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바닷가의 조개껍질이 밟혀서야
먼 옛날 살아 숨쉬던
작은 몸의 허물따위
훌훌 벗어던지고
모래로 돌아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 했던 건
커피에 넣을 설탕이 떨어져서야
달콤함이란 없는
우울한 이 찻잔을
모두 들이켜야만
어른이 되는 걸까
절인 올리브, 밭의 허수아비
썩은 통나무와 녹슬은 우편함
모래로 쌓아올린 성의
꼭대기에 서서
어디로도 내딛을 수 없는
발걸음을
그저 내일 걱정이 내 할 일이란 건
내가 직접 발판을
빚어야 한다는 것
알고 있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발밑이 까마득히 보이지 않아서야
지쳐버린 뒤로
주저앉은 이유는
앞으로 짊어질 것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산의 연못이 말라붙었기 때문이야
여기저기 새어나가
텅 비워진 마음처럼
채워 넣으려 할수록
더 공허하더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과거의 거울을 바라보게 되어서야
가슴을 움켜쥐고
이불속에 묻힌
그 등을 쓰담으며
꼭 끌어안았어
은은한 향초의 연기
TV에서 울려퍼지는 웃음소리
따뜻한 물을 끓이는 주전자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만의 내 사랑
어릴 시절 예쁜 추억들이 담긴
책장 구석의 먼지 쌓인 일기장
이 사소함들이 다 소중할 텐데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또다른 결말이 내 앞으로
다가서서야
끝을 맺기 싫다고
울고 있는 이유는
이별의 흉터들을
이미 품고 있어서야
내가 살아가려 생각했던 건
내 고통을 누군가 포근히
보듬어서야
깊은 죽음의 장막을
들여다보는 버릇은
너무나 늦은 때
삶을 깨달아서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빛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던 날
그대같은 사람이
태어난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었어
그대같은 사람이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