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도시 어느 구석진 곳에서 망가진 카메라나 고쳐보려는 아미르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가정용 CCTV를 설치한답시는 마나님을 도심까지 따라간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시장가에서 어정어정하며
보이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부자인 듯한 양복쟁이의 회사까지 따라가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이십디르함, 둘째 번에 사십디르함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아미르는
5쌍팀짜리 황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육십 디르함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맥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생선 타진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그래서 아미르가 오래간만에 돈을 벌었으니 생선 타진 한 그릇과 조밥할 쌀을 한봉다리 사왔다.
아미르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쌀 한봉다리를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듯이 처박질하더니만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아미르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아미르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생선 타진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그렇게 노라는 죽었고 아미르 엘 아마리는 사이퍼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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