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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많은 트수가 읽어줬으면 좋겠어

씩투
2018-12-11 01:37:10 2809 81 31

반가워 트수들!! 

내가 비교적 스펙타클하게 살아온 것 같더라구. 그 일대기를 가감 없이 디테일하고 내츄럴하게 써볼까 해.

글의 내용이 다소 무거울 수 있기 때문에 반말이라도 쓰면서 균형을 맞춰볼게


글이 엄청난 장문이기 때문에 읽기 귀찮은 트수들은 맨 아래의 요악을 보면 돼!!

(다만, 요약으로 흥미가 생겼으면 끝까지 읽어줬으면 좋겠어)


-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할게.

난 이제 곧 20살을 바라보고 있는 핏덩어리야.

진성 트수가 된지 일주일이나 지났다구! 0e41b07b01af54ed26a213d24fece6c2.png 

원래 내 얘기를 잘 안 하는데, 10대를 마치며 지나온 일을 글로 남기고 싶었어.

어쩌다 보니 트게더 망령이 되어가고 있어서 글을 공유하게 된 거야.

내 꿈은 영상 제작으로, 평생 알바하더라도 자유롭게 내 작품들 만들면서 살고 싶어.

현재는 기획 글을 쓰는 것을 중심으로 강의 찾아듣는 정도의 자기계발을 하고 있어.


나는 부유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불만 없이 자랐어.

특히 어머니가 나에게 1부터 10까지 다 해주셨던 분이었는데, 

부모님끼리 자주 싸우다가 결국 이혼하시게 됐거든. 너무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초3~5 쯤에 하셨던 것 같아.

어머니는 서울 쪽으로 가신 것으로 알고, 현재는 재혼하신 상태야.

나는 아버지랑 둘이 살게 되었고, 친누나는 있었지만 대학생이었고 자취하고 있었지.

어머니가 수발들다시피 해주셨으니 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셨어.

원래 그전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으니, 자연스럽게 컴퓨터 게임을 했지. 밤새.

때문에 자연스럽게 밤낮이 바뀌기도 하고 학교를 무단으로 빠지는 일도 종종 있었어.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더라.

마찬가지로 습관처럼 남아 종종 학교에 안나간 날이 있었지만, 그래도 줄곧 잘 다녔어.

중학교를 다니면서 인생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잘한 것은 운동을 배웠던 것이고, 반대로는 담배를 피운 것 정도가 있겠네.

정말 평화로운 학교생활이었던 것 같아. 

푸른 하늘에 잔디 듬성 깔린 운동장 걸으면서 친구랑 얘기 나눌 수 있는게 인생에서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잖아?

누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고, 이 즈음부터 집에 들어와 출퇴근했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오게 돼.

희한하게도 객관적으로 내가 머리는 좋은 편인데, 고등학생이 되어서인지 갑자기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어.

덕분에 실업계이긴 했지만 반에서 1등, 전교에서 손가락 꼽을 정도의 성적이 나오더라.

그런데 여기에서 회의감을 느꼈어. 내가 쏟는 노력의 방향이 잘못됐음을 느끼고 자퇴를 감행했지.

한두 번의 거절 끝에 아버지는 승낙해 주셨어. 이 때가 2016년도 8월 즈음이었어.


나는 그동안 서로 의지할 곳이 없으니 자연스레 아버지랑 친해지게 되었고,

인테리어, 설비하시던 아버지 일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일당 5~10만 원씩 받았어.

물론 그건 용돈 개념이었겠지. 돈 안주실 때도 있었어.

일이 끝나면 아버지랑 같이 헬스장도 다니곤 했었는데, 그런 생활이 오래가진 않더라.

아버지가 헬스장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시고 난 후에, 이틀 뒤에도 나아지지 않아 응급실로 호송됐어. 병명은 뇌졸중.

원래 아버지가 2005년도 즈음, 나 어릴 때에 뇌농양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전례가 있는데,

그거 때문에 혈관도 좁아지고, 후유증인 어지럼증 때문에 뇌졸중 전조증상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거지.

때문에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시다가 지금은 요양원에 계셔.


