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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라세 와우 소설 3

비트찍는마르
2019-06-23 06:38:50 209 0 0




"로돈 님, 일어나보세요! 로돈 님!"

"으음, 무슨 일입니까?"

"레아나 양이 사라졌어요...!"

"그럼 화장실이라도 갔겠... 뭐라구요?!"

비몽사몽해서 정신을 못 차리던 로돈의 잠이 단박에 깨버렸다.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모닥불은 꺼져있었고 레아나는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런..."

"대체 어디로 간 거죠? 우리가 얼마나 잠든거예요?"

"일단 침착하세요. 주변에 도검이 없는 걸 보면 가져갔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어떤 위험이 닥치건 그녀는 대항하고 있을겁니다. 혼자 오래 버티진 못할테니 그 전에 우리가 한시 바삐 찾아야 합니다. 서두르세요."

로돈은 급히 내려놓은 짐과 방패를 집어들었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까보다 주변의 안개가 훨씬 걷히긴 했지만 문제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는 것이다.

'큰일이군. 태양이 없으면 힘을 많이 받지 못하는데...'

지금 더운 밥 찬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레아나의 흔적을 찾다가 레자는 문득 귀에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로돈 씨, 지금 저 소리 들려요?"

"소리라뇨?"

"...아아아아아악..."

아주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비명소리였다. 로돈과 레자는 직감할 수 있었다.

"달려요! 당장!"

둘은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비명소리는 점점 선명해졌고 확실히 안개가 옅어져서 길이 훨씬 잘 보였다. 비명소리가 귀청을 찢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쓰러진 레아나가 저 멀리 보였다.

"레아나!"

로돈이 레아나를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미처 구울들을 신경 쓰지못했다. 로돈에게 달려드는 구울을 향해 레자가 급히 성스러운 일격을 날렸다.

"조심하세요. 지금 사방에 구울 천지예요!"

"아, 이런..."

로돈은 급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가운데에 레아나, 그리고 레아나의 곁에 있는 밴시, 그 주위를 가득히 메우고 있는 구울들... 솔직히 저들을 다 물리칠 수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이거 큰일이군요. 구울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건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예?"

"저런 구울들 정도야 처치하는게 얼마나 어렵다고... 지금 당장 레아나 양 걱정만 하시는게 좋을거예요."

로돈은 레자의 말이 순간 이해되지 않았다. 레자는 소매를 걷고 로돈의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비켜 계세요. 제가 그 들어가기 힘들다는 황천빛 사원의 비밀결사를 무슨 낙하산 타고 들어간 줄 아세요?"

레자는 하늘 위로 손을 뻗어 정신을 집중하였다. 곧바로 그녀의 온 몸에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곧 온 몸이 빛으로 덮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빛이 사방팔방으로 멀리 퍼져나가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었다.

"신성한 빛이여!"

레자의 외침과 함께 구울 중 상당수가 신성한 폭발에 휘말려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때까지 로돈은 별 활약을 보이지 않고 은빛십자군 병사들에게 돈만 걷어가던 레자를 그리 좋지 않게 보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신성력은 가히 감탄할 정도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감탄은 나중에 하세요. 이제부터가 중요하니까."

유일하게 밴시만이 반마법 보호막을 쳐서 자신을 막았다. 얼마나 큰 지 레아나까지 가리고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 밴시는 상당히 강력해요. 지금까지 어떤 언데드의 보호막도 제 빛을 막지 못했는데."

일종의 자기자랑처럼 들릴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당장 레아나가 너무 위험했다.

"사제님, 지금 당장 레아나의 상태를 볼 순 없습니까?"

레자는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로돈은 순간 무언가 직감한 듯 했지만, 정말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패를 다잡았다.

"일단 어떻게든 밴시부터 처치하죠!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가세요!"

