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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8월 3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2019-08-03 18:51:06 358 1 0

1885년 8월 3일,

"길을 걷던 연대생이 갑자기 옆을 지나던 고대생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누구의 잘못일까?"


오늘은 배재대학교를 조금 해보려 합니다. 배재대학교는 워낙 유명한 대학교죠.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드립으로 유명한 학교인데, 출처가 DC인사이드라네요.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제가 DC를 안 해서...

아무튼 오늘은 이 학교의 역사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올해도 개교 130년이 넘었네요.


배재대학교의 전신은 배재학당으로 헨리 아펜젤러에 의해 서울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입니다.

뭐 건물을 세우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아는 사람한테 집을 빌려서 방을 교실로 썼던 거죠. 1년 후, 고종이 교명을 하사합니다.

그러고보면 배재대학교란 이름 자체는 왕이 내린 이름이라고 치면 꽤..영광스러운 이름이긴 하네요.


교육 기관답게 오늘 날의 학교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교훈도 있고, 정규 교과목도 편성되어 있는 등 우리가 현재 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입니다. 뭐..사실 '교육'이란 것의 성질 자체는 변화를 크게 요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모습을 갖췄단 거니..

예나 지금이나 국영수를 해야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단 얘기죠. 기독교 학교답게 신학도 배우고 했었다네요.


그렇다면 정말 배재학당과 배재대학교는 정말 같은 곳이 맞나 싶은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배재학당의 대학부는 1895년에 신설되었고, 당시 영문학 국한문학 신학이 있었는데 배재학교가 이 대학부를 계승했다는 것이죠.

물론 배재대학교에서는 배재학당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대로 인정해줘도 문제될 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배재학당 그 자체를 강조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도 들덥니다. 배재학당 속의 대학부였다는 건

대학교육기관이라기 보다, 배재학당 자체의 심화 과정 정도? 수학책이 있으면 수학 익힘책이 있는 그정도였나보죠.

그래서 그들은 대학부보다는 배재학당 자체를 강조한 게 그들에게도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까..배재학당 대학부를 졸업했다고 해서 학사 학위가 나온건 아니었다는 얘기죠. 단지, 대학과 같은 학기 과정이었을뿐..

당시,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 전까지 학사 학위를 수여한 곳은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이 유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는 중등 교육기관과 진짜 대학교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는 얘기라는 거죠.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배재학당 출신들은 배재학당 대학부를 졸업하고 일본과 미국 등의 해외 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대한민국의 1대 대통령 이승만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학교를 입학했으니..훠훠훠..


그런데, 일제강점기까지 분명히 서울에 세워진 배재학당이 지금은 왜 대전에 있을까요?


이유는 그리 멀리 갈 것도 아니었는데, 광복 이후 배재학당 동문들이 서울에 배재대학교를 성북구 장위동에 세우려고 했지만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면서 미뤄지게 되고 1950년대 후반 기공식도 했건만 이승만의 하야로 그렇게 또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후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서울에 대학교를 세울 수 없게 되고 그저~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서울은 그렇게 무산되고..왜 하필 대전이 되었을까에 대한 얘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배재대학교의 또 다른 전신인

대전초급보육대학(유아교육학전문대 그런 건가 봅니다.)이 1956년에 설립이 되는데, 1970년대에 대전여자초급대학으로 진화를

하게 되어 어느 정도 대학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법인의 경영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지만 배재학당의 [융합]하여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야 1992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현재와 같은 배재대학교가 되었답니다.


여담으로 2018년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힐 뻔 했으나 어찌 잘 살아남았다는 얘기도 들리더라고요.


그래도 대한민국의 최초의 근대 중등 교육 기관이란 걸 생각하면, 대단하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당시 어려웠던 시기 교육으로 하여 무지했던 민족을 깨우려고 힘쓰다 가신 아펜젤러 목사에게 고마움을 가집니다.


오늘 그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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