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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게시판 자작소설) 미래를 알려주는 흉기

휘필
2020-03-01 01:56:14 107 0 2

왕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대마법사 시가루 즈기리라가 귀족 연쇄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그 소문의 진실성은 둘째치고 안타까워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자극적인 소문을 즐기는 대중들이 흥밋거리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이 아닌, (물론 걔중 일부는 그럴 수도 있지만) 


시가루 즈기리라의 위대한 업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루 즈기리라의 명성을 드높인 위대한 업적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마법적인 도구들이었다.

 

그는 말없이 움직이는 마차를 만들어내어 수많은 말 사육사들의 두 눈에 피눈물을 뽑아내었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사람을 옮겨다 주는 커다란 상자를 만들어내어 한참 건물의 계단을 건설하던 건설업자들의 위장을 뒤집어 버리는 위업도 달성해내었다.


이래저래 사람들의 피눈물과 복장을 뒤집어 버리는 위업을 달성해 낸 그였지만 그 모든 것을 고려해도 그가 만들어내는 도구들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시가루 즈기리라는 많은 이들에게 호의를 받아왔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건 그가 연쇄살인 혐의를 받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직도 시위 중인가?"


간수장인 사미란 아수어스는 창밖으로 들리는 수많은 고함에 질린 듯이 창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추측할 필요도 없이 그 시위는 시가루 즈기리라의 무혐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항의 소리였다.


시가루를 석방하라!


시가루가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석방하라!


어떠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석방하라!


그는 악독한 귀족으로부터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대의적인 살인을 했을 뿐이다!


이러쿵저러쿵 요래조래 구시렁구시렁하니 이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석방하라!


수많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결국엔 추측과 감성을 조금 자극하는 말로 양념을 한 미사여구였고 그 끝은 항상 석방하라! 였다.


'멍청한 놈들.'


사미란은 그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냉소하였다. 근거도 자료도 없이 떼만 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는 돼지들. 사미란은 그들이 싫었다. 



차라리 시가루가 살인을 했을 리가 없다는 구체적인 증거와 증명을 들고 왔다면 사미란은 그들을 손뼉을 치며 환영했을 것이다. 그 주장에 대한 정당한 증거가 있으니까.


그러나 밖에 널린 돼지들은 그런 증거도 없이 그저 자신의 감성과 믿음과 근거 없는 추론만으로 살인 혐의자를 풀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참으로 멋지지 않소. 당신의 추종자들이 저리도 많으니 말이오."


사미란은 창문에 눈을 떼어 곧 반대편으로 돌려 창살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낡은 침대가 있었고 그 침대에는 새하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노인이 앉아 있었다. 시가루 즈기리라는 그런 사미란의 말에 수염을 매만지며 말하였다.


"그러게 말이오. 이 추운 겨울날. 할 일 없이 시간을 축내고 있는 저들을 보면 신이 참으로 안타까워 할것 같구먼."


확실한 건 저 불쌍한 떼쟁이들은 그들이 옹호하는 마법사한테도 호감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미란은 이 유쾌한 공통점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나중에 결정하자고 결론을 내리며 그에게 물었다.


"내일이면 당신은 왕국의 위대한 벗이자 유일무이한 일인자인 청룡에게 심판을 받게 될것이오. 모든 사물의 진실을 꿰뚫어 본다는 청룡의 눈앞에서 거짓은 통할 리 없지. 그대는 내일 운명을 결정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대의 혐의가 사실임이 분명하면 당신은 즉결 처형을 받을 거요"


"그것참 기쁘기 그지없구먼."


사미란의 말에 시가루는 그저 수염을 매만지며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미란은 인상을 썼다.


"바꿔서 말하면 청룡이 그대의 혐의를 부정하면 당신이 아무리 귀족들을 죽였다고 주장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러니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하는 게 어떻소? 당신이 귀족들을 죽인 것이 맞소?"


"물론. 그들은 내가 죽였소."


담담히 말하는 시가루의 말에 사미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그리 지적하고 싶지 않은 말을 지적하였다.