로돈은 방패에 신성력을 담아서 던졌다. 태양빛이 없어서 평소의 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역부족이었지만 어떻게든 밴시를 도발할 수 있었고, 밴시는 그때부터 로돈을 집중적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다. 밴시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서 로돈은 방패에 신성력을 쏟아부어 자신을 보호하며 밴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사제님! 좀 있으면 밴시가 본격적으로 큰 공격을 준비할 겁니다. 그 틈을 노려주세요!"

"알겠어요!"

로돈의 말대로 밴시는 슬슬 강력한 기술을 준비하는 듯 했다. 로돈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으려 했지만, 순간 발에 뭔가 채이는 걸 느끼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어?"

그것은 뚜껑이 열린 채, 빛이 꺼진 수정이 담긴 상자. 레아나의 오르골이었다.

"이건...?"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으윽!"

"으악, 시끄러!"

로돈의 눈이 오르골에 가 있는 걸 본 밴시는 엄청난 비명을 질렀다. 순간 방심하던 로돈이 그대로 흐트러졌고 레자도 빛을 모으다가 급하게 귀를 틀어막았다. 둘 다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패로 막아도 소용 없었고 신의 권능으로 보호막을 칠 여유도 없었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비명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더 이상 비명소리가 아닌 구슬프게 우는 소리로 변해갔다. 로돈은 그제야 귀 막은 손을 내려놓고 밴시를 바라보았다.

밴시는 쓰러진 레아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무언가가 떠오른 로돈의 동공이 커지고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땐 순식간이었어요. 수 많은 언데드들이 제가 사는 마을을 휩쓸어서 집을 불태우고 이웃을 학살하면서도 저는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죠. 그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로돈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로돈은 방패를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오르골을 줍고는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 설마는 기어코 확신이 되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모든게 잘 될거야' 도망치던 내내 엄마가 저에게 해주신 말이었어요. 저에게 웃어보이셨지만 슬픔과 절망 가득한 두 눈 만큼은 감추지 못하셨죠.'
 

 "로돈 씨, 지금 뭐하시는거예요?! 정신 차려요!"

 

 아무것도 모르는 레자는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밴시가 로돈에게 정신 지배를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밴시를 향해 성스러운 일격을 날리려 했지만 로돈이 말 없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레자는 아까보다 수 십배는 심각해보이는 로돈의 표정을 보자 급히 빛을 거두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로돈은 절대로 뭔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로돈은 오르골을 들고 아주 천천히 밴시와 레아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밴시는 로돈의 기척이 느껴지자 바로 비명을 질렀다. 눈물을 흘리며, 슬픔 가득한 비명을. 더 이상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로돈은 개의치 않았다. 귀에서 피가 흐를 지경이었지만 결코 막으려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다가갔다.

'행여 놓칠까봐 항상 제 손을 꽉 붙잡아주셨던 엄마는 어느 순간 제 손을 놓고 제게 이걸 쥐어주셨어요. 그리고 웃는 얼굴로 꼭 다시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약속을...지켜주셨군요. 다시 만나자는 그 약속. 결코 이런 상황을 바란 건 아니였겠지만..."

로돈은 밴시의 앞에서 다시 오르골을 열었다. 오르골 안의 작은 수정이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고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레아나에게 들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담긴 물건은 이 오르골 뿐이라는 걸 제게 보여주었죠. 그녀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어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계속 보고 싶고 그리워한다는 걸. 하지만 레아나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받은 사랑만을 간직하고 있었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켜주었던 어머니가 너무 슬퍼할 것 같다고..."

"아아아...아아아아...!"

순간 밴시의 몸에서 먼지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로돈은 레자 쪽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로돈은 다시 밴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에 아주 조금의 빛을 담아서 밴시를 향해 뻗었다.

곧바로 빛은 반응했다. 밴시에게 먼지가 날리는게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어서 손 안의 빛은 짧게 폭발했고 로돈은 순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밴시가 없었다.

"으흐흑...으흐흐흑...!"

밴시가 있던 자리에는 엘프의 영혼이 레아나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정말 레아나와 완전히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있어 레자도 저 멀리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가 레아나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혼자 두고 떠나서... 우리 딸을 몰라봐서... 정말 미안해..."

