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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입니다.

씨넬_
2019-12-20 16:06:20 193 1 2

파일 삽입이 안 되어서 이렇게 올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영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이대로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픽션이니 즐겁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 * *

 

 이 날, 마왕성의 아침은 평소보다 꽤 부산스러웠다. 마왕성ㅡ마족들의 거처ㅡ은 보통 달이 뜨고 나서부터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아침부터 부산스러울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하면 원인은 꽤 특별한 손님 덕분이었다.

 

“ 마왕님! 수인종 계집애가 버릇없이 마왕님을 뵙고 싶다는 요청을 올렸습니다! ”

“ 계집애가 뭡니까. 조금 더 말을 예쁘게. ”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잡는 남자는 제게 다급하게 말을 걸어오는 임프에게 잔소리하듯  말을 내뱉었다. 잠이 덜 깬 듯 한 목소리는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임프는 아무튼 그 망할 수인종을 쫓아내는 것을 허락해 달라며 외쳤다.

 

 그렇다. 이 북쪽의 마왕은 평화주의자로, 그의 부하들은 침입자를 쫓아내는 것조차 마왕에게 허락을 맡아야만 했지. 금쪽 같은 수면을 위한 시간을 방해받은 마왕은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금빛 눈에는 졸음이 가득했고, 비몽사몽한 채로 시종이 입혀주는 대로ㅡ꾸며주는 대로 몸을 맡긴 채 갑작스레 나타난 손님에 대해 조금 기대를 품었다. 대체 누구길래, 이 춥고 외로운 북부의 마왕성을 이리 소란스레 뒤집어 놓았단 말인가.

 

* * *

 

“ 이 미친 계집애가! ”

“ 아니, 그러니까 그놈의 계집애라고 하는 것 좀 그만두지 않을래요?! ”

“ 미친 건 부정 안 하는 거냐! ”

“ 당연하지! ”

 

 왱알왱알. 평소에는 조용하던 응접실이 멀리서부터 벌써 소란스러웠다. 마왕성에선 익숙하지 않은 소란스러움에, 마왕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웬 일이람. 마왕은 시종이 응접실의 문을 열어주자 보이는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지. 마족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잘 볼 수 없는 순백색의 머리카락. 마치 마왕이 지배하는 설원과도 같은 머리색의 작은 소녀를 보고, 시종도 꽤 놀란 모양이었는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홱, 고개를 돌린 소녀의 눈은 붉었다. 마치 진한 석류처럼 빛나는 진한 붉은색. 그 눈에 사로잡힌 찰나, 잠시 그의 시간은 멈추었다.

 

“ 마왕님이신가요?! ”

 

 멈추었던 시간이 흘렀다. 몇 초 가량이었겠지만, 마왕에게는 꽤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임프의 숱 없는 머리채를 잡고 있다가 제 앞으로 쪼르르 달려 온 소녀는 어깨 정도에나 오는 작은 체구였다. 전혀 경계하지 않는 듯, 허물어진 웃음을 지어보이는 소녀. 제가 아무리 평화주의자로 유명하다 하더라도 마왕은 마왕이다. 필요하다면 산 제물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살육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마왕일진대, 눈 앞의 소녀는 눈을 예쁘게 휘어 웃으며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선망 내지는 동경의 눈빛을 담고서.

 

“ 네, 제가 북쪽의 마왕입니다. 무슨 용무로 찾으셨는지요? ”

 

 비즈니스적인 상냥한 웃음. 북부의 마왕은 이런 것에 능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 타인을 상냥하게 대하는 것. 아무렇지 않은 마냥 웃어보인 그는, 다음에 이어진 말에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다.

 

“ 저랑 결혼 해 주세요! 한 눈에 반했어요!! ”

 

* * *

 

 소녀는 체구부터, 머리 위에 나 있는 쥐의 귀가 말해주듯 수인종에서도 꽤 약소국인 쥐의 나라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고 마왕은 생각했다. 그 쪽 나라에서 왕족이 흰 머리카락에 붉은 눈으로 태어난다 했던가. 집무실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종이 조심스레 물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시 미친 것 같으니 쫓아내는 것이 맞겠지요? ”

“ 아니, 나한테 반했다는데 미쳤다고 하면 조금 상처인데… ”

“ 그렇지만 수인종이 마족에게 반했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

“ 내가 너무 매력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요? ”

 

 시종의 싸늘하게 식은 눈을 애써 외면한 마왕은 다시 한번 소녀를 만나보겠다며 겉옷을 챙겨입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옷을 입은 남자는, 잘 닦인 구두를 신고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어쩐지 들뜨는 마음이,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면서.