"이보시오, 위대한 마법사 나으리. 세간에는 구체적으로 공표되지 않았지만 사실 죽임당한 귀족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소. 모두 스스로 목을 찔렀다는 것이요. 즉, 자살이오. 수많은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자살을 할 리가 없으니 살인 쪽으로 의심을 돌렸지만, 시체를 해부한 자들의 말로는 그들은 틀림없이 자살하였소."


사미란의 말에 시가루의 수염이 양옆으로 움직였고 그 모습에 사미란은 그가 미소지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통점이 있네. 그들은 보름 전, 나에게서 어떠한 도구를 받아내었다는 것이지."


시가루의 말에 사미란은 대답 대신 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그의 품에서 조그마한 외알 안경이 나왔다. 특이하게도 그 외알 안경의 알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빛이 거의 없는 감옥 안에서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렇소.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보름 전, 당신을 찾아 어떠한 도구를 받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 안경이오. 다른 자들이 지닌 것은 모두 부서져 있었지만 단 하나 멀쩡한 것이 남아있었지. 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섣불리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사미란은 창살로 다가가 외알 안경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럼 스스로 살인자라 외치는 마법사씨? 심문할 테니 성실히 대답해 주시오. 이 안경이 무엇이오? 집단 최면으로 자살로 이끌고 가는 무시무시한 마법 병기요?"


"추리가 참으로 빈약하기 그지없군. 간수 양반. 전부 틀렸소."


"....사람을 집단 자살로 몰고가는 안경을 생각하면 십중팔구 최면을 떠올리지 않겠소? 그렇다면 이 안경은 무엇이오?"


사미란의 물음에 시가루는 처음으로 표정을 굳혔다. 그것은 후회와 번민으로 가득한 얼굴이었고 그것은 감옥에 갇힌 내내 싱글벙글 독설을 내뱉던 시가루가 처음으로 보인 부정적인 감정이었기에 사미란은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가루의 입이 힘없이 열렸다.


"미래를 알려주는 안경이오."


* * *


"미래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경을 쓴 자의 미래를 보여주고 오는 안경이지. 그 안경을 쓰면 쓴 자는 미래를 경험할 수 있소. 지금 현재에서부터 스스로의 인생이라는 두루마리의 종말점까지 확인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이지."


"...미래를? 모조리 빠짐없이?"


"그렇소."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말입니까?"


 "나는 내 혐의를 주장했을 떄부터 지금까지 거짓을 말한 적이 없네. 더군다나 내가 만들어낸 도구에 한해서는 절대적으로 말일세."


시가루의 말에 사미란의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그 스스로는 알지 못한 듯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가루에게 물었다.


"당신의 말대로면 저 안경을 쓰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뜻이군.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니."


"그렇지. 정확하게 맞추었군."


시가루의 말에 사미란은 마침내 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맙소사! 그 말이 사실이면 당신은 수많은 인류의 구원자라는 뜻이 아니오?"


시가루는 그런 사미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스스로 만들었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다니 멍청하군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저 안경을 지니고 있다면 사람은 미래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오? 3일 후에 내가 지나가는 다리가 무너져 크게 다칠 미래를 본다면 나는 그 자리를 피할 수 있겠지.


1년 후 어떤 여자와 결혼할 예정이고 그 여인이 사기꾼이라면 나는 그 여자를 피할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대형 사고를 겪을 미래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사고를 대비할 수 있겠지. 병에 걸릴 미래를 본다면 미리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죽음으로 향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로부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오?! 당신은 그런 도구를 만들어낸 것이오!"


사미란의 희열 섞인 외침은 시가루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끊기고 말았다. 그것은 비웃음이 섞인 웃음이었고 멍청한 자신에게 보내는 조소였기에 사미란은 기분 나쁨과 의아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어째서 웃는 것이오?"


"이보시오 간수 나리. 그렇다면 내가 묻겠소. 어째서 이 안경을 받은 귀족들은 전부 자살을 했는가?" 


그의 물음에 사미란은 순간 멈칫하였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미래를 보는 도구라면 어째서 안경을 받은 귀족들이 자살한 것인가?

 

"설마 실패한 도구라는 것이오?“


"내가 만든 도구는 실패할 리 없지. 도구는 성공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소."


