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님, 안녕하세요. 오늘 같은 꽃샘추위를 잘 견뎌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반드시 크고 작은 위기를 겪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첫 위기를 기억하시나요?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점심때 급하게 먹은 꼬마돈까스 탓인지, 5교시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종례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서둘러 집에 가려고 교문을 나섰을 때, 급기야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허수아비 마냥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미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갔다간 화장실 청소하는 녀석들에게 들켜서 평생 똥쟁이로 놀림당하며 살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종종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우리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계속 초인종을 눌러봐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우유 투입구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마침내 열쇠를 찾아냈습니다.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고,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옷을 벗어던지면서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오롯이 존재 그 자체로 있으면서, 저는 끝까지 버텨준 항문과 괄약근에게 그저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긴 여운을 뒤로 한 채 다시 돌아온 세상은 한층 더 밝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연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항문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내일도 꼭 쾌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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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후기] 인생의 첫 위기 (부제 - 항문의 소중함)
추위를 싫어한 펭귄님 11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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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보고싶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