아버지랑 추억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옛날 시골 할머니 댁 갈 때 아빠 차에서 박상민의 해바라기 앨범 듣던 거,

아버지와 배 타고 근처 섬으로 놀러 간거, 같이 운동하던 거. 이젠 그럴 수 없는 일들이라 더 애틋하네.


난 그때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 시작하게 된 일은 고깃집(술집)이야.

첫 달 받은 월급이 180만 원 정도인데, 2016년 11월 24일, 그 돈으로 홀로서기를 하게 됐어.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네.

굳이 홀로서기를 한 이유는 누나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혼자금과 병원비를 위해 집을 팔게 됐거든.

친척들은 그냥 다 원수지간이라 연락처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몰라.


무튼 그래서 나는 원래 살던 곳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고시텔에서 지내게 됐어.

상황이 그러한 만큼 당연히 월세, 폰 값, 식비 및 기타 생활비를 내가 다 충당하고 있어.

나라에서 내 밑으로 지원이 나오는 돈은 아버지 병원비 명목이라 내 수중으로는 돈이 들어오지 않아.

그럼 누나가 안 도와주냐고? 누나는 사실 나와 배다른 남매야. 자기는 도와줄 의무가 없다고 말해.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강하게 키우려는 뜻도 있었을 거야.

당연히 다 큰 애 하나를 덜컥 책임지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거기에 출산 한지 벌써 10개월 정도 됐는데, 애기 귀엽더라.


일하고 있던 고깃집은 내 고시텔 바로 앞이고, 실장이 뭐 옛날에 깡패라고 자랑하는 놈이었어. 해봤자 동네 양아치였겠지.

사장도 마찬가지인데, 거기 오는 손님들도 대체로 그런 느낌이고 그냥 질이 좋지 않은 곳이었어. 

그래도 일은 버티고 할만했는데, 사람이 안 좋은 상황이 오면 계속해서 안 좋은 상황으로 간다더라. 악순환? 엎친 데 덮친 격?


내가 일을 쉬는 날이었는데, 실장이 대신 쉬겠다며 날 가게로 불렀어. 그래서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데,

중간에 실장이 술 먹고 가게로 온 거야. 그리고선 가게 마감 때까지 계속 진탕 계속 마시다가 주정을 부렸어.

그리고 결국엔 그 화가 나를 덮쳤네. 폭행을 당한 거야. 근데 막 엄청 맞지는 않았어.

사실 맞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정도로 한 대 쥐어 박혔어.

중요한 건 다음날 나를 죽이겠다며 협박을 하러 집에 들이닥치기까지 하고, 술 사 오라고 그랬어.

소름 돋는 건 아무리 그래도 원래 그런 이미지의 사람은 아니었단 거야.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심을 느끼고 경찰에 전화했어.

술 사 오라고 해서 밖에 나가있던 나는 출동한 경찰이랑 같이 내 집으로 올라갔고,

조금 얘기하다가 허무하게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잘 푸세요~ 하고 금새 돌아가버렸어. 

그래도 경찰이 왔다 가니까 그냥 조용히 돌아가더라.


나는 그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고, 그 뒤로 다행히도 실장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어.

시간이 지나서 전화는 한번 왔는데 무슨 염치냐며 욕 좀 하고 끊었어. 그 뒤론 전화도 안 오더라.

대한민국 경찰을 신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촉이 올 때마다 핸드폰 녹음기를 켜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


이렇게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니까 사람이 정신이 없더라. 방황하게 되었어.

일은 안 하고, 담배는 조금 늘었고, 사람이 해이해지더라. 사실 지금도 그래.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어디 잠시 가서 일하고 금방 관두고를 반복했어.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지.


그러다 마음먹고 제대로 일을 찾아 들어가게 돼. 주유소였어.

주요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안 좋은 일이 생겼어. 사실상 어리기 때문에 정직원 (200만 원 이상 버는 일)을 잘 써주지 않아서

받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했기에, 근무 환경도 대체로 헬이었지. 일단 일이 엄청 빡셌어.

뛰어다니며 주유하고, 세차하고 세차 물기 닦고. 그리고 특히 세차의 일 강도가 유별나게 심한 곳이었어.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인데, 월세 아낄 겸 주유소 2층에 숙소에 머무르라는 제안를 받았어.