참으로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시가루가 말하자 그 말은 자신감 넘치는 장인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자살한 것이오?"


"물을 필요도 없이,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지. 자신의 인생의 두루마리에 종말 지점까지 모두 말이오.“


"...점점 더 알 수 없소. 불행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뜻이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까지 모두 겪고 그 충격에 자살했다?"


"사실과는 아주 멀지만 그나마 가깝다고 한다면 후자라고 해야겠지."


사미란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자꾸 형이상적인 철학을 이야기하는가? 사미란의 태도에 시가루는 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이보시오 간수 나으리. 당신이 만약 그 안경을 쓰게 된다면 당신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될 것이오. 당신 말대로 언제 병에 걸리고 언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며 언제 자식을 보며 언제 아파서 어떻게 늙어가다가 죽을지 모두 겪고 오게 되겠지."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그게 인생이오?"


시가루의 말에 사미란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삶이냐고 물었소. 간수 나으리. 언제 무슨 일을 겪고 어떠한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죽는지 모두 알게 된 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삶을 사는 것이오? 혹시 정해진 대본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소?"


사미란은 스스로 쥐고 있는 외알 안경을 내려다보았다. 보석으로 알이 만들어져 있는 안경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가루는 말을 이었다.


"나도 당신처럼 생각하였소. 미래를 알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그 염원을 담아 도구를 제작했고 성공하였소.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완성하고 나서 곧, 그러니까 보름 전에 그 귀족들이 찾아왔지. 그 안경을 만들어 줄 수 없냐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소. 팔 생각도 아니었고 애초에 곧 그 안경을 대량생산해서 모두에게 나눠줄 생각이었으니 누가 먼저 가져가도 상관없었지."


시가루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질렸다는 그 목소리는 말라버린 나뭇가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귀족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그 안경을 써보고 나서 깨달았소.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말이오."


"...당신의 말을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미래를 보는 것이 그 귀족들이 자살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소."


"그렇지 않소. 나는 죽여 버리고 만 것이오. 그들도……. 그리고 나 자신도 말이오."


무엇을 죽였다는 말인가? 사미란은 해명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이내 시가루가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기에 그럴 수 없었다.


* * *


콰이엇펍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술이 맛있다는 점이고 단점이라고 한다면 안주가 끔찍하게 호불호가 갈리기에 (주로 불호가 많다)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싶다면 콰이엇펍만큼 좋은 곳은 없다. 그리고 사미란은 그 불호가 많다는 콰이엇펍의 안주를 즐기기에 그에게 있어 그곳만큼 편안하고 좋은 주점은 없었다.


"이보게 사미란.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취한 모습을 보는 건 꽤 오랜만이잖아?"


바텐더의 말에 사미란은 고개를 저으며 커다란 흑맥주 잔을 들이켰다. 고개를 저으며 마셨기에 그의 입가로 흑맥주가 방울방울 튀며 펍의 바닥을 적셨고 바텐더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만 좀 마시게. 행패를 부리면 바로 쫓아내겠어."


그런 바텐더의 말에 사미란은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펍에 남을 수 있었다. 사미란은 맥주가 남아있는 잔을 든 채 투덜거렸다.


"망할 늙은이. 괜히 사람 기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군."


얼굴이 벌게진 사미란은 곧 자기 주머니를 뒤지고는 곧 외알 안경을 꺼내보았다.


"미래를 보여주는 안경이라……. 시가루 바보같은 늙은이."


알딸딸한 정신으로 안경을 보며 사미란은 피식 웃었다. 바보스러운 늙은이. 어째서 이런 훌륭한 도구를 끔찍한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머리 어디 한구석이 망가진 대신 다른 쪽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게 천재라는 말이 맞나보다. 사미란은 그리 생각하면서 안경을 보았다.


무슨 마법적 처리를 한 것인지 보석은 끊임없이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하얀색, 파란색, 곧 보라색과 무지개색이 한꺼번에 일렁이는 듯한 느낌에 사미란은 몽환적인 감각을 느끼며 안경을 보았다.


"......"


이것을 쓰면 미래가 보이는 것인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되다가 어떻게 죽는지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사미란은 홀린듯 서서히 안경을 자신의 눈가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멈추세요."