 

 

* * *

 

 소녀는 손님방에 앉아 제 발 밑에서 쿠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슬라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열받는 것들 투성이다. 단순히 마왕님을 보러 오고 싶었을 뿐인데! 미친 사람도 아니거니와, 속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 왱알왱알, 꿍얼꿍얼, 제 말에 대답해주지 않는 슬라임을 괜히 작은 주먹으로 팡팡 내려치던 소녀는 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귀를 잘게 떨었다. 수인종의 예민한 청각이라지만, 제한된 정보에서 소녀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누군가 온다는 것 정도. 누구든지 들어오면 마왕님을 뵙게 해 달라고 머리채라도 잡자, 소녀는 그리 생각하며 손을 풀었다.

 

“ 계시나요? ”

 

 하지만 머리채를 잡겠다는 그 다짐이 실행되는 일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본 순간 소녀는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시야에 들어온 사람이 그야말로 후광을 내뿜는, 빛 그 자체라서. 깔끔하게 올려 묶은 밤하늘 같은 검은빛 머리카락이 어깨 즈음에서 흔들렸다. 소녀는 너무 대놓고, 넋을 잃고 마왕을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봄을 받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지. 도자기 같다 말해도 과언이 아닌 흰 피부와 부드럽게 처진 눈매는 남자를 더욱 다정한 인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으며, 현혹될 것 같은 금빛 눈은 이방인인 소녀를 보면서도 상냥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 소녀가 이성을 붙잡지 않고 있었더라면 응접실의 카펫에 그대로 누워 숨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괜찮냐 묻는 그 낮고 부드러운 음성은 소녀의 예민한 귓가에 내려앉았고, 마왕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어야만 했다.

 

“ 아 미친 진짜 개 좋아!!!!!!!!!!!!!!!!!!!!!!!!!!!! ”

 

 이게, 그, 아가씨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약간 아찔해지는 머릿속을 다잡으며 마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민망하다. 부끄럽다. 아니, 나한테 왜 이래? 별의별 생각을 다 해 가며 마왕은 조심스레 진정의 말을 뱉었지만, 말 자체에는 전혀 효과가 없이 결국 소녀는 눈물콧물을 다 짜내 가며 마왕님 최고에요 잘생겼어요 멋있어요 사랑해요를 서른 번쯤 외치고서야 진정했다.

 

* * *

 

“ … 그래서 … ”

“ 여기까지 찾아왔다 이겁니다! ”

 

 자랑스럽게 우쭐우쭐, 허리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는 소녀를 보며 마왕은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그가 서쪽의 마왕과 회의를 할 때에 수인족 대표로 참가했었다고 했다. 그 때 들었던 목소리에 퐁당 빠져버렸다고. 아니, 목소리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고? 마왕은 혼란 디버프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티를 내지 않게 애써야만 했다. 애초에 목소리가 좋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이다. 그는 마족에게 잘 먹히는 타입은 아니었으니ㅡ마족보다는 조금 더 인간에 가까운 외모로 인해서ㅡ어느 정도야 납득하고 있었지만… 수인종에게 잘 먹히는 타입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아무튼간에, 그녀는 그 목소리 하나에 반해 서부에 있는 쥐 왕국에서 가출해 북부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쯔음, 마왕은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잔뜩 껴입었다고는 해도 쥐 수인이 견딜 추위가 아닐 텐데,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찾아 와? 시종도 없이? 그리고 스스로는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ㅡ이렇게 얌전하게 굴 때는 조금 귀엽지 않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ㅡ자신이 공주라고 웅얼거렸지만, 왕족이 시종 없이 혼자 여기까지 왔다는 걸 봤을 때 이 여자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번 더 생각했다.

 

“ 처음은 목소리에 반했는데, 전부 다 제 취향이신 거 있죠. 진짜 엄청 좋아해요! ”

“ 그거 지금 네 번째 듣습니다. ”

“ 하지만!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

“ 그만 말하셔도 좋다고 생각해요… ”

“ 그치만! 얼굴도 너무 제 취향이고, 손도 너무 예쁘시고! ”

 

 마왕은 아마 제 얼굴을 보면 분명 붉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내 이 맹랑한 소녀ㅡ공주ㅡ의 말에 휘둘려선 안 된다. 이 꼬마가 몇 살인지도 모르고, 만난지 하루도 안 된 사람과 결혼을 한다니. 게다가 마왕과 수인종ㅡ그 중에서도 가장 약소인 쥐ㅡ의 결혼이라니. 급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호감이 섞이지 않았다면ㅡ그녀는 이미 호감 만만 상태인 것 같지만ㅡ이득이라도 취하는 것이 맞을 터인데. 애초에 한눈에 반했다고 결혼 해 달라니, 그건 그거대로 미친 소리 아닌가. 마왕은 무어라 말할지 머릿속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다 변명처럼, 타이르듯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 … 좀, 더 서로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결혼이라는 거는. ”

“ 저는 이미 마왕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어요! ”

“ 네? ”

 

 다시 우쭐우쭐 상태에 돌입한 소녀를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바라본 마왕은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왜 저렇게 당당하지?