영혼은 마치 편히 잠들어 있는 듯한 레아나의 얼굴에 손을 대고 싶었지만 실체가 없는 손은 얼굴을 통과해버렸다. 로돈은 영혼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손 밑의 레아나의 얼굴은...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켜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로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제야 사태를 어느정도 파악한 레자가 레아나에게 다가왔다. 레자는 그녀의 옆구리의 상처와 시체의 상태를 어느정도 확인한 다음,

"살릴 수 있어요."

"네??"

로돈과 영혼의 입이 거의 동시에 맞춰서 소리를 내었다.

"사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레아나 양의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치유를 하면 될 정도였는데, 저희가 도착했을땐 이미 시체가 되어있었죠. 그 때 구울들이 시체를 훼손할까봐 엄청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네요."

레자는 레아나를 바로 눕힌 뒤에 옆구리에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진액의 독을 빼내고 벌어진 상처를 빛으로 치유하니 언제 다쳤냐는 듯이 말끔해졌다.

"아까 말했잖아요. 제가 괜히 비밀결사가 아니라고. 게다가 썩기 시작한 정도만 아니면 별 문제는 없을거예요. 다만 힘이 조금 들 뿐이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혼은 레자의 앞에 엎드려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전에." 

 

 레자는 영혼을 향해 무릎을 꿇고 빛으로 감쌌다.

"혼자서 성불하는게 힘드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래도, 따님과 재회의 시간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영혼은 레자와 로돈의 얼굴을 한번씩 보다가 이어 레아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결정을 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괜찮... 습니다. 정말... 우리 딸 목소리 듣고 싶지만... 한번 듣기 시작하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전... 저는... 떠나야 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로돈은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럼 레아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라도 없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전해드리겠습니다."

"......"

영혼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레아나만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예쁘게 자라줘서 고맙고... 혼자 두고 떠난 걸 원망하지 않아서 고맙고... 그저 살아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항상 밥 잘 먹고 건강하게...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줘... 이 못난 엄마 몫까지..."

기어코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로돈은 마음 같아선 울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안아줄 실체가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레자도 마냥 좋은 심정은 아니었다. 그녀도 내심 모녀 간의 상봉을 바랬지만, 거절 의사를 표하기도 했고 영혼의 감정이 폭발하면 수습이 힘들다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성불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흐음... 그럼 시작할게요."

레자는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어 수많은 빛 알갱이가 영혼을 감싸 이어 하늘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로돈은 고개를 올려서 영혼이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영혼은 로돈과 레자에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고 로돈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지막에 보인 영혼의 표정은 슬픔을 완전히 걷지는 못했지만, 미련은 털어낸 듯 가볍게 웃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저 무수히 많은 새벽 별들 중 하나가 되었고, 로돈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짧게 기도를 올렸다.

"성스러운 빛 속에서 우리는 하나요... 언젠가 다시 만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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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로돈은 레아나에게 부활 주문을 걸고 있는 레자에게 물었다.

"왜 레아나는 영혼이 되지 않은거죠? 방금까진 죽은 상태지 않습니까?"

"다 죽어서 시체가 된다고 그게 무조건 영혼으로 나오지는 않아요. 영혼은 원한의 감정이 형체를 갖춘 것이라, 삶에 미련이 남아있거나 억울한 죽음 등을 겪게 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게 보통이죠. 품은 원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마법을 부릴수도 있고 다른 이의 몸에 빙의될 수도 있죠. 그래서 사제나 흑마법사, 주술사가 아닌 자들이 영혼을 잘못 다루면 미쳐버리기도 하고요. 방금 밴시 같은 경우에는, 레아나 양을 남겨둔 것에 대한 미련에다 리치 왕의 힘까지 영향을 받았으니... 이 지역을 안개로 덮어버린 것 정도는 어느정도 납득이 되네요."

이윽고 부활 주문이 끝나자 레자는 한 껏 기지개를 올렸다.

