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창작마당 [익숙함에 대하여]

위카이프
2018-04-24 23:30:53 1232 7 2

심심삼아 켜둔 향초의 연주황색 불꽃이 하얀 벽에 비쳐 음울하게 일렁였다. 이미 새벽 3시였다. 방송은 꺼졌고, 여까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술을 잔에 부었다. 얼음은 없었다.

   "솔직히, 매일 와주시는거 정말 고마워요."

   방송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여까는 투명한 금빛 액체를 입에 머금는다. 차가운 불이 입에 잠시 머물렀다가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강렬한 향과 맛에, 온 몸의 털이 잠시 곤두섰다가 가라앉는다. 오직 귀,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천장을 향에 날카롭게 곤두세워진 귀 만이 방금의 짜릿한 감각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튜디오가 넓은건 좋은데, 혼자 있기엔 좀… 지나치게 넓거든요."

   "에이, 저도 오고싶어서 오는 건데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펀즈는 머쓱하게 웃고는, 여까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여까의 꼬리가, 살짝, 펀즈의 코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녁에 샤워를 하며 쓴 샴푸의 향이, 아직 배어있다. 일본에서 쓰던 브랜드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아주 잠시 여까가 조금 낮설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닌 행동으로도 사람은 고마움을 느껴요."

   여까는 잔에 남아있는 술을 마저 비우고, 재차 잔을 채웠다. 어둡고 조용한 방에, 액체가 따라지는 소리만이 쪼르륵, 하고 울린다.

   "한번 마셔볼래요?"

   여까가 내민 술잔을, 펀즈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하이볼도 아닌 그냥 위스키. 난생 처음 맡아보는 강렬한 향에, 펀즈는 자신도 모르게 기침을 하며 컵을 밀어냈다. 나무, 초콜릿, 알코올. 뭐라고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는 강렬한 향이었다. 수염을 파르르 떨며, 살짝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펀즈는 웃으며 잔을 돌려주었다.

   "저한테는 너무 강한데요, 이거."

   "익숙해지면 괜찮아 질거예요. 그 전까지가 조금 괴로울지는 몰라도."

   여까는 재차 술을 들이킨다.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는 여까를, 펀즈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이 모르던 모습을 보이는 여까는 조금 낮설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아니, 내가 저 사람에게 '낮선 모습'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하고, 펀즈는 조금 두려워졌다. 그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던것일까? 실은, 나는 저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저는 힘들거 같아요."

   "음… 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여까의 목소리에, 펀즈는 다시 한번 소름이 돋는 것을 경험했다. 호랑의 앞의 토끼, 아니, 고양이 앞의 쥐가 어울릴까? 여까의 꼬리가 서서히 펀즈의 목을 휘감고, 펀즈는 이젠 자신에게 눈조차 돌리지 않는 여까가 야속해지기 시작했다.그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주지 않는 것에 대한 감정이었다.

   "정 그렇게 힘들면, 내가 도와줄까요?"

   "네?"

   펀즈는 마치 꿈이라도 꾸듯이, 여까가 자신의 입에 다시 한번 술을 흘려넣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나 여까의 목울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여까는 고개를 돌려 펀즈를 바라보았다.

   꼬리가 조여온다.

   여까가 다가온다.

   입술이 겹쳐지고, 미지근한 위스키가 여까의 혀와 함께 들어온다. 거친 고양이의 혀가, 술로 적셔진 입 안을 휘젓는다. 지나치게 강렬한 첫 키스의 맛에, 펀즈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고 말았다.

   비록 펀즈는 얼어붙어 있었지만, 여까의 혀는 집요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펀즈가 술을 모두 삼켰다는 것을 확인한 여까는, 천천히 자신의 혀를 한번 핥으며 얼굴을 떼어냈다.

   "남매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건, 서로가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아, 익숙함이란건 그런거예요. 사랑의 적이죠."

   여까는 펀즈의 목에서 꼬리를 풀고, 불편하게 돌아가 있던 목을 제대로 돌렸다. 그리고는, 펀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미끄러지듯 그 무릎 위로 옮겨 탔다.

   "그래서, 익숙함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샴푸도 바꿨고, 옷도 평소랑 좀 다르게 입었는데. 좀 어땠어요?"