 

“ 마왕님의 키는 173cm! 챠밍포인트는 오른쪽 눈 밑의 눈물점! 말수가 많으신 편도, 이를 드러내며 웃는 편도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상어같이 뾰족한 이빨이시죠! 목소리는 좋으시지만 그걸 잘 활용하지 못 하시는 편이고! ”

 

 … 한참 뒤. 자신의 취미며 뭐며 전부 까발려져버린 마왕의 HP가 제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이후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 * *

 

“ 미친 것 같아. ”

“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마왕님. 얼른 저 미친 계집애를 쫓아ㅡ ”

“ 왜 귀여워 보이지. ”

“ 예? ”

 

 다시 시종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에 대해 종알종알 이야기 할 때의 소녀는, 그 누가 봐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작은 손으로 손짓해가며 자신의 장점과 사랑스러움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라니. 애초에,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데 흥미가 생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시종이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 흥미가 얼마나 지속될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으니까, 기왕에 관심이 생긴 겸ㅡ이 소란이 꽤 마음에 들었으니ㅡ소녀를 잠시 마왕성에 두자고 결론을 내렸다.

 

“ 마왕님, 정말 미치셨습니까? ”

“ 오늘 미쳤다는 말 정말 많이 하시네요. ”

“ 수인종, 그것도 생쥐를 이 위대한 마왕성 안에 두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돌으신? 님 돌으신? ”

“ 저기, 저 그래도 마왕입니다? 이 성 주인은 접니다만? ”

“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선대 마왕님들께서 노하시겠습니다! 미치셨습니까! 차라리 곰이나 호랑이 같은 족속들이면 모르겠지만, 쥐를 손님으로 받는다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

“ 그, 종족 차별 발언은 나쁩니다. ”

 

 쨍알쨍알 잔소리를 하는 시종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귀 아프다. 마왕은 설렁줄을 당겨 호위기사를 불렀고, 시종은 다른 호위기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님 도르신?! 을 연발하다 문이 닫히자 조용해졌다. 그래, 이런 소란도 나쁘지 않지. 얼마나 오래도록 평화로웠던가. 폭력적이지 않은 소란스러운 하루가 꽤 그리웠다. 전쟁이며 왕위 찬탈이며 반란 진압이며… 얼마나 긴 시간을 무의미한 폭력에 사용해왔는가. 애초에 마왕 같은 것도 별로 하고 싶진 않았는데. 평범한 악마로 남았어도 나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마왕은 이내, 이 쯤 되면 내 마음대로 하나쯤 해도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마왕은 깃펜을 들어 소녀를 마왕성의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임명장을 썼고, 소녀가 들고 온 체류장과 통행권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정식으로 마왕성의 손님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군. 소녀가 마왕성에 불러 올 폭풍을 모른 채로, 마왕은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 * *

 

“ 으아악! 이 미친 계집애가!!! ”

“ 계집애라고 하지 말랬지이이이이!!!!! ”

 

 … 저 쪽의 왕족은 식사 예절 같은 걸 안 배운답니까? 그리 눈으로 묻는 시종을 보며 마왕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임프가 제 꼬리를 밟아서 놀랐다며, 임프의 귀를 뜯어버릴 듯이 잡아당기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다음부턴 식사시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던가 해야겠군. 한참을 임프와 쌈박질을 하다가 진정한 소녀는 그제서야 마왕을 바라보며 죄송하다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참, 방금까지 그 난리를 치던 사람이라곤 생각도 못 할 태세전환이다.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로는, 소녀의 이름은 냠구이며 나이는 스무살 초반 즈음. 정말로, 마왕님을 좋아한다는 말을 열 번을 했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귀까지 붉어졌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은 소녀는 여전히 그를 보며 배시시 웃어보였지.

