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낮 동안 바쁘게 지냈어.
낙엽도 쓸고, 빵도 먹고
이웃집의 남자아이와 이야기도 했지.
그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갔어?"
난 어느 평원에 당신을 보냈단다. 곧 나도 잰걸음으로 갈 날이 올 거라고 하고 말이지.
그런데 달력을 들여다보니 내일 할 일을 깜빡하고 안 적어뒀어.
새해 첫날부터 모레도, 글피도, 12월 30일까지도 모두 적어두었는데.
오늘부로 12월 31일로부터 더 달아날 방법이 안 떠올라.
달력을 덮어두고 옷을 후줄근하게 갈아입으면서
움직이지 않던 옷장의 나머지 절반이 문득 향기로워서
시계 방향으로 옷장의 순서를 바꾸니 맨 앞은 파란색 옷이야, 정말 예뻤지 그때는.
침대에 누우며 창문에 매달린 달빛을 보면서
거울을 놔둔 탓에 달빛이 꺾여 당신의 침대를 지나쳐
나를 비추는 게 동아줄 같아.
하루 종일 내가 한 유일한 두 마디가 울려서 그 끝에서 계속 울리며 내가 홀려 매달리다 떨어지기를 원해.
빛 속에서 흔들리다 보니 왠지 내가 눕지 않은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바깥에서 올빼미가 울음을 내빼는 게 왠지 내 깊은 마음 어딘가의 숲을 아리게 해.
이제 우산을 들고 가야 할 시간이 됐나 봐.
당신에게 씌울 우산을 머리맡에 놓고 있지만, 기다려 줘. 집안 창고에 있는 단풍나무 씨도 가져가야 하니까.
-<자장가>라는 제목의 보지 못할 영화의 줄거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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