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출제 되었던 독립운동가 남자현 선생님
(1872. 12. 7. ~ 1933. 8. 22.) 경상북도 영양 출생으로 남편이 1895년 을미의병 활동중 사망하여 홀로 아들을 키웠다
20여년이 흘러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하였으며 교회와 예배당을 세우고 여자 권업회 등 여자 교육회 10여 곳을 조직하여 계몽활동에 힘썼다.
선생은 조선 제 3대 총독으로 취임한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서울로 향하였으나 그보다 먼저 송학선 선생의 거사가 일어나면서(일본인민회 이사 사토를 총독 마코토로 오인해 식칼로 암살하였다) 경계가 강화되어 포기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이후 1928년 안창호, 서로군정서의 참모장을 맡았던 김동삼 등 독립운동가분들이 중국 경찰에게 체포되자 이들을 도왔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이듬해인 1932년, 그 실상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 연맹에서 리튼 조사단이 파견되자 남자현 선생은 자신의 피로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고 쓰고 조사단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그녀는 1933년 주만주국 일본 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걸인으로 변장하고 거사를 위한 무기운반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일본 경찰의 불심 검문에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투옥된 후 단식투쟁을 하며 일제와 끝까지 싸우다 보석으로 풀려나게 되었으나 결국 풀려나게 된 5일 후 세상을 떠나셨다.
댓글 0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