 

“ 그래서, 결혼을 해 달라고 하셨는데. 외교적 문제는 생각 안 하셨습니까? ”

 

 툭 내뱉은 시종의 말에 마왕은 먹은 게 얹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굳이 밥 먹는데 이런 얘기 해야 하는건가. 게다가 방금 좋아한다는 이야기 했는데 해야 하는 이야기인가?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고 우선 식사를 끝낸 후에ㅡ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소녀는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 이 쪽의 영토를 전부 드릴 수 있습니다. 한낱 쥐새끼의 왕국이라 별 소득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꽤 알짜배기 땅이라고 생각해요. 쥐 수인들의 특징상 힘이 그리 좋지 않아 개간하지 않은 토지가 꽤 됩니다. 마족분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

“ 영토의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 한낱 공주의 판단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 당연하죠. 말이 공주고, 제가 통치권자니까요. ”

 

 소녀가 부스럭거리면서 꺼낸 것은 군주의 증표. 마왕은 사례들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진짜 어디까지 가는 거야. 진짜 이렇게까지 해서 나와 결혼하고 싶은 건가? 머릿속이 빙글빙글,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착잡하게 소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이 양손을 꼭 쥐어보이는 모양새가 꽤 귀여웠는데, 이내 소녀가 크게 뱉은 말은ㅡ

 

“ 계속해서 반대하시겠다면 몸으로라도 기정사실을 만들겠습니다! 사랑의 결실을 만들어 버린다면 결혼 허락을 할 수밖에 없겠지! ”

“ 아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

“ 마왕님! 체통을! ”

 

 떨어진 폭탄선언에 식당은 뒤집어졌다. 뒷목을 잡은 마왕은 식사도 끝내지 못한 채 물러났고, 남겨진 소녀는 난 진지했는데! 하고 한마디를 더 뱉었다가 임프들에게 질질 끌려 손님방에 던져졌다. 

 

* * *

 

 일주일. 소녀가 마왕성 안의 모든 이들과 친해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 소녀를 정착시키느라 수많은 서류에 시달렸기 때문에 정작 마왕과는 큰 교류가 없었지만 소녀는 그 새에 꽤 마족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물론 머리채를 왕창 잡힌 임프는 아직도 미친 계집애라며 마왕에게 와서 엄청나게 투덜거렸지만 말이지. 친해지는 거 꽤 빠르지 않나? 저를 그리 미쳤냐고 구박하던 시종도 요즈음에 와서는 꽤 괜찮지 않냐며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조건이 나쁘지 않은 거라며 이래저래 둘러대고는 있었지만, 최근 그녀와 티타임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녀는 붙임성이 좋았고 애교도 많았다. 남의 이야기에 반응도 곧잘 해주는 작은 아이를 싫어할 이가 더 적었지. 특히나 북쪽의 마족들은 외로운 아이들이 많다. 마왕은 소녀가 가져온 변화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작은 소란들이, 그의 일상에 활기를 가져온 것 같아서.

 

 거의 다 마친 서류더미를 슥 밀어놓고 마왕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쉬었다 할까. 느릿한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문을 열었을 때ㅡ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작은 비명이 마왕을 놀라게 만들고야 말았다. 누가 부딪힌 건지는 안 봐도 뻔했다. 마왕은 다급하게 문 뒤를 확인했고, 얼굴을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 위험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마왕은 숨을 겨우 뱉은 후에서야 소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 괜찮습니까? 다쳤어요? ”

“ 아앙니…갱챠나용… ”

 

 하나도 안 괜찮은 목소리였다. 울음으로 얼룩져 떨어지는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였지. 덩달아 축 늘어진 귀와 아직도 방울방울 맺힌 눈물, 그리고 발갛게 물든 눈가. 마왕은 손을 뻗어 한번 보자고 소녀의 손을 떼어냈고,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괜히 안심이 되었다.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고, 그리 속으로 생각하고는 마왕은 멋쩍은 듯 내뱉었다.

 

“ 미안합니다, 앞에 사람이 지나갈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

“ 앙니에요…지나가던 게 아니긴 한데에… ”

“ 으응? ”

“ 마앙님, 보고 싶어서…와써요… ”

 

 부끄러운 듯 얼굴을 발갛게 붉히곤 시선을 내리까는 소녀. 한동안 못 뵈어서 너무 슬펐다며 칭얼거리고는 다시 얼굴을 들어 저를 똑바로 응시한다. 여전히 새빨갛게 물들인 채, 아랫입술을 꼭 물고선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참는 얼굴을 한 채로. 마왕은 어쩐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지 예상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니면 다시 결혼해달란 이야기를? 그 와중에도 부딪힌 코가 괜찮은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ㅡ, 소녀는 마음을 다잡은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는 마왕을 뒤흔들어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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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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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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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er 건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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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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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t_T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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