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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겨울맞이 단편소설—플러리중독

susaberry
2020-11-18 12:11:52 1353 93 14

겨울맞이 단편소설—플러리중독 (欻裸吏中毒)


“고객님, 죄송하지만 지금 카라멜 마끼야또는 품절입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메뉴판에 메뉴가 오조 오천만 개가 있어도, 늘 내가 원하는 품목은 어김없이 품절이다.


“아, 그러면 그냥 맥플러리로 하나 주세요.”

주문번호가 적힌 영수증을 받아들고 나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선배의 앞에 앉았다.


“야, 근데 말이야…”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선배가 말을 걸었다.

“뭔데요, 형?”

“아니다, 아니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이런 화법은 사람을 상당히 거슬리게 만든다. 샤프를 시원스레 빌려주거나 아예 빌려주지 않으면 될 일인데, 

사람 약오르게 얇은 샤프심 한 개를 띡, 하고 건네주는 꼴이다.


“아이 정말, 뭔데 그래요? 별거 아니면 그냥 말해주면 되지.”

“아, 다른 건 아니고. 너 요즘 무슨 개그 프로그램 같은 거 보냐?”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머리를 한 대 깡!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당황한 채로, “아뇨, 딱히 보는 건 없는데, 갑자기 왜요?” 라고 되물었다.

“그냥, 요즘 니 말투나 행동같은 게 좀 이상해서. 방금도 ‘카라멜 마끼야또’라고 안 하고, ‘가라멜 마기아도’라고 주문하길래. 그것 말고도 요즘에 너 말투가 좀 이상해.”


되짚어보니 정말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쌍자음을 생략한 채로 단어들을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떡하죠’ 를 ‘어더가죠’로 발음하는 식이었다.


“그래, 저번에 술자리에서도. 알바가 실수로 장현재한테 물 쏟았을 때, 다들 놀라서 물 닦고 분주할 때 너 혼자 입을 옆으로 죽 찢고 개구리 뒤집어진 자세로 있었잖아.”


그것 또한 선배가 옳게 보았다. 최근 들어 황당한 일이 생기거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운이 좋을 때, 간혹 개구리 뒤집어진 자세를 짓곤 했다.


“어얼쓰, 형 좀 예리한데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대답에 선배는,

“봐봐, 지금도. 그 추임새는 뭐냐? 대체 뭘 보길래 별 희한한 언행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거야?” 라며 다시 물었다.


분명히 플러리였다. 플러리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었다.

인파가 많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대충 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만노로스의 피’가 떠오른 것도,

가게에 막 들어왔을 때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저절로 ‘노자리’가 떠올라 슬쩍 미소지은 것도,

가라멜 마기아도가 품절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것 보세요, 또 나만 운이 없으시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전부 그 남자 때문인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커피 대신 무의식적으로 맥플러리를 주문한 것도 이상했다. 나는 애초에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지금같이 쌀쌀한 날씨에 찬 음식이 웬말인가.


‘플러리 중독.’ 나는 혹여 조현수라는 남자에게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지만, 에이 아니겠지, 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선배에게 차마 서른 두 살의 남자를 매일같이 보고 있노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러웠기에, “아녜요, 그런 거. 그냥 어디서 주워듣고 그랬나봐요,” 라며 대충 둘러대었다.

“그래? 뭐, 아님 말고. 그나저나 너는 요즘 맨날 집에만 있냐? 겨울인데 로맨틱하게 여자친구랑 바다도 좀 보러 가고 그래. 차도 있겠다.”


로맨틱… 겨울… 분명히 그랬다. 어딘가 기분전환 겸 놀러 가기에 굉장히 좋은 날씨였겄만, 최근 나는 집에 콱 틀어박혀 유투브와 트위치만 봤다. 

따져보니 여자친구는 일주일에 두어 번 볼까 말까 하는데, 플러리는 하루에 유튜브로 15분, 그리고 생방송으로 두어 시간씩 꾸준히 챙겨보고 있었다. 심지어 여자친구와는 이제 6개월정도 사귀었지만, 플러리는 11개월째 구독 중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플러리 얼굴 본 시간만큼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가서 우승을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영수증을 만지작거렸다.


