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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본격 종북티지 단편 소설

DazedbulL
2020-01-21 15:57:06 153 5 2

국정원 요원으로서 사람에 대한 의심은 어쩔수 없는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의심은 확고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그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한 건 몇 년도 더 된 일이다. 기무사를 통해 들어온 군대 쪽 사건사고였는데, 어느 연대장이 독살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진짜 독살이었으면 이렇게 얘기도 못한다. 단순한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였을 뿐이니까.

당직병이 아침 출근한 연대장에게 사무실에 있는 선인장 즙을 제공했는데, 이를 모르고 받아 마셨다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쓰러진 것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병사가 안쓰러워졌었다. 그래도 뒷얘기를 듣자니 연대장이 너그럽게 용서해서 처벌은 없었다는 모양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역시 군대란 곳에는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그 당직병이 미국 국적자였다는 정보도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국적자가 군대에 오는 게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연대장이 선인장 즙으로 죽을 뻔한 일 보다야 훨씬 흔한 케이스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사건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얼마 후 국내 정국이 급격히 바빠진 탓도 있었다).

내가 그 일을 다시 떠올린 건 한참 후에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북측으로 기밀 사항이 유출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온 것이었다. 군사기밀의 유출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군사기밀 중에 사소한 게 있겠냐만은) 경계해야 하는 법이라, 그 날 이후 며칠간 미칠듯이 바빠졌었다.

내가 가장 먼저 맡은 업무는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국내 인사들의 리스트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별로 많진 않았다. 그런데, 그 중에 그 연대장이 있었다. 선인장 즙으로 죽을 뻔했던 그 사람.

별로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었다. 별 우연도 다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동료가 조사해온 기밀 유출 루트를 듣고는 머릿속에 온갖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기밀이 유출된 경로에 미국이 끼어있었던 것이었다.

기밀이 국내에서 어떻게 유출됐는지, 어떻게 미국으로 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북으로 기밀을 운송한 첩보원의 행적은 추적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기밀을 확보한 정황이 확실시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이 그 당직병이었다. 그가 거주하는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시 그 연대장이 알레르기로 실려갔을 때의 진료기록을 수배했다. 간신히 확보해 조사한 결과, 그 알레르기는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과 다른 증상을 보였음을 알게 되었다.

연대장은 실려갈 당시 희미하게 의식이 있었다. 신체는 부자유스럽지만 언어능력은 어느정도 기능하는 상태. 하지만 약한 수준의 심신미약 증상을 보여서, 깊이있는 회화는 불가능하고 단순히 질문에 답변하는 수준의 반응만 보이는 상태. 이는 특정 자백제를 투여 받은 사람이 보이는 증상과 흡사, 아니 거의 일치했다.

당직병은 그날, 많고 많은 녹즙들 중에서 딱 하나, 선인장 즙을 선택해 제공했었다. 그래서 진료 기록에는 선인장 알레르기로 기록되었다. 또한 연대장이 최초로 선인장 즙을 섭취(증상으로 봤을때, 어쩌면 투여)했을 때의 시각과 당직병이 연대장이 쓰러졌다고 신고한 시각은 거의 10여분의 차이가 있었다. 일반인이 대화를 해도 서너개의 정보가 오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로 그 시간 동안 그 당직병은 연대장으로부터 기밀을 캐냈던 것일까? 그가 연대장에게 자백제를 투여하고선, 의도적으로 선인장 즙을 제공해 알레르기로 위장한 것일까? 그가 정말 미국으로 기밀을 가지고 돌아가 북측 첩보원에게 제공한 것일까? 그가 정말 종북주의자인 것일까?

말했듯이 나는 직업병으로 의심을 앓고 있다. 결국 나는 그 당직병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신변조사를 실시했다. 한번 사용된 정보원이 방치되는 법이 없으니, 그가 정말 첩보원이면 그를 통해 꼬리를 잡을 수 있을테니 말이었다.

지금에 와선 그에 대한 의심은 매우 확정적이다. 그에 대한 조사를 반복할 수록 의심은 깊어져 갔다. 그는 일반인의 범주에서 어긋난 행적을 주로 보이는 동시에,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데 능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료공학을 전공하여 인체 생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어쩌면 이 지식을 연대장을 조종하는데 사용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성(姓)적인 지식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인체의 오르가즘을 조절하고 일으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 여성 첩보원 중에서 이따금 의도적으로 그런 지식을 조사하는 사람은 있지만,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그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는 어쩐 이유로 그런 지식을 공부한 것일까 싶었다.

그 대학생활에서도 그는 그 누구와도 접점을 형성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지곤 해서 극소수의 지인을 제외하곤 그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없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 정도 뿐이면 단순히 내향적인 사람이겠거니 싶지만, 오히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국제적인 교류만큼은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물론 그는 미국 출생이면서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으니 그 정도 교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어와 한국어 능력 모두 능통하지 못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약한 집단, 혹은 실리적인 이유 만으로 국가를 오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적 요소 뿐만이 아니다. 그는 겉보기에도, 그리고 평소 생활에서도 신체적으로 '강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군생활 동안 그의 성적은 높게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성적 덕에 연대장 당직병으로 보직이동을 한 바 있으니 그 성적에는 거짓이 없을 것이다. 그의 사격 기록은 탄착점이 깔끔하게 모여있었다. 마치 사격을 따로 훈련받은 사람처럼.

무너지는 상자 더미를 한 발로 가볍게 멈춰 세우는 몸놀림을 보인 적이 있다는 증언을 그가 근무했던 식당에서 얻을 수도 있었다.

위와 같은 경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는 현재 만화가를 지망하고 있다. 그가 생계 때문에 종북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가 창작활동을 하며 인터넷 방송을 병행하고 있다고 알아내어, 그의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인터넷 방송에서도 그는 자신의 본성을 감추는 모습을 보인다. 방송시청자들에게는 마치 친구처럼 친근하게 접근하고 신상을 자유롭게 공개하는 것처럼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자세히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정보에 대한 공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포장하는 모습이다. 프로의 솜씨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서 그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게획을 세웠다. 그가 일반인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나는 시청자의 가면을 쓰고 그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의 방송을 감시하면서, 아주 작은 정보부터 시작해 조금씩 핵심적인 정체를 파내가는 것, 그것이 현재 나의 계획이고 일상이다.

실제로 나는 미약하게나마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창작물을 이북에 출판할 것임을 방송에서 밝힌 것이었다. 그가 창작물 속에 어떤 기밀을 어떤 암호로 감추어 이북에 제공하려는 것인지는 아직 파악 중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방송을 시청하면, 반드시 그의 꼬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것을.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의 인터넷 방송에 참여하여, 그의 정체를 알아낼 단서를 비밀스럽게 질문한다.

「초티지님! 오팬무?」

"안 알려 줄 거 거든요!"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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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글로 초티지를 놀렸다

다음엔 그림으로 초티지를 놀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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