   펀즈는 자신의 앞꼬리에 서서히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친구끼리는 이래선 안되는데. 친구인데. 하지만 여까는 이런 펀즈의 감정은 모른 체 하고, 야속하게도 펀즈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도움이 됐어요?" 


   여까의 꼬리가 펀즈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머리, 얼굴, 입술을 한차례 훔치고 나서,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이 둘러져 있던 목을 다시 한 번 간지럽히고, 와이셔츠의 앞섶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여까의 꼬리놀림은, 고양이가 다 그렇듯이 섬세하게 움직여 단추를 하나씩 풀어낸다.

   첫 번째 단추. 여까의 꼬리가 펀즈의 심장 위를 간지럽힌다.

   두 번째 단추. 여까가 펀즈의 입술을 핥는다. 까칠한 고양이의 혀는 아까 전과는 달리 상냥하게 입술을 벌리고, 펀즈의 이를 따라 입 안을 여행한다. 모든 이 하나 하나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나서야, 혀는 떨어져 나온다. 남겨진 타액의 실이, 둘이 맞붙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세 번째 단추. 여까가 펀즈에게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다. 가슴이 맞닿고, 서로의 호흡을 서로의 살갗으로 느낀다. 자신의 입 앞쪽까지 튀어나온 꼬리에, 여까는 장난스럽게 입 맞추곤 다시 거리를 벌린다.

   마지막 단추. 펀즈의 와이셔츠가 벗겨지고, 여까는 살짝 엉덩이를 뒤로 밀어 무릎의 끝에 걸친다. 여까가 허리를 숙이는 순간, 펀즈는 여까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챈다.

   “우리… 이러면… 안 되는데…”

   “강아지처럼 굴지 마요.”

   펀즈의 허리띠를 풀어내는 데에 열중하던 여까는, 고개를 들어 펀즈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그렇게 말하려면, 우선 이 흉측한 녀석을 가라앉히고 이야기해야 할걸요? 가능하다면요.”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는 사실은, 둘 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여까가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계속 하게 두는 것이었다.

   “그거 알아요? 수코양이의 앞꼬리에는 가시가 달려있어요. 보통은 잘 모르는 사실이죠. 볼 일이 드무니까. 음… 그런데 수캐의 앞꼬리에는 가시 대신 매듭이 달려있다고 하더라구요. 난 그게 뭔지 항상 궁금했어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띠가 풀린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둘의 몸이 맞닿는다. 서로 다른 감촉의 두 털이, 한데 엉켜든다.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져서, 이전보다 서로에게 더욱 충실하다는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엉덩이를 타고 지나 허리, 그리고 목까지, 서로 다른 부위의 털의 감촉은 이렇게나 다르다.

   ”오늘 밤엔, 대출 갚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 줄게요.“


  두 분이 같이 나오는 글이라 여기에도 올림

후원댓글 2
댓글 2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이 글에 댓글을 달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해 보세요.
▼아랫글 ㅎㅈ에 삽입전 xenonnamo
잡담창작마당공지비밀글용게임애니아카이브
3
잡담
빅스비 팁 [1]
xenonnamo
04-25
4
잡담
퍼-리한 초콜릿 [2]
이하여백
04-25
»
창작마당
[익숙함에 대하여] [2]
위카이프
04-24
5
잡담
ㅎㅈ에 삽입전 [4]
xenonnamo
04-24
0
잡담
라디오 사연 [2]
리델0
04-24
2
잡담
역포인트가 생겻내요 [9]
이하여백
04-24
11
04-24
8
잡담
고생하는 역가님 [2]
croiyan
04-24
15
잡담
1080ti 장착 완료 [11]
Broadcaster 여까
04-24
0
04-24
10
창작마당
또또 오늘의 역펀부루 [1]
nesswit
04-24
8
04-24
0
잡담
2인겜 [1]
ㅇㅇ
04-23
1
잡담
역가님 2인멀티겜 [1]
ㅇㅇ
04-23
0
잡담
궁궁한게있슴 [10]
렌씨
04-23
1
잡담
비밀글입니다. [4]
이하여백
04-23
0
잡담
역가형님 배송했음 [2]
김글링
04-23
1
04-23
5
잡담
리듬게임도 좋지만 [4]
Moderator 맛물
04-23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