"억!"


그런 사미란의 손을 붙잡는 자가 있었다. 느닷없는 그 행위에 놀란 사미란이 그만 들고 있는 흑맥주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깨져버렸다. 당연히 바텐더의 무서운 일갈이 날아왔고 결국 사미란은 쫓겨나와야 했다.


"....."


"미안해요. 설마 잔을 떨어뜨릴 줄 몰랐어요."


사미란은 불만 어린 얼굴로 거리를 걸으며 자신에게 사과하는 푸른 머리칼의 여성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브루리아라고 소개한 그 여성은 다름 아닌 사미란의 팔을 붙잡았던 사람이었고 사미란이 술잔을 떨어뜨려 깨드리는데 적극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차피 곧 일어날 생각이었으니 상관은 없소. 물론 내가 금방 낸 맥주잔 값은 받고 싶소만. 설마 없다고 하지는 않겠지?"


브루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 그가 지불한 맥주잔 값과 똑같은 금액을 사미란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쑤시며 물었다.


"흠, 그런데 대체 대관절 갑자기 남의 팔을 잡은 이유는 무엇이오? 설마 작업 거는 거라고는 말하지 않겠지?“


"그럴 리가요."


내심 기대했다고 말하면 모양새가 말이 아니기에 사미란은 헛기침을 하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루리아는 말을 이었다.


"제가 그런 행위를 한 이유는 당신이 그 안경을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그게 무슨…….“


"시가루 즈기리라가 만든 마법 안경이 맞지 않나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놀란 나머지 사미란은 취한 발걸음으로 비틀대면서도 순식간에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는 물었다.


"....어찌 알았소?"

 

"진정해요, 딱히 저는 그 안경을 가지고 싶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하고 몰래 슬쩍했겠지요. 아닌가요?"


사미란은 잠시 고민했고 곧 그녀의 말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은 내리고는 경계를 풀었다.

 

"그렇소. 당신이 어떤 마법 안경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미래를 보여주는 마법 안경을 말하는 것이라면 맞소."

 

"...그렇군요."


브루리아는 안경을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시가루와 비슷한 얼굴이었기에 사미란은 문득 짜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러시오? 이 안경이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오? 그래서 아까 내가 쓰려는 걸 막았고?“


"그렇지요."


브루리아의 말에 사미란이 인상을 썼다. 제길! 죄다 무슨 이 기적의 도구가 끔찍한 흉기라는 듯 말하는군.

 

"이 도구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오. 이건 말 그대로 기적의 도구요.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해줄 수 있는 도구이지 않소? 그런데 어째서 처음 보는 당신도 시가루도 이걸 끔찍하다고 하는지 모르겠군."


브루리아는 답하지 않고 그저 사미란을 뚫어지게 볼 뿐이었다. 그 행위에 불만 어린 목소리로 사미란은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제야 브루리아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안경을 받은 사람들은 어째서 자살했을까요?"


어? 사미란은 취기로 멍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충 답하였다.


"...안 좋은 미래를 보았겠지. 멍청하게도 그 미래에 절망해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겠소? 그래! 그거군!"


사미란은 스스로의 추리에 감탄한 듯 손뼉을 쳤다. 그러나 그런 사미란의 말에 브루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럴까요?"

 

"무슨 뜻이오?"


"그 안경은 미래의 모든 것을 겪게 해주는 도구이지요? 지금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말이에요."


"그렇게 들었소.“



"아무리 미래가 안 좋아도 항상 안 좋은 미래만 있을 수 있나요?"


사미란은 그런가... 하고 생각했고 곧 그녀의 말이 맞다는걸 알 수 있었다. 저 안경이 불행한 미래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 미래를 알려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기쁜 미래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귀족들은 자살했는가?


"...모르겠소. 그냥 나쁜 미래가 너무 안 좋았던 것이 아니겠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미래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닐까 싶군요."


....사실 이 여자는 마법으로 모습을 바꾼 시가루가 아닐까? 사미란은 순간 그런 의심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시가루와 비슷한 말을 하는군.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묻겠소. 미래를 아는 것이 고통이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데 어째서 그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오?"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무엇을?"


