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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옹알 글제목)갈 데 없으면 여기로 오지 않을래요?

초강력코알라
2019-03-15 14:44:31 173 3 5

아, 들어오셨네요. 고마워요. 오늘은 손님뿐입니다. 오픈 한지 얼마 안 됐거든요.


한적하죠? 아직 입소문이 퍼지지 않아서… 그래도 안심하세요. 북적거릴 일도, 제가 바빠질 일도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오셨어요? 어딘가 게시판에 올라간 글인가요? 아니면 웹 플랫폼의 연재란을 서성이다가?


혹시 누군가 당신에게 이 글을 읽어주고 있는 건가요? 그 분의 목소리는 분명 사랑스러울 거예요.


당신이 어떤 문을 열고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당신이 외면받을 일은 없을 거니까요.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고요? 재밌는 질문이네요.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왔다니… 괜찮아요. 그런 호기심을 좋아합니다.


같이 살펴봐요. 조명이 좀 어둡죠? 제가 보라색을 좋아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답답한 색깔이라고 하더라고요. 투머치…한 감성이라나?


이 찬장 위를 보세요. 멋지지 않나요? 술병이 쭉 나열된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답니다. 유행 지난 벽지의 패턴 같기도 하고, LP판의 타악기 파트에 새겨진 홈 같기도 하거든요.


하여튼 모으느라 고생 좀 했어요. 술이란 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언제나 값비싼 법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당신에게 건네주는 이거, 이건 술잔이죠? 신경 써서 골랐어요. 예쁘지 않나요? 저 나름대로 디자인에 대한 고집이 있거든요.


모양이 맘에 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잔을 상상하세요.


우리의 만남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술은 제가 사는 거예요. 다음에도 오시길 바라면서


들려주고픈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정말 많아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편할 때 들러주세요.




-------------------------------

2화


아, 또 오셨네요. 이쪽에 앉으세요.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항상 두근거려요. 흔들리는 종소리의 발랄함은, 적막함을 몰아내고 바깥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지 알게 해주죠.


이곳을 둘러보는 손님의 시선, 첫 대화를 시작한 순간, 그리고 제가 드린 술을 입에 대시는 순간, 이 모두가 제 마음을 들뜨게 하거든요.


가끔 어떤 손님은 한 마디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가요.


좋은 말일 때도 있고, 간혹 아쉬움이 담겨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게 무엇이든 다시 오셨을 때 해드릴 말을 정성스레 준비합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니까요. 언제나 문이 열리며 느껴질 바람을 기다린답니다.


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하다고요?


그 이야기는 조금 마음 아프네요. 찬바람은 경직된 하루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데… 


자, 물 한 잔 드릴게요. 어서요. 냉장고를 열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을 들리든 해서 시원한 물 한 잔 들이켜세요. 달콤하거나 쌉싸름한 음료수도 좋아요. 답답한 목이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어때요? 가끔은 그 차가운 감각에 집중해보세요. 삼키기 직전에 목젖에 닿는 시원함을 좋아하거든요.


오늘은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아닐 수도 있을 거예요. 넘겨 짚은 거라면 미안하지만, 말상대가 필요하다는 건 마음이 지쳤다는 뜻이거든요.


바텐더는 술을 만드는 법보다 위로하는 법을 더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많은 손님이 고민을 털어놓길 힘들어합니다. 위로받고자 한 말이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하고는, 더는 다치고 싶지 않아 웃는 표정으로 그것을 가려버려요.


상처가 좀먹는다는 걸 잘 알지만, 치료를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은 비싸요. 간혹 술을 부어서 소독하곤 하지만, 그건 진통제예요. 치료해주진 못하죠.


대부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이렇더라고요. 너무 힘들어 털어놨더니, 정작 다른 사람들 귀에는 별것 아닌 걸로 들리는 것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 누구나 그런 일은 겪어. 그때는 다 그런 거야.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네가 노력이 부족한 거야.


그래서 내가 괜찮나요? 그런 생각이 견딜 힘을 주던가요?


내 아픔이 남보다 덜 한 거라면, 견뎌내는 게 미덕인가요?


애써 위로하는 몇 사람들의 눈동자 뒤편에서도 진심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들은 그저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뿐, 나를 위한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가끔은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죠.


모두가 웃는 표정을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심지어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는 게 타인의 마음에 짐을 더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겠죠.


그렇게 웃음 뒤편으로 밀어버린 한숨의 무게는 얼마나 되나요?


그 아픔을 이해해요. 내 치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른 척 해줬으면 싶으면서도, 동시에 먼저 알아주고 위로해줬으면 싶은 마음


사실 저로서도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은 없어요. 답을 몰라요. 손님의 삶이니까요.


제가 어떻게 손님의 문제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복잡한 삶을 살아오셨을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관과 신념일 텐데,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답은 당신이 알고 있습니다. 필요했던 건 답이 아니에요. 조금 지쳤을 뿐이고, 그저 쉴 곳을 찾아다녔던 거죠.


이곳이 그런 곳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받으세요. 어때요? 지난번보다 아름다운 잔이지 않나요? 손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니 당연히 그럴 거예요.


키스 오브 파이어라는 칵테일이에요.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냐고요?


상상해보세요. 시고 쓴 술이에요. 보드카가 들어가서 도수도 좀 높죠.


무엇보다, 컵 테두리를 라임즙으로 칠한 뒤에 설탕을 잔뜩 묻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에요. 


씁쓸한 술을 한 데 담은 달콤한 한 잔, 당신을 닮지 않았나요?


이걸로 아쉽다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술을 조금 더 마시고 잠드세요.


술은 진통제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냐고요?


부디 매번 맞서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도망치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아픔을 외면해서 오늘 밤을 푹 주무실 수 있다면, 내일은 조금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기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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