"으그극,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별 일 없으면 이따 아침이 되기 전에 깨어날거예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어느샌가 안개가 정말 말끔하게 사라졌다. 아직 동이 트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경치가 한 눈에 쫙 들어왔다. 로돈은 곤히 자고 있는 듯한 레아나를 자신의 등에 업고 레아나의 오르골과 다른 짐들을 모두 챙겼다.

"그럼 이만 돌아가요."

"알겠습니다."

길이 확 트이니 이번에는 레자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가면서 로돈은 이번에 일어난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레아나에게 비밀로 하는게 맞다고 느꼈다. 마침 목격자도 자신과 레자 뿐이라 유지만 잘 되면 좋겠지만, 문제는 레자가 고블린이라 비밀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막대한 금액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냥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그녀가 살아 숨쉬는 것 만으로도 지금 모든게 너무 감사했기에, 그는 레아나를 업은 상태에서 그대로 호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오그리마에서 받은 의뢰비에서 숙박비 등의 여행 경비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건 대충 50 골드 남짓이었다. 그래도 그는 당장 이거라도 먼저 드려야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레자를 불렀다.

"사제님, 이거 받으세요."

레자는 그대로 로돈이 건넨 돈뭉치를 받아들었다.

"지금 이것 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레아나가 깨어나면 아까 있었던 일은 함구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돌아가면 제가 좀 더 드릴테니..."

로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자는 돈뭉치를 그의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고 다시 등을 돌려 앞장 서 걸어갔다. 순간 로돈은 방금 자신이 본 상황을 의심했다.

"사제님...?"

"왜요? 아까 무슨 일 있었나요?"

레자는 그저 해맑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한편 은빛십자군 기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장님, 나와보세요! 안개가 걷혔습니다!"

"뭐? 정말이냐?"

맥켈라르는 귀를 의심했지만 이어서 두 눈으로 확인하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웃었다.

"하하하, 빛에게 감사를! 드디어 태양빛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구나! 아, 호드 용사님들은 지금 어디 계시지?"

"지금저기 오십니다!"

맥켈라르는 지금 본인이 맨발에 잠옷차림이라는 것도 잊은 채 헐레벌떡 로돈에게로 달려갔다.

"오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모두 그대들 덕분이오!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내 나중에라도 대영주 님을 뵌다면 당신들의 극찬을 아끼지 않도록 하겠소!"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그 등에 업히신... 블러드 엘프는 상태가 좋지 않은 듯 하오. 지금 좀 쉬어야 하지 않겠소?"

"괜찮습니다. 쉬는 건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하죠. 지금 다들 한시 바삐 돌아가고 싶어할텐데요?"

"아, 그렇지. 자, 다들 기상! 안개가 걷혔으니, 이제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빨리 짐 싸라! 빨리!"

맥켈라르의 우렁찬 함성에 그간 잠들어있던 병사들이 모두 깨어났다. 짐을 싸는 건 쉬웠고, 안개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줄드락을 빠져나가는 건 더욱 쉬웠다. 아침 해가 얼굴을 들기 전에 병사들은 일자 대형에 맞춰 저마다 설레는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레아나도 그 즈음에 일어났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으음... 여긴...?"

"깨어나셨습니까?"

레아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업혀 있는 거예요?"

"홀로 구울들의 습격을 받으셨더군요. 겨우 물리치고 그쪽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밴시... 밴시는 어떻게 됬어요?"

"밴시라면... 사제 님이 잘 처리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가엾은 영혼이라 잘 달래주었고 무사히 성불할 수 있었죠. 그 밴시가 안개의 근원이라, 성불하니 안개도 말끔히 걷혔구요."

"그래요...? 물어 볼 게 좀 있었는데... 아쉽네요."
 

 "물어 볼 것이라뇨?"

 

 레아나는 좀 실망했다는 듯이 축 늘어졌다.

"그냥... 그때 그 시끄럽던 비명소리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어요. 그냥요."