"자신이 어떻게 살며, 어떻게 죽는지 말이에요."


브루리아는 그리 말하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사미란 역시 하늘을 보았다. 푸른 보름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그달을 보며 브루리아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은 곧 자신이 겪을 불행한 미래를 피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어떤 기쁜 일을 겪을지도 알게 된다는 뜻이죠."


"그렇소."


"근데 기쁠까요?"

 

"어?"


"당신의 남은 생을 40년이라고 잡았을 때 당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요. 1년 후엔 아이가 태어날 거야. 남자아이지.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고 똑똑하겠지만 어차피 알던 일이야. 2년 후엔 아내가 죽겠지만 괜찮아. 이미 알던 사실이니까. 10년 후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지만 이미 봤던 일이야."


"....미래를 안다는 건 기쁨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오?"


"새로움을 앗아가는 일이지요. 불행한 일은 막아줄지 몰라도 기쁜 일의 감정은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거예요. 이미 겪었으니까."

 

사미란은 무심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외알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면 불행한 삶을 피하는게 나쁜 일이라는 뜻이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피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지 않소."


"그 대신 미래를 빼앗기게 되지요. 미래에 겪을 모든 기쁨과 슬픔. 그로부터 오는 기대감. 그 안경은 불안함을 없애주는 대신 남은 모든 기쁨을 앗아가는 무서운 도구에요."


사미란은 브루리아의 말에 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귀족들은 자살을 한것인가? 불안한 미래를 확인한 대가로 남은 모든 미래의 기쁨을 박탈당했으니까? 


미래를 빼앗기고 말았기에?


"그 말대로라면 이 안경은 없는 것이 낫다는 뜻이군. 아가씨."


"그건 당신의 자유에요. 어찌 정하는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죠."


"...그렇군."


사미란은 중얼거리면 주머니 속의 외알 안경을 꺼내었다. 그 반짝이는 안경을 보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어 사미란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잠깐, 근데 당신은 어떻게 귀족들이 자살했다는 걸 알고 있소?! 세간에는 살해당했다고 퍼져있는데……."


사미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옆에 있던 푸른 머리칼의 여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기에 사미란은 놀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랗게 뜬 보름달에 일렁이는 푸른 용 같은 게 보였다.


사미란은 그것을 보고 곧 자기 손에 들린 외알안경을 보았다.


* * *


다음 날 해가 뜨고 재판의 아침이 밝았다. 재판이 열리자 하늘에서 푸른 비늘의 유연하고 기다란 몸을 자랑하는 청룡이 내려와 재판에 참여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고 청룡이 시가루에게 살인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즉석에서 불을 뿜어 태워버리는 모습은 수많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 주었다.


청룡이 그를 즉결처형한 이유는 사람에게 뺏으면 안 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뺏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사미란은 시가루를 인도했기에 그 모습을 꽤 근처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가루가 불타는 그 순간까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미래를 보았지.’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 불태워진다는 미래를 본 것일까? 알고서 그 불길에 몸을 맡긴 것일까? 사미란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가루가 사형을 당한 후 세간에는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위대한 마법사 시가루가 미래를 보여주는 마법 도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에 많은 사람이 그의 마법 도구를 찾았지만, 그것을 찾은 사람은 없었고 그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미란이 알 수 있는 것은 시가루가 처형당하는 그 날, 길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는 산산조각이 난 외알안경 하나를 치우느라 고생 좀 했을 거란 사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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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ator _자연재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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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자 다시보기 후기 [2]
Moderator _자연재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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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롤룽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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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2]
Moderator _자연재해_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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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일기 [1]
Broadcaster 은플랫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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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 머기업 되려면...
Moderator _자연재해_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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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 이즈 프리2트
롤롤룽룽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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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햇살45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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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하니 제가 사연하나 할께요....
화형단_니오비아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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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이스프리!!!!!!!!! [1]
나브__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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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게더 절대 활성화해! [2]
Moderator _자연재해_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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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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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은 없지만 살리기에 동참! [1]
화형단_니오비아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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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티콘 [2]
따뜻한햇살45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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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일기 [1]
Broadcaster 은플랫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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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세요 [1]
ㅣ만ㅇ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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