일단 나에겐 이득이니 불편해도 참고 몇 달 버티기로 했지. 근데 발이 묶였다는 판단을 하니까 내 상황을 이용하는 거야.

은연중에 협박도 했으며, 남들보다 일을 훨씬 많이 시켰어. 일이 끝나고도 숙소에서도 잔심부름을 계속 시켰어.


내가 진짜 별의별 일을 다 해보고 노가다까지 뛰어봤는데, 이만큼 헬인 일이 없었어.

추가로 세차하다가 긁힘이 나면 전부 내 책임으로 돌렸어. 월급에서 까였는데, 결국 노동청 가서 다 받아냈어.

결국 그 일도 그렇게 오래 버티진 못했어. 뛰쳐나오다시피 나왔지. 내 의지가 약하다고 해도 좋아. 맞는 것 같아.

이 일로 깨달은 점은,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품 받았을 때, 그 호의를 다시 회수한다면 내가 겪을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야.


그 뒤로 고시텔에 다시 들어갔어. 원래 살던 방보다 더 작은 방이더라. 그게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방이야.

옆집엔 아주 작은 소음에도 벽을 치는 아조씨가 살고 있어. 덕분에 쿵쿵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겼지.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온 힘을 다했는데 다시 제자리걸음이니까 사람이 무기력해지더라. 그렇게 또 다시 방황.


일을 안 하는 중간에 교육비 명목으로 나라에서 돈이 나왔는데 원래 꿈이 미술이라서 미술학원 등록했었어.

근데 거기 목적이 99% 입시미술이라 대학 갈 생각도 없는데 눈치 주고, 그러다 다른 애들 가르치느라 나에게 소홀히 대하니까 

고등학생 때 느꼈던 회의감을 다시 느끼고 나왔어. 그러다 영상 제작이 눈에 띄었고, 그때부터 이 꿈을 갖게 된거야.

사실 난 예체능 모두에 관심이 있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해. 창의적인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편이야.

근데 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영상 계통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트위치도 간간히 방송 챙겨보게 된 것 같아.


이번엔 방황이 좀 길었어.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야. 아직 여기 3평 남짓한 고시텔에 살고 있고, 월세 하나에 허덕이고있어.

그래도 특별히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게 있다면 남한테 크게 손 벌리지 않고 잘 버텨냈다는 거야.

나는 할 수 있을거라 믿어. 이 시기를 발판 삼아 더 높이 뛰어보고 싶고, 나아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어.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힘들어 봤기에 잘 버텨낼 거라는, 힘내자는 무책임한 말도 못 하겠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말이야. 부정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말이어서 좋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딛고 일어서겠지. 내가 날 죽일 수 없단 걸 잘 알거든.


2018-12-10 어느 한 트수가.


-


우선 글을 끝까지 읽어준 모든 트수에게 고맙단 말을 전할게.

글을 읽어준 것만으로 나에게 엄청난 기쁨이 되었어.


물론 지금까지의 내 삶을 이 글 하나로 모두 정의되진 않겠지.

하지만 앞서 말했 듯,  그저 10대의 마지막을 맺는 이 시기에

내 지난 일들에 대한 글을 작품 형식으로 남기고 싶었어.


이 글이 트수들의 머릿속에 기억됐으면 좋겠어.

트게더 활동을 하면서 가끔 나에 관련된 글을 올리거나 시간이 나면 방송을 켤 것 같아.

홍보는 아니야. 난 노잼에다가 옆방 아조씨 때문에 방송도 제대로 못하니까 안 와도 돼.


다시한번 이 긴 글 읽어준 모든 트수에게 ( _ _ )


-

~요약~

1.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떨어져 지내게 됨.

2. 중딩 때 평화롭게 지냄.

3. 고등학교 1학년 하반기에 자퇴함.

4. 아버지랑 같이 일하다가 아버지가 병상에 누음.

5. 17살 때 홀로서기 시작.

6. 으메이징한 헬게이트 오픈.

7. 인생을 요약할 수 없으니 전문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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