들면 되겠지 싶어서 나름 순발력을 발휘해봤습니다.

첫번째 제시한 닉네임도 반응은 괜찮았지만, 뭔가 미지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순간 '이거다'하며 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갔고, 이것으로 다시 변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사람이 터졌습니다.

함께 방송을 보던 모두가 터졌습니다.

제 안에선 뭔가 시원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 차례 사람들의 닉네임도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바뀌어가는 모습을 재밌게 지켜보았고, 또 악질짓에 참여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는 '트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그 사람의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우연히 생기기 쉬울 진 몰라도,

그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순전한 우연 이상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방송을 보고 또 참여하면서

이전에는 얻지 못했던 일상의 어떤 작고 소소한 즐거움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거칠지도 않고, 너무 내숭 떨지도 않고,

너무 엄격하지도 않지만 너무 느슨하지도 않았습니다.

게임을 너무 못하지도 않았고, 또 너무 성의없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질색팔색하던 아재개그도 유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점들이 제 코드와 잘 맞았습니다.

방송을 보면 볼수록 그 사람의 그런 면모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소통을 통해 웃음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전 그런 것들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그렇게 만 2년하고도 10개월 동안 제 일상의 한 부분에 그 사람을 들여놓았습니다.

그저 즐겁기만 할 수 있는 그 시간은 저에겐 참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슬럼프도 딛고 다시 일어나, 인생의 또다른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좋은 곳에 취직하고 새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이 성취 모두를 그 사람의 덕으로 모두 돌리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이미 의미를 상실한 이 세계 속에서 즐거움마저 찾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지상의 지옥 그 자체일 것이고,

유약한 인간 개개인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스러져버릴 것입니다.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오늘을 잠깐이나마 웃으며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존재는 상대방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솔직히 제 인생의 앞날은 탁하고 두꺼운 안개를 눈 앞에 두고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데 어디 절벽은 없을까 하고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듯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만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일들도 결코 쉽지 않고, 또 적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요 몇달 간 방송도 마음 놓고 보지 못했습니다.

일상의 치임에 지쳐가고, 새로 배우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갔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면 마음 속에는 내심 안도감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나는 나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당신은 당신의 일상을 잘 살아가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꿋꿋이 버텼는데,

어느날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궁금했지만,

감히 나설 수도 없는 입장임을 잘 알기에 그저 별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빈 자리가 이제 와서야 너무나도 커 보이는 탓인지

마음 속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떨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뭐가 됐든, 우리가 항상 인삿말로 주고받았듯이

강녕하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이 기다림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혹 돌아올 때가 되었을 때 그때의 제 삶이 더 빡빡해졌을지,

그래서 더 이상 생방송을 전처럼 즐기기에는 힘들지 아닐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바라건대 너무 늦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훗날 그 사람의 타이밍과 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지기만 바랄 뿐이고,

그걸로 그 사이의 공백이 무색하게 될 수만 있다면... 전 그걸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이 다시 올 때까지는 그저 무엇이 됐든 간에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해결하고,

그리고 몸도 마음도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보채지 않겠습니다만, 잊지도 않겠습니다.

항상 강녕하시길...

후원댓글 11
댓글 11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이 글에 댓글을 달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해 보세요.
▲윗글 트코 최초 2수박(진짜임) 둡부석
▼아랫글 공항으로출발 애기새우
공지사항자유게시판두부 그리기게임 추천클립 / 움짤사연 있어요시청자참여플레이 리스트후기 게시판피드첩 신청 게시판털 게시판이거 불러주세욤재능기부두부마켓
11
자유게시판
박항서! [3]
애기새우
10-23
2
자유게시판
유튜브 별걸 다보여주네 [4]
말랑콩떡이__
10-23
11
자유게시판
트게더 어플 삭제 대비 알람 설정법 [8]
나랑도_사이다
10-23
8
자유게시판
방장 복귀 뱅송! [1]
록슈슈슉슈발로마
10-23
8
자유게시판
레드벨벳은 수록곡 맛집이에요 ! [12]
구사빵사
10-23
13
자유게시판
와 개머시따 2수박 [6]
말랑콩떡이__
10-23
5
자유게시판
이거 혹시... [1]
넥_5왕
10-23
7
10-23
15
클립 / 움짤
1년 전 오늘의 연두부 [1]
둡부석
10-22
26
자유게시판
방장은 돌아오거든 [7]
나랑도_사이다
10-22
21
자유게시판
그거 아시나요? [11]
김라칸
10-22
4
10-22
21
자유게시판
팬 받아라 [2]
qwr0487
10-22
10
자유게시판
덥다 더워 [6]
애기새우
10-22
10
자유게시판
열심히 살기 [2]
쿠키162745
10-22
18
자유게시판
트코 최초 2수박(진짜임) [3]
둡부석
10-22
»
자유게시판
저는 말입니다 [11]
마조_까치
10-22
17
자유게시판
공항으로출발 [5]
애기새우
10-22
18
자유게시판
음... [4]
무지성_단무지_
10-22
15
자유게시판
뭐해 둡짱 [2]
아쿠마다1
10-22
16
자유게시판
포인트경품 new [2]
둡부석
10-21
20
자유게시판
딱히 걱정 안됨 [5]
고먐미캔따개
10-21
8
자유게시판
? [1]
쿠아요
10-21
31
10-21
9
자유게시판
오늘의 저녁 [2]
이지둡댄스
10-21
20
자유게시판
잉... [4]
비닐무대
10-21
11
자유게시판
열심히 살기 [4]
쿠키162745
10-21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