‘플러리 중독.’ 나는 정말 조현수라는 남자에게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스쳐 지나갔지만, 설마 그렇겠어,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내저었다.


“형, 요즘에는 가만히 집에 있는게 애국이죠.”

“하긴 니 말도 맞다. 그래도 넌 너무 안 나가잖아. 바깥바람 좀 주기적으로 쇠어줘야 해. 세상 사람들은 다 어느정도 조심하며 놀러 다니는데…”


‘세상 사람들… 도오가튼 얼굴하고…’ 어느샌가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재생되는 노래.


어라, 이상하다. 이건 정말로 심상치 않다. 

나는 왜 듣는 단어, 보는 것들마다, ‘그 남자’를 연상하고 있는 것일까?

이래선 안 될 일이다.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정말, 플러리에게 ‘중독’이 되어버린 것일까…?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대충 얼버부리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찬 물에 연거푸 세수를 하며 나는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친구들이 허튼 소리를 하면 ‘무슨 헛소리야?’가 아닌 ‘조동아리’가 튀어나오는 것도,

마트에 가면 은근슬쩍 땅콩샌드를 집어드는 것도,

‘마지막 황제’라 함은 푸이나 순종을 가리킴이 분명할 터인데, 나는 자연스레 ‘하마코의 마지막 황제’를 떠올리는 것도,

거북이를 보면 ‘찬스’라는 단어뿐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연예인 제니와 수지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겨순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도…

언어 체계, 음식 취향, 역사 인식, 심지어는 현실의 사물을 보는 관점까지.


나는 이미 그 모든 일상적인 것들을

다… 잊었다.


나의 일상은 이미, 플러리라는 남자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마냥 아연실색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일상생활을 잘 하고 싶고, 또 열심히 하고 싶었기에.

따라서 나는 결단하였다—

내 머릿속을 온통 채운 그 남자를 이제는 놓아주겠노라고, 

트수의 삶을 청산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진하겠노라고,

오늘부로, 다시 선 시작점이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간 순간, 

선배는 나에게 물었다.


“너, 손은 잘 씻었지?”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울컥, 하고 폭발하였다.

사람이 손을 좀 안 씻으면 어떻냐고, 손을 씻지 않음으로서 어느정도 오염에 자신을 노출시켜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면역체계가 강화되는 것이라고, 형이 나의 철학에 대해 뭘 아시느느느냐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배에게 격양된 목소리로 단숨에 와라라라라이 쏟아내었다.


당황한 선배와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황급히 출구로 향했다.

“4412번 고객님, 주문하신 맥플러리 나왔습니다!”

이천오백 원짜리 맥플러리마저도 카운터에 온전히 남겨둔 채, 나는 쥐돌이마냥 도망치듯 가게 밖으로 나왔다.


잰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여자친구에게 꽃을 선물하자.

또 겨울바다 보러 가자고도 하자.

오랜만에 어머니를 위해 참치가 듬뿍 들어간 맛있는 참치김밥도 싸 드리자.

세 살 먹은 사촌동생에게 좋아하는 달콤한 사탕도 선물하자.


다시금, 나의 소중한 일상을 되찾아보자.


그리곤 다시 한 번 결심하였다.

내 인생에 이제 플러리라는 남자는 없노라고,

새롭게 시작하는 너, 그리고 나이노라고…


그 순간, 나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짧은 진동이 웅, 웅, 하고 두 번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어 알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추어 선 채로 얼어버렸다.


‘플러리 유튜브: <대충 플러리가 슈마메 개모타는 영상>.’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으며, 나는 이른 겨울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 것이고 사람의 몸은 참으로 솔직한 것이라서,

고작 몇 십 초 전만 해도 이 남자를 가슴에 묻었노라 결단한 나의 의지가 무색하게

엄지는 이미 알림을 누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나서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슈마메 개못하는 플러리는 못 참지…”


뒤바뀐 일상마저

마냥 싫지많은 않다, 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성의 그 남자,


'조 현 수…'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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