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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리고 이야기 인디밴드의 솔직한 추억, 언니네이발관 -3-

유리는매일내일
2019-06-25 10:35:20 643 3 3

(2에서 이어)

그렇게 언니네이발관 역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 탄생합니다. 2009년(2008년 작품 심사)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최우수 모던록 부문 앨범, 노래를 모두 휩쓸어버린 앨범이 말이죠.

5.가장 보통의 존재

이석원은 이 앨범에 대해 "순서대로" 들을 것을 강조한다고 하기에 1~10까지 모두 순서대로 다루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는 컨셉앨범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즉, 1번곡부터 10번곡까지 순차적인 흐름을
갖는 한권의 책처럼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이 앨범은
1번곡부터 차례대로 들어야만 그 진가를
맛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어느 한곡만을 듣게될경우 그것은 
책을 중간부터 읽는 것과 같게 됩니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반드시 1번부터 순서대로
들어주세요. 그리고 일단 1번곡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게된다면 그다음부턴 저절로 순서대로 듣게 되실겁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가제:카니발)는 애초에 아주 짧은 테마에 불과했죠.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기존의 방식으로 불려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어요. 하지만 짧은 진행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반드시 써먹긴 해야겠고, 그래서 무작정 합주를 했습니다.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계속 돌렸죠. 돌리면서 드럼과 기타와 보컬이 번갈아가며 이번엔 니가 다르게, 이번엔 니가 다르게··· 그렇게 수도 없이 합주한 것을 전부 녹음했죠. 그런 후에 그걸 모조리 복기(다시 듣는 것)하면서 맘에 드는 부분을 일일이 들어낸 다음, 그런 조각이 수백 개가 모였을 때쯤 그걸 가지고 다시 곡이라는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이어 붙이는 작업을 했어요. 몇 달이 걸렸죠. 그리고 그것을 다시 맘에 들 때까지 계속 배열을 바꾸는 미친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복잡한 과정의 결과물이 결과적으로 가장 미니멀한 편성을 가지게 된 점, 그러면서도 가장 두터운 감정선이 담기게 된 점은 참 흥미롭죠.

이석원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곡 중 하나이고, 이 앨범의 존재 이유와 앨범명을 소개하는 시작의 테마가 될 것입니다

이 곡에서 "나"라는 존재와 "너"(또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서로 분리되었음에도 "나"는 잊지 못 하고 다시 또 그게 큰일이라며 모순 같은 슬픔을 반복합니다. 결국 떠나온 다른 행성의 특별한 존재가 아닌, 어디에도 너에게 있을 "가장 보통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진짜 외계인이라 해도, 그녀(또는 그)의 마음 속에 남을 수 없다면 특이한 사람으로도 남을 수 없을 것이므로..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언젠가 공연 중에 이석원씨가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는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고통스러워지길 바란다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전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테마 자체는 생각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헤맨 적이 없어서 이 말을 정서적으로 이해하진 못 합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워지길 바라는 무언가라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좋아하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어쩌면 테마이기보다 그저 우리들의 장난감 몇 호일지도 모릅니다. 이별 속에서 우리는 항상 그렇게 되뇌이곤 하죠.

아름다운 것

<가장 보통의 존재>의 타이틀곡입니다.

'아름다운 것'으로 말하면, 이 곡은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곡을 찝어 놓고 '우린 도저히 이거보다 좋은 곡은 못 만들 거야',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좌절하며 부러워하다가, 어느 날 '한번 해 보자, 이 곡을 능가하는걸 한번 써 보자' 해서 1년 동안 블록을 쌓듯이 다듬어간 곡이에요.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 곡의 출발 또한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디테일이었죠.

인터뷰에서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가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이 곡은 가해자의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헤어진 사람 입장에선 간절한 관계지만 스스로가 떠난 사람에겐 싱숭생숭한 기억에 지나지 않습니다. "타임 오버"의 지난 이야기일 뿐이죠. 그럼에도 헤어진 사람은 말을 걸고 그것을 도망치면 그만일 뿐인...

