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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롤ソ
2020-01-20 10:22:00 141 1 1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바닷가의 조개껍질이 밟혀서야

먼 옛날 살아 숨쉬던

작은 몸의 허물따위

훌훌 벗어던지고

모래로 돌아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 했던 건

커피에 넣을 설탕이 떨어져서야

달콤함이란 없는

우울한 이 찻잔을

모두 들이켜야만

어른이 되는 걸까


절인 올리브, 밭의 허수아비

썩은 통나무와 녹슬은 우편함

모래로 쌓아올린 성의 

꼭대기에 서서

어디로도 내딛을 수 없는

발걸음을


그저 내일 걱정이 내 할 일이란 건

내가 직접 발판을

빚어야 한다는 것


알고 있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발밑이 까마득히 보이지 않아서야


지쳐버린 뒤로

주저앉은 이유는

앞으로 짊어질 것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산의 연못이 말라붙었기 때문이야

여기저기 새어나가

텅 비워진 마음처럼

채워 넣으려 할수록

더 공허하더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과거의 거울을 바라보게 되어서야

가슴을 움켜쥐고

이불속에 묻힌 

그 등을 쓰담으며

꼭 끌어안았어


은은한 향초의 연기

TV에서 울려퍼지는 웃음소리

따뜻한 물을 끓이는 주전자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만의 내 사랑


어릴 시절 예쁜 추억들이 담긴

책장 구석의 먼지 쌓인 일기장


이 사소함들이 다 소중할 텐데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또다른 결말이 내 앞으로

다가서서야


끝을 맺기 싫다고

울고 있는 이유는

이별의 흉터들을 

이미 품고 있어서야





내가 살아가려 생각했던 건

내 고통을 누군가 포근히

보듬어서야


깊은 죽음의 장막을

들여다보는 버릇은

너무나 늦은 때

삶을 깨달아서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빛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던 날


그대같은 사람이

태어난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었어


그대같은 사람이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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