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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좋아하던 애한테 표현하는게 부끄러워 틱틱댔던 후회 썰 : 소설편(어마어마한 핵장문주의)

밤바닥
2018-11-23 13:57:55 1268 2 2

 멀리서 작은 여자 아이가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수현이다. 정갈하게 올려 묶은 긴 생머리가 오늘도 역시나 잘 어울린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당돌하고 시원한 목소리로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 정현아~. ”

 한쪽 팔에는 중국어책을 끼고 다른 한쪽 팔은 날 향해 흔든다. 너무 격한 움직임 때문에 정갈했던 머리가 다 헝클어질 것만 같았다. 그녀의 밝은 인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사를 받지 않고 다가오던 그녀의 옆을 빠르게 지나친다. 이유는 바로 시부랄 자존심 때문이었다. 후회할 것이다. 나는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내가 이런 몹쓸 쓰레기 짓을 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의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미 너무 흑화해버린 것이다. 아이 앰 다크 나이트.... 아이 앰 그루트....

 수업을 듣지 않고 나는 멍하니 칠판을 바라본다.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 수업이 끝나고 다시 우리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수현이를 만나겠지.. 옆쪽 계단을 이용해서 한 층 내려갔다가 돌아서 우리 교실로 올라가야겠다. 더 이상 수현이에게 상처를 줄 수.. ’

“ 야~ 김정현. ”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을 눈치 챈 나의 담임선생님이 콧소리 가득한 콧물범벅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이름은 김정현. 작년까지만 해도 이 학교 학생회에서 제일 매력적인 짱귀요미 간지폭풍 작살 체육부 부장이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수험생일 뿐..

 나의 무기력한 태도가 선생님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일까.. 평소에는 진도 나갈 시간도 없다며 하지도 않던 ‘ 나와서 칠판에 이 문제 풀어봐 ’ 형벌을 내리셨다. 가볍지 않은 삼각함수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스쿼트 100개씩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울끈불끈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저 정도 문제를 푸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당당히 칠판에 ‘ 0 ’ 이라는 무(無)를 상징하는 다차원적인 답을 써놓았다. 선생님의 표정은 분하다는 듯이 울그락불그락해비메탈락바위는영어로락으로 바뀌어있었고 학우들의 눈빛은 아침햇살처럼 반짝반짝궁둥짝쿵쿵짝짜리짜짜빛나고 있다. 야레야레.. 이제 이 정도의 일로 이런 동경의 눈빛을 받는 것도 지친다 이말이야.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학교 곳곳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나의 담임선생님이자 수학담당 교사인 이선마(별명 E 먼저 마스터) 선생님은 나 때문에 시간이 뺏겼다며 쉬는 시간까지 수업을 이어갔다.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진다.

‘ 시맛타.. 이렇게 되면 계단 돌아가기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데키나이요!! 게다가 우리가 지금 수업 받고 있는 코노 교실은 수현이의 교실이다!!! ’ 나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고뇌해라 김정현. 너는 그 어려운 삼각함수 문제도 암산으로 풀어버리는 놈이라구욧!!! 어서.. 하야꾸..!!!

 너무 깊은 생각에 빠진 나머지 나는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 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어느새에 수현이가 내 앞에 서있다. 그렇게나 작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이렇게 커보이는 것은 내가 책상에 앉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심리적 압박감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 수현이는 거인거인열매의 능력자였던 걸까?

“ 야. 내 자리야 비켜. ” , 수현이가 당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반 전체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 것이 문제가 아닌, 내가 수학 수업때 마다 수현이의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다는 것을 들켜버렸을까봐 그 때문이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행여나 귀가 빨개져서 나의 감정을 들킬까봐 애국가와 귀여운 우리 강아지 뽕이를 떠올리며 혈액순환 상태를 평소의 상태로 유지했다. 다행히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은 것 같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자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수현이 내게 다시금 말을 걸어온다.

“ 정현아, 오늘 야자(야간 자율학습. 학교 면학실에서 이루어지는 엄숙한 공부시간)하니? ”

 나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거짓말을 쳤다가 괜히 들키지 말자. 솔직히 이야기하자. 그리고 이번에는 수현이의 말을 무시하지말자 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대답을 꺼냈다.

“ 알아서 뭐하게. ” 나는 시부랄 미친 개 좆같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수현이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을 내뱉었다. 사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나는 상처 받았을 수현이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 길로 앞만 쳐다보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 날의 복도는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적막함과 죄책감을.

 그 후로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나곤 했다. 수현이는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나는 그녀의 성의를 무시한 채 또 상처를 건네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상처들을 다시 받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수현이가 받았을 서운함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겠지만 말이다.

 졸업 후에 딱 한번 길에서 그녀를 마주친 적이 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었고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번에는 무시하고 지나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내가 서 있던 인도를 따라서 멀리멀리 돌아갔다. 그 날도 나는 결국 수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짧은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


심심해서 한번 써보았습니다. 별로 매끄러운 글도 또 재밌는 글도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수현이(가명)가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써봅니다. 물론 수현이는 트수가 아니라 안보겠지만. 정현이(본인)도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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