이 곡이 타이틀이라는 것에 대해선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앨범 제목과 같은 "가장 보통의 존재"가 아닌 이 노래가 타이틀인 것 말입니다.

작은 마음

우리는 지나간 일이 아무 것도 아니길 바라면서 마음 한켠으론 그 일을 자꾸만 떠올리죠. 그 아이러니는 저도 겪었습니다. 장장 6년의 시간이라는 괴기한 타입입니다만 왜인지 모르게 그 일의 기억에 대해 필사적이었습니다.

의외의 사실

이 앨범의 곡들 중에서 첫 번째로 접했던 곡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울부짖음 같은 말은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는 현실에 매달리며 흔들립니다. 분명 더 이상 내가 있던 곳에 있을 수 없음에도... 끝없이 우리는 우리의 장소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곡이랑 "나는"의 유기적 연결이 꽤 있다고 봅니다. 가사를 보면 이 "공간의 혼란"이라는 테마에 대해 두 곡이 함께 울부짖고 있으니까 말이죠.

100년 동안의 진심

제목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10월의 그리움이었다는 부분에서 순간 기형도의 <10월>이 생각나더군요. 분위기는 기형도의 시가 많이 어두운 분위기를 풍겨서 그것으로 연상된다기 보다는 마지막의 사라짐의 테마가 무언가 이 곡이랑 연결되어 보였습니다.

인생은 금물

앨범의 중추가 되는 곡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누군가의 별"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인생은 금물, 우리의 생애는 무언가 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테마는 아닐 것이고. 제가 "아재"가 아니라 그런지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테마는 아닙니다만...

우선 누군가의 별이라 하니 <후일담>을 다시 뒤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별"

이 때는 인생의 별이 "너"에게 있다고 했지만 이 곡에선 이제 "나"가 직접 누군가의 인생의 별이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10년의 시간을 거치며 테마가 변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별이 되어 빛나기 위해선 별을 바라볼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별 없는 행성에서 피할 수 없이 빛나는 혹성 하나로는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이 곡은 이석원의 완벽주의가 특히 드러나는 곡입니다. 믹싱 8번 하고도 버리려고 했었다 할 정도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고 제 방황의 시기를 함께 했던 곡입니다.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 야속하기만 한 이 세상 위를 우리는 누군가가 말할 때마다 걸어나가야 하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웃어주는지는 알 수도 없고 바뀐 것은 그 시간만큼 우리의 시간이 소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렇기에 우리의 시간이 항상 영원히 어떤 시간, 우리의 공간이 항상 영원히 어떤 공간이길 바랬지만 여전히 우리는 걸어나가 낯선 세계를 마주쳐야 하고 그때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도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또 그 공허한 말만이 내 귓가에서 계속 울리는... 그 순간, 그 시간.

산들산들

소설도 드디어 책장을 덮어야 하고 노래도 끝나야 하기에 이 곡으로 끝맺음합니다. 얼핏 들으면 은근 밝지만 사실 "애써 밝은 척 해보려"하는 모습이라는 소개가 있습니다.

그런 슬픔들 속에서도 태연한 척 하면서 그 감정들은 그대로,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곡들의 유기적 연계는 주목받았고 각종 상도 휩쓸며 대중적인 인기도 좋았습니다. 인생의 섬뜩한 지각에서 시작된 작업은 소설 같은 명반이 되었고 밴드가 해볼 수 있는 많은 것을 해냈죠.

이후 <서울의 달>, 그리고 언니네이발관 공식 홈페이지 주소명이기도 한 일명 "쉐꾜바레 무뵤바레",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를 앨범으로 발표할 것이란 계획을 밝힙니다.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의 시간도 어느새 15년이 넘어갑니다. 이제 작별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4에서 계속)

여담:이번엔 비하인드 스토리보다는 곡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부족한 이야기는 4에서 보충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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