로돈은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놀라운 척 연기를 하는게 오히려 더 어색할 것 같았다. 다행히 레아나는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참 신기하죠. 전 엄마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나지, 엄마 목소리는 정말 조금도 기억나지 않거든요? 근데, 왜 그게 엄마 목소리 같이 들렸을까. 아니, 왜 엄마 목소리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미련이 남네요."

로돈이 반응하지 않자 레아나는 심통이 나서 그냥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식으로 이어갔다.

"에휴, 어차피 말도 못하고 비명 밖에 못 지르는 불쌍한 밴시에게 뭘 물어보겠어요? 그래도 무사히 성불했다니 다행..."

"레아나."

"네?"

"만약에, 어머니를 다시 뵙는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보고 싶었다던지..."

"다시 만나면요...?"

레아나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냐고 되물을 수 있었지만 웬일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로돈의 등을 짚고 허리를 쭉 펴면서 대답했다.

"읏차,'딸내미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 흐음, 이 정도? 아니지... 뭐가 좋을까..."

"후훗."

"뭐예요, 나름 진지하게 고민한건데! 그렇게 비웃을거면 대체 왜 물어본거예요?"

"그냥... 뭐랄까..."

로돈은 이제 아침이 되가면서 희미해지는 별들을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저기 어딘가에서 보고 계실 그 쪽 어머니에게 언젠가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억!"

레아나는 대뜸 로돈의 뿔을 잡아당기고 소리쳤다.

"그 말은 지금 내가 죽어서 우리 엄마랑 만났으면 좋겠다는거예요, 뭐예요!"

"아야야야!"

"나는 오래 살거라구요! 당신보다 오래 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천년 만년 영원히! 약속 제대로 못 지키고 떠나버린 우리 엄마 몫까지! 정말 열심히 행복하게 살거라고요. 알겠어요?!"

"아오, 이제 팔팔해진 것 같은데 좀 내려오십쇼! 힘 진짜 장난 아니네!"

"싫어요. 업혀갈건데요? 저 정도도 못 업고 징징거리면 앞으로 어떻게 다니시려구요? 빨리 앞으로 가요. 뒤쳐지겠어요!"

로돈과 레아나는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줄드락을 빠져나가고 회색 구릉지에서 은빛십자군들과 헤어질 때까지. 이어 용의 안식처로 들어서니 레자를 찾는 고룡 사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거, 대신 찾아서 지켜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군."

"아닙니다. 우연히 동행했을 뿐입니다."

"그럼 갑시다. 전령이여. 노즈도르무 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그러고보니 레자는 아까 줄드락에서부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며 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받을걸그랬나...'

"저...사제님?"

"예에에?"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군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뵙죠. 안쉬의 영광이 함께하길."

로돈은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건넸다. 레자는 직감했다. 돈을 달라고 하려면 지금뿐이라는 걸. 그녀의 본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막 뱉기 시작 할 즈음이었다.

"저도 매우 감사했습니다! 빛의 가호가 함께하길!"

레자는 굉장히 딱딱한 어투로 급하게 악수를 받고 그대로 등을 돌려 황급히 고룡 사제들과 함께 떠났다. 그 누구도 그녀가 마음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세상에는 저 분 같은 고블린도 계시는군요. 당신처럼 말입니다."

"흥, 웃기지 마요. 제가 무슨 별종도 아니고..."

"자 움직입시다. 드라노쉬아르 요새로 가려면 갈 길이 머니까요."

줄드락을 빠져나가는 거대한 행렬에서 남은 건 로돈과 레아나 단 둘 뿐이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레아나는 간만에 미소를 지었다.

"로돈."

"왜 그러시죠?"

"전 애초에 당신을 믿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만났던 자들처럼, 당신도 똑같은 줄 알았거든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이 절 험담하는 걸 그대로 들었어요. 우리가 어둠에 틈에서 만났을 때."

