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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 빛나는 밤에 가을쯤, 나를 돌아보다

광군38810
2019-10-24 18:24:46 388 2 1

첫 소개팅,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난 완벽히 그녀를 속이고 멋진 사람으로서 그녀와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소개팅이 엄청 싫다. 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찰나의 순간에 마치 나를 한껏 부풀린 두꺼비같은 모습으로 누군가한테 나를 보인다는 것은 내가 마치 나를 판매하는 영업사원 같기도 하고, 광고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오래 함께한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다. 오래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점점 그 사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내 눈에 그 사람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한참을 스스로 부정하다가 이내 내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무엇이 달랐는가? 

나를 정말 아껴주는 동생이 있다. 오빠는 참 손이 많이 간다며 나를 잘 챙겨주는 동생이다. 때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그래서 내가 잘못을 해서 어쩔줄 몰라할 때 몇번이나 온 연락에 정말 미안하다고 했을 때,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냐며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넘기던 그런 동생이다. 정말 고마운 동생이다. 그 동생이 나에게 권한 소개팅이었다. 그냥 부담가지지 말고 한번 만나보란 말에 그래 이 친구를 믿고 나가보자. 그렇게 나간 소개팅이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의외로 어색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놀랐다.

나는 허례허식을 정말 싫어한다며 매너보단 정말 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나를보며 미쳤구나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잠잠히 들어주었다. 

이야기가 무르익고 보니 어느새 서로의 꿈을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쁜 와중에 서로 시간을 빼서 만난 것이라 시간이 참 야속하게 지나갔다. 헤어질 때즘엔 다음엔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싶다며 자연스럽게 말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후 바쁘게 돌아가는 일들과 마음처럼 안되는 삶의 좌절들에 어느새 나는 오랜 시간 내 동굴안에 갖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시간 속에 연락할 용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저 너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그렇다 내가 피했던 그 전화이다. 전화를 받고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했다. 말해봤자 변명으로 듣지 않을까 그렇다 그게 바로 전화를 피한 합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동생은 다른 일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애프터 신청을 했다 약 보름만이었던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그녀와 다시 보기로 했다. 여기까진 참 좋았다. 그래 전화위복이란 이런 것이구나했다. 


그녀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에서 우린 밥을 먹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난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동안 연락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연락을 못한 건 그녀의 탓이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근데 이 바보 같은 나란 존재야 난 거기까지만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나의 삶의 무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픔을 감추기엔 너무나 무거운 상태였나보다. 아니 그녀의 질문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 얼굴에 이미 다 표가 났던 것 같다.   


삶과 가정을 내다버린 아버지, 계속해서 가족을 속이던 그런 아버지를 살리겠다며 같이 사업에 뛰어 들었던 바보같은 나, 완벽하다 생각했지만 점점 틀어졌던 계획들, 잔인한 현실과 바보같은 선택 속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애써 웃으며 이야기했다. 


한참을 내 이야기를 말 없이 들어주었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자신의 어깨가 아프다며 얼마나 무거웠냐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해주었다. 나 못지않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한참을 말없이 들어주었다. 


이윽고 난 깨달았다. 우린 마음의 결이 정말 닮아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기에 우린 둘다 너무 마음이 망가져버린 것을 동시에 알아버렸다. 밥을 다먹고 일어나서 커피숍을 찾는다는 핑계로 우린 한참을 같이 걸었다. 이런 저런이야기를 하며 조용하게 걸었다. 


우리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우린 사랑할것이 아니라, 먼저 살아야했다. 

커피숍에서도 한참을 이야기한 후 헤어지며 그녀는 내게 프리티켓을 주었다.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무언가를 해냈을 때 스스로를 칭찬하라고,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스스로를 다독여주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런데자신도 사실 프리티켓을 쓸 줄 몰라서 들고만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미소가 밝으면서도 한편으론 참 쓸쓸해보였다.


나는 살아야한다. 죽고싶단 생각은 결코 해본 적 없다. 

나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나로서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고, 대단한 것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껏 나란 존재를 아껴주지 못했음을 미안해했고, 그녀가 알려준 심호흡을 몇번이고 따라하고 최근엔 달리기를 시작했다. 괜찮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언젠간 이런 나를 돌아보며 웃는 날이 오겠지라고 외면하던 현재의 나에게 진심으로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길 바란다. 

내 인생이 가을쯤인지, 겨울쯤인지 알수 없으나 봄이 올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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