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마저 연료가 되어 산산이 흩날리는 그의 계절 속으로'
그리고
'사라짐의 놀이터'
이 두 글자가 좌하와 우상으로 놓이며 시집이 끝났음을 보면서 그 글자들의 배열에 탄식한다.
하지만 그 탄식이 이내 내가 적어놓았던 글자들 옆에 내리앉으면서 글자들 하나하나가 비명의 끝이 되는 것을 듣는다.
겨우내 적어낸 5페이지 남짓의 글자 덩어리들은 이제 모두 아우성이 된다. 아우성은 내 입 속을 덮어, 내 숨구멍을 덮어, 내 폐를 덮어, 내 심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심장은 우선 스스로를 최대한 수축해 압박 속에서도 작용하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심장의 수축의 다음 단계인 이완으로 나아가기가 버거울 것이다. 그렇기에 이완을 폐에게 임시로 맡길 것이다. 하지만 폐는 이미 완전히 아우성에 뒤덮여 자신도 아우성을 내기 위해 소모적인 수축을 하고 있어, 그 수축이 숨구멍으로, 그리고 입으로, 나와 그 소리가 구체적인 형태를 가질 것이다.
안이 끝없이 짓눌리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시집은 찢길 것이다. 나의 현실적인 계절 속에 너의 계절은 자리잡지 않았다. 나의 현실적인 밤에 너의 땅거미는 내리앉지 않았다. 내 다섯 페이지에서 이야기한 모든 장난감과 그것을 가지고 노는 소년의 계절인 여름에 있는 모든 땅거미를 지웠다. 낮에만 놀았고, 낮에만 살았다.
제목마저 허락받지 못한 시집은
'고개를 흔들 때, 완전히 흔들리는 그이의 언덕 아래로'
그 첫 문장을 울리며 다만 나를 무릎꿇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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