로돈은 순간 뜨끔했다. 하지만 레아나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때 당신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어요. 딱 제가 기대한 그대로였으니까. 대신 대영주 님을 의심했죠. 진정으로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성기사가 있고, 그 자라면 저의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원래 블러드 엘프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무슨 평화와 화합인지. 화도 안 나고 그냥 헛웃음만 나왔죠. 그렇게 속았다고 생각했던 와중에 저는 평소에도 다름 없던 일을 겪었고 그냥 실컷 욕하라는 식으로 있었는데, 당신이 저에게 와줬어요. 그렇게 싫어한다고 했으면 무시했을 법도 했는데."


 "아..."


 로돈은 레아나와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기껏 도와줬더니 쌀쌀맞게 굴었던.

 

 "그 때, 당장 고마웠던 것도 있었지만 당신의 진심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나왔던거예요. 그건 정말 죄송했어요."

 

 "아, 아닙니다. 다 지난 일인데요. 뭘."

 

 "그리고 비행장에서 만나도 될 법 했을텐데 제가 있는 곳을 찾아와서 끝까지 기다려준 것도 당신이 처음이었고, 가는 길에 먼저 말을 걸어준 것도 당신이 처음이었고, 그냥 좀 아플때 등 두드려줬던 것도 처음이었고, 저를 위해서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준 것도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저와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 까지 비슷한 것도 당신이 처음이었구요. 모종의 사건으로 가족을 잃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 까지."

 

 로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기가 해주었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고 이마저도 처음이라고?

 

 "정말, 그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던 얘기까지 다 털어놓게 만들 줄이야... 게다가 안 좋은 기억을 털어놓는게 후련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신겁니까?"

 

 "엊그제 말한 그대로예요. 전 항상 혼자였고, 거기에 익숙해졌죠. 그래서 배려받은 적도 없었고, 배려를 한 적도 없었던거죠. 이번에 당신을 통해서 배웠네요. 게다가... 이렇게 듬직하고 멋진 친구도 만들었구요. 안 그래요?"


 레아나는 로돈의 어깨갑주를 탕탕 치면서 말했다. 그 말에 로돈은 살짝 들떠서 대답했다.

 

 "후훗, 아닙니다. 그나저나... 곧 죽을 것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뭐라구요?"

그녀는 그대로 다시 로돈의 뿔을 잡아당겼다.
 

 "아까 제가 했던 말 그대로 다시 듣고 싶어요? 예!?"

 

 "아야야!"


-----

 

 어느새 태양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둘의 이야기는 어느새 그들을 드라노쉬아르 요새를 거쳐 오그리마로 도착하게 만들었다.

 

 "이제 작별이네요. 전 이대로 빛의 성소로 돌아갈 거예요. 대영주 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알겠습니다. 대영주 님께 안부 잘 전해주세요."

"그럼."

레아나는 살짝 목례와 함께 로돈에게서 등을 돌렸다. 로돈은 곧바로 등을 돌린 레아나를 불렀다.

"레아나?"

"네?"

"대지모신의 가호와, 안쉬의 영광이 함께하길."

그녀는 로돈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다 이어 흐뭇하게 웃으며 터프하게 그의 손을 턱 잡았다.

"Anar'alah belore, Al diel shala."

레아나는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그녀를 배웅하는 로돈도 덩달아 흐뭇하게 웃었다.


둘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나는 듯 했다. 혹시 모를까. 앞으로 둘은 다시 마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처럼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이해해주고 있으니까.


 

 


"로돈! 아직 거기 있어요?!"

레아나는 저 멀리 지나가는 언더시티행 비행선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방금 여기서 스튜 한 그릇 사먹었는데 엄청 맛 없어요! 그냥 다 때려치고 저 따라와서 밥 좀 해줘요! 로돈!"

레아나는 계속 소리치면서 멀어지고 있었다. 로돈의 대답은 듣지 못한 채. 물론 오그리마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지른다 한들 저 멀리 멀어져가는 비행선에 닿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로돈은 대답 대신 레아나를 향해 미소를 한번 지어주었다.

"하하, 못말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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