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한국의 역사 7월 23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2019-07-23 17:57:53 867 15 0

1894년 7월 23일

"나는 왜놈들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치 못했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근현대사에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 갑오개혁이 있습니다.

갑오개혁은 1894년 7월 27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과 그 사건이 있죠.

한국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김홍집'이라는 이름을 한 번은, 그리고 몇번이라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분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많이 갈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중립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1876년 2월 26일, 운요호 사건을 배경으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은 일본에 의하여 개항을 하게 됩니다.

이후 1880년 김홍집을 포함한 4명의 수신사가 일본 도쿄로 출국하여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을 두루 살피게 되는데,

사견을 첨가한다면, 친일파를 조직하기 위한 일본의 유혹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해보면 조선에 없는 자동차와 철도

그리고 공중위생 등 이러한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보고 안 놀라는 게 비정상이겠죠. 그리고 발달된 문명이 가져다줄

눈부신 조국의 발전을 고려한다면 누구든 이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청 황준헌의 조선책략이란 도서를 본 후 개화를 통한 근대화를 해야한다고 적극 주장한 인물이었습니다.


1894년은 나라 안팎으로 문제가 참 많은 시기였죠. 1~3차 동학 농민운동, 김옥균의 암살, 청일전쟁 등 알찬 주제가 많네요.

김홍집 내각 수립이 위의 주제들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죠. 김홍집 내각의 수립 배경은 간단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의 침투 가속화 그리고 민비의 청나라 끌어들이기 마지막으로 일본의 경복궁 점령이

있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김홍집 내각이 수립하게 됩니다. 1880년에 일본에 다녀와 밑작업이 끝난 김홍집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를 놓기 편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희생양이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것이 제1차 김홍집 내각이었습니다. 일본의 목소리를 쉽게 전달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난 후에, 일본은 청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죠. 1894년 8월 1일, 청일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다시 돌어와서 김홍집 내각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이루어냅니다. 제1차 김홍집 내각에서 군국기무처가 설치되고 

해체되기 까지 12월, 약 6개월동안 200가지가 넘는 개혁을 단행하게 되죠. 그리고 이것은 '갑오개혁'이라 부릅니다.

내각 1대 총리였던 김홍집은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며, 발전된 나라를 위한 모습을 집권하면서 여과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에 횡행하던 있던 악습과 과거제도 폐지와 은본위제 실시('은행'이란 단어의 유례입니다.), 도량의 표준화 실시와

조세를 돈으로 납부하게 하는 제도 등 실질적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행하고 있는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받아들였던 선진 서구 문화를 조선에 도입하여 일본과 같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을 보탠다면, 억측일 수 있으나..일본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일본이 지배하기 쉬운 모습을 갖추게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들기도 합니다. 이후 3차까지 진행 되었던 갑오개혁은 아관파천 발생과 동시에 종료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의 조선의 모습은 참 할 말도 많고, 들여다 볼 것도 참 많은 시기입니다. 

세도정치로 힘을 잃어버린 왕실, 무능한 관료와 무자비한 외세의 침탈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변한 게 없었죠.

근현대사를 들여다 볼 때마다 참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왜 힘없는 민초들만 고통받아야 했던 것일까?


국가의 존재와 발전을 위해 국민은 필요 조건이지만, 국가의 존망 자체에 있어서 국민은 필수 조건입니다.

국가가 있어서 국민이 있는게 아니라, 개인이 모여서 국가를 만든 것이고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그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후원댓글 0
댓글 0개  
이전 댓글 더 보기
TWIP 잔액: 확인중
▲윗글 7월 24일, 그때 오늘 옥을태
▼아랫글 7월 20일, 그때 오늘 옥을태
한국의 역사외국의 역사역사라면 역사알림
22
한국의 역사
낼 한능검 보시는 분들 홧팅 [3]
한능검44회
08-09
21
외국의 역사
7월 25일, 그때 오늘 [2]
Global Moderator 옥을태
07-25
19
한국의 역사
7월 24일, 그때 오늘 [6]
Global Moderator 옥을태
07-24
»
한국의 역사
7월 23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07-23
25
한국의 역사